유토피아를 상상하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만큼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위 사진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인간이 이상사회를 꿈꿀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현실에 존재하는 빈곤, 불평등, 폭력, 질병  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빈곤 없는 사회, 평등한 사회, 폭력 없는 사회를 그릴 수 있어야만 빈곤이나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휴머니스트인 토머스 모어가 1516년에 쓴 《유토피아》는 당시 영국뿐 아니라 유럽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그리고 있다.


유토피아(Utopia)는 ‘없는’이라는 뜻의 희랍어 ‘ou’와 ‘장소’란 뜻의 ‘topos’가 결합된 말로 라틴어로 썼을 때 Utopia가 된다. 따라서 유토피아는 이 세상에 없는 곳이란 뜻이다. 그러나 Utopia에서 ‘u’는 희랍어에서 ‘행복한’이란 뜻의 ‘eu’와 발음이 같다. 따라서 utopia를 eutopia로 읽으면 ‘행복한 세상’이란 뜻이 된다. 결국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를 이 세상에는 아직 없지만 인간이 꿈꾸는 행복한 세상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를 상상하면서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할 수 있다. 《유토피아》는 이 책의 원래 제목 ‘영국의 유명한 도시 런던의 시민이자 부사법장관인 고명한 토머스 모어가 기록한, 기인 라파엘 위틀로다이우스 씨가 이상국가(Utopia)에 관해 다룬 논의’에서 볼 수 있듯이 아메리고 베스푸치 일행과 함께 아메리카 신대륙을 여행하였다는 라파엘 위틀로다이우스라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상국가의 여러 면모를 모어 자신이 채록한 것 같이 되어있다. 물론 라파엘 위틀로다이우스라는 사람도 그가 보았다는 이상국가도 모어가 꾸며낸 것이다. 


모어의 《유토피아》는 1권과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모어가 어떻게 위틀로다이우스라는 사람을 만났는지, 그리고 위틀로다이우스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를 소개하면서 가끔 모어 자신이 위틀로다이우스가 전하는 유토피아의 이상이 현실적일 수 있는 지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토피아》의 대부분의 내용을 차지하는 위틀로다이우스의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말한다면 1권은 당시의 영국이나 유럽의 불합리한 관습과 법률을 비판하면서 이상국가의 일반적인 상황을 기술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2권은 이상국가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위틀로다이우스의 말을 통하여 모어가 그리는 이상국가는 복지가 보장되고 사유재산이 없는, 현대적 용어로 말하면 공산주의 사회이다. 사유재산제도는 불평등을 낳게 되고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부와 권력을 소수만이 갖게 되며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궁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토피아》의 2권에는 유토피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영국과 비슷한 크기이면서 외부와 격리된 섬나라인 유토피아는 54개의 도시로 이루어진 공화국이다. 이 섬사람들은 삶을 영위하는 데 먹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기 때문에 이 곳 사람들은 모두가 농업에 종사한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농사일 이외에 옷감을 만드는 일이나 집을 짓는 일과 같은 다른 생업을 갖고 있다. 삶의 기본적 의무는 공유하면서 각자의 소질과 취향에 따라 직업을 갖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하다는 생각이 반영된 결과다. 유토피아에는 모든 사람이 노동을 하기 때문에 각자의 노동시간은 하루에 6시간을 넘지 않는다. 당시 영국에서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유토피아에서의 노동시간은 지극히 적다고 할 수 있다. 그 밖의 시간은 식사, 수면, 여가로 채워진다. 선거로 선출되는 지도자의 임무는 어느 누구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도록 주민들을 관리하면서 동시에 어느 누구도 지나친 노동으로 혹사당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일이다. 이렇게 유토피아 주민은 일을 공평하게 배분하기 때문에 물자 역시 필요에 따라 배분된다. 누가 더 잘 살고 못 살고의 문제가 없는 공간이 유토피아 사회다. 이들은 따라서 여가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으며 여가 시간을 책을 읽고 지혜를 추구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물질적 탐욕과 거리가 먼 삶을 보여주기 위하여 유토피아에서는 금과 은과 같은 귀금속은 더러운 배설물을 담는 용기로 쓰이거나 사회의 규칙을 어긴 죄수들을 감금하는 데에 사용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숭배의 대상이 되는 금과 은이 유토피아에서는 멸시의 대상이 된다. 유토피아에는 노예가 있지만 신분 때문에 노예가 되지는 않는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노예가 되거나 다른 나라에서 범죄 때문에 형벌을 받게 되는 사람을 몸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사온다. 유토피아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장애가 없도록  범죄자를 처벌하는 방식으로 노예를 두고 있지만 이들 역시 지나친 노동으로 혹사당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유토피아에는 일부일처제를 제도화함으로써 가족 간의 평화가 유지되며 사람을 죽이는 전쟁뿐 아니라 생명체에 대한 살육을 즐기는 행위인 사냥도 금기시 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유일신을 믿지만 여러 종파가 있으면 이들 종파들의 각각 다른 신앙생활을 존중하며 이들의 종교와는 다른 종교를 갖더라도 박해받지 않는다. 각각의 종교생활을 존중하기 위하여 지나치게 적극적인 선교 행위 역시 금지한다. 이와 같이 유토피아는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기반으로 하여 평화롭게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여러 장치와 제도를 갖춘 사회다.


모어의 《유토피아》는 당시의 영국을 비롯한 유럽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저작으로 읽을 수도 있고 실제로 인간이 이루어야 할 이상사회를 구상한 저작으로 읽을 수도 있다. 중산층 출신이면서 헨리 8세 치하에서 현실 정치에 관여하였던 모어의 경력을 염두에 두고 《유토피아》를 해석하는 학자들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이상국 유토피아가 현실적이지 못한 허무맹랑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모어가 이상주의자들을 조롱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어가 이 책에서 그리는 이상국가가 쉽게 현실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현실을 인정하자는 취지로 이 책을 썼다고 보기는 어렵다. 모어는 이상향을 전제하고 이를 근거로 현실의 문제점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이 책을 썼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모어의 유토피아론은 한편으로는 물질적 욕망을 멀리하고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는 교회공동체 운동에 영향을 주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평등사회를 지향한 공산주의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모어의 유토피아론은 다양한 인간의 삶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으나 이상적 사회와 그러한 사회에서의 인간의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면 현실의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어떤 시도도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모어가 구상한 유토피아가 구현되지 못하는 것은 모어의 구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특권 계급을 타파하지 못하는 우리의 잘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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