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만약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한참 뒤떨어져 있다. 자격증도 없고, 토익 점수도 없다. 하지만 그는 기대감에 찬 하루하루를 산다. 꿈이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가수가 되어있을 자신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노래’라는 스펙을 쌓아가는 이승현씨. 그는 자신에게 이제껏 주어졌던 시간을 다른 곳에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만 해도 모자란 시간, 억지로 다른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노래가 바로 저의 스펙이에요.”

  스무살이 되기 전, 우리의 목표는 단 하나다. ‘좋은 대학 가기.’ 우리의 이러한 꿈을 어찌 알았는지 대학 지침서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온다.
 

  이런 책들은 불티나게 팔리기 일쑤다. 이러한 책들에 감동을 받았는지 부모님도, 선생님도, 심지어는 모르는 아저씨까지도 공부하라고 아우성이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의식 속엔 공부에 대한 상반된 인식이 숨어들었다. 싫어하면서도 잘하고 싶은 알 수 없는 감정에 청춘의 나이에도 정신은 우리들의 할아버지보다 늙어간다.

  이승현씨(안성캠 경제학과 3)는 20대에게 "이제껏 우리에게 주어진 그 어마어마한 시간들을 공부에만 쓰기엔 아깝지 않냐"고 되묻는다. 내가 원하는 공부가 아닌, 사회가 좋아하는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으로만 이 청춘을 채우기엔 청춘은 너무 고귀한 단어라고 했다.

 

업타운이 건네 준 기회

  평소에 갈고 닦은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갑자기 찾아왔다. 하루는 교회에서 솔로로 무대에 섰다. 그의 무대를 본 후, 어떤 이가 그에게 찾아왔다. 업타운의 남자보컬이자 소속사 대표인 정연준이라고 했다. 그는 이승현씨에게 피쳐링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꿈인지 생신지 분간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한 말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봤다. 혼자였다. 날아갈 듯이 기뻤다.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왔구나.’ 그는 혹시나 대표님의 마음이 바뀔까 싶어 빠르게 대답했다. “네! 하겠습니다!”

 
  녹음 날이 찾아왔다. 자신의 목소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줄 기대감으로 녹음실로 향했다. 그가 피쳐링을 맡은 곡은 ‘birt hday’라는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노래였다. 그와 함께 UV도 업타운의 피쳐링을 맡았다. 노래를 부르는 순간, 너무 떨렸다. 프로들 사이에 껴있는 아마추어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온 기회인데, 허망하게 놓칠 수 없었다. 그가 평소에 쌓아온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오, 좋은데.’ 업타운과 UV의 얼굴에 미소가 보였다. 인정받았다는 느낌은 그를 프로로 만들었다.

  그렇게 닿은 인연으로 뮤직비디오까지 출연하게 됐다. 주연은 유세윤에게 돌아갔다. 그에게 역할이 주어지진 않았다. 뮤직비디오에서 단 3초 동안 출연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다짐했다. ‘언젠가 내가 꼭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이 되리라.’

 

꼬마스타의 꿈을 위한 노력

  그의 노래 실력은 어렸을 때도 빛을 발했다. 그의 간드러지는 노래 실력은 그를 단연 인기스타로 만들었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노래 실력을 뽐낼 때면 ‘어린 나이에 어찌 그리 노래를 잘 부르냐’며 여기저기서 칭찬일색이었다. 하지만 노래로 사랑받던 어린 시절이 지나가고 청소년기가 다가왔을 때,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환영받지 못했다. 그는 커가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은 그 꿈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노래는 그저 취미로 즐기라고 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업을 가지라고 했다.

  어린 그에게 부모님의 반대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가수를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꿈에도 할 수 없었다. 때문에 그 역시도 대부분의 20대와 같이 취직을 위해 경제학과로 진학했다. 대학의 문턱에 들어선 이후, 꿈은 점점 멀어져갔다. 그렇다고 경제학 공부에 전념할 수도 없었다. 가수에 대한 꿈을 마음 한편에 둔 채 경제 공부를 하기엔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1년 반의 대학생활 후, 군대로 떠났다. 그 곳에서 국악을 전공하는 선임을 만났다. 그 선임은 그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장르는 다르지만 ‘음악’이라는 연결고리로 그와 그의 선임은 우정을 나눴다. 전역 후, 그 선임으로 인해 다시금 불타오른 열정은 그를 흑인음악동아리인 ‘Outribe’로 이끌었다. 다시 서게 된 무대에 그의 마음이 벅차올랐다. ‘가수’라는 꿈을 꿀 용기가 생겼다.

 

언제 어디서든 음악과 함께

  그는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에 뛰어들었다. 동아리 활동도 충분히 행복했지만 취미 그 이상의 것을 느끼기 어려웠다. 때문에 그는 헤리티지 메스콰이어라는 가스펠 합창단의 문을 두드렸다. 헤리티지 메스콰이어 스쿨에서 6개월간의 교육과정을 거친 뒤, 3개월간의 사역자 코스를 마쳤다. 드디어 헤리티지 메스콰이어의 단원이 됐다.

  수많은 공연에 나갔다. 교회 예배시간에 공연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반 공연에도 수없이 불려 다녔다. 어느 날, 헤리티지 메스콰이어 합창단이 이문세 콘서트에 초청됐다. 한국에서 유일한 가스펠 합창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무대에 선 후, 커튼이 열렸을 때 자리를 가득히 메운 2만 명의 관객이 그를 압도했다. 비록 그의 공연은 아니었지만 2만 명의 관객이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또 한 번 다짐했다. ‘언젠가 내가 꼭 이 공연의 주인공이 되리라.’

  그의 주도로 단원 중 5명이 모여 팀을 만들었다. 그들은 홍대로 거리공연을 나갔다. 기독교 합창단이다 보니 ‘주의 은혜로’, ‘Everybody crap your hands'등 CCM곡을 불렀다. 30분 동안 흥겨운 노래로 공연을 진행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하나 둘 발걸음을 멈췄다. 신나는 노래에 관객들의 굳은 몸도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음악으로 모두가 행복해하는 모습에 제 꿈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죠.”
 

경쾌한 그만의 청춘

  “미안합니다, 가사를 까먹었습니다.” 공연 도중, 그는 자주 가사를 잊어버린다. 그럴 때 마다 너스레를 떨며 특유의 긍정적 기운을 퍼뜨린다. 처음엔 황당해하던 관객들도 그의 넉살에 금방 웃어버리고 만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킨다고 그는 말한다. 때문에 그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끝없이 도전한다. 그의 도전은 이번 달 16일 다시 시작된다. 업타운의 중국 진출이라는 도전에 그도 남자보컬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어릴 적부터 바라왔던 꿈이 실현되고 있었다.

  그는 또 하나의 도전을 시작했다. 항상 음악과 함께하기 위해 예술경영을 부전공으로 택했다. 공연기획과 관련된 분야를 배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노래를 부르지 않는 순간에도, 그는 음악 언저리에 머물길 바란다.

송은지 기자 ilnrv@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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