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혈이 한강을 건너면 역사가 바뀐다. 남에서 북으로 향한 중앙대의 시위 행렬이 4·19 혁명에 큰 역할을 했음을 드러내는 문장이다. 51년이 흐른 지금 교내에는 어떤 흔적이 남아있는지 살펴보자.

 중도 앞, 의혈탑을 아시나요= 4·19 혁명 직후 희생자를 낸 대학들은 일제히 시혼제를 지내고 위령탑을 세웠다. 중앙대 역시 혁명 과정에서 경찰의 공격과 고문에 의해 서거한 고병래 열사, 김태년 열사, 서현무 열사, 송규석 열사, 지영헌 열사, 전무영 열사를 기리기 위해 위령탑을 세웠다. 그 위령탑이 현재 중앙도서관 앞에 있는 의혈탑이다.

 1960년 9월, 의혈탑이 처음 세워졌을 때는 영신관 앞에 위치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의혈탑은 정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해 정해진 위치였다. 그 후 본관과 중앙도서관 재건축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의로운 피, 의혈= 4·19 혁명 과정에서 6인의 열사들이 흘린 의로운 피를 상징하는 말이 바로 ‘의혈’이다.

 의혈이라는 단어는 의혈탑 건립 과정에서 탄생했다. 당시 총학생회장이었던 박명수 전 총장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조병화 시인에게 위령탑의 비문과 작명을 부탁했다. 조병화 시인은 “위령탑의 이름은 해석의 여지가 있는 상징적인 것일수록 좋다”며 ‘사월’이라고만 적어둘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시위 과정에서 동기들을 잃은 박명수 전 총장은 조병화 시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탑의 이름을 ‘의혈탑’으로 정했다.

 시간이 지나 박명수 전 총장은 “탑의 이름을 사월이 아닌 의혈로 정한 것을 후회한다”고 밝혔지만 ‘의혈’은 중앙대의 상징과도 같은 단어로 남았다. 1944년 중앙대 밴드 누리울림은 ‘의혈의 이름으로’라는 곡을 만들었고, 2005년 밴드 블루드래곤이 편곡해 지금까지 응원가로 사용되고 있다.

 4·19 혁명정신선양회(이하 선양회)= 2007년 중앙대 동창회에서 4·19 혁명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선양회가 조직됐다. 선양회는 4?9 혁명 당시 부상을 입은 유공자들을 주축으로 구성됐으며 4·19 정신을 후배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동문들이 속해 있다.

 선양회원들은 매년 수유리 4·19 묘지에서 열리는 대통령 주관 행사와 학교에서 진행하는 4·19 추모식에 참석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19일 오후 12시에 의혈탑 앞에서 추모식이 열리며 안국신 총장의 기념사, 유용태 동창회장의 추모사, 이춘근 선양회장의 헌사가 있을 예정이다.

 한편 지난 2006년까지 계속됐던 4·19 마라톤 등 추모식을 제외한 기념행사는 자취를 감췄다. 4·19 마라톤은 혁명 당시 중앙대생의 행군 경로를 따라 마라톤을 하는 행사로 총학생회에서 주도했다.

 선양회 박대선 부회장은 “서울대 다음으로 많은 사상자를 내는 등 4·19 혁명에서 중앙대의 역할이 매우 컸다”며 “서울대·고려대 등 타대의 경우 총학생회 차원의 4·19 추모 행사가 이뤄지는데 우리 학교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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