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키요미 준이다.


여자들은 나를 잘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남자들, 특히 새벽에 파일공유 사이트를 돌아다니는 남자들은 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나는 한국에 진출한 최초의 일본인 에로배우로 기억될 것이다. 회사에서 날 홍보하기 위해 만든 문구가 그거였다. 내가 찍은 영화-영화라고 하면 비웃는 사람도 있겠지만-는 오십 편이다. 케이블TV의 성인채널에서는 매주 한 편씩 돌아가면서 방송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중에 몇 개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지는 잘 모르겠다. 케이블 방송에서는 홍보를 위해 부러 인터넷에 흘리기도 한다. 확실히 몇 개는 돌아다닌다. 그것을 알게 해 준 것은 오빠다.
 

오빠는 화면 속의 날 보면서 자위를 하고 있었다. 프리킥을 막으려는 축구선수처럼 무릎을 구부린 채 양손을 앞으로 모으고 있었다. 헤드폰을 낀 탓에 내가 들어온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처음에 나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화면 속의 여자는 진한 화장에 가죽 소재의 속옷을 입고 있었다. 거기에 조명이 더해져 낯설게만 보였다. 그러나 여자의 옷이 모두 벗겨졌을 때, 여자가 나라는 것을 알았다. 가슴 밑의 점과, 배꼽과 유두의 모양, 모든 것이 욕실 거울 속의 내 모습과 똑같았다. 여자가 지르는 교성도 내 목소리였다. 무엇보다 대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참외 배꼽의 배 나온 남자는,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는 나의 소속사 사장이자 첫 상대 배우였다. 대머리가 소리를 내며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여자는 절정에 다다른 표정을 연기했다. 동시에 오빠도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책상 위에 있는 휴지 뭉치를 허리 밑으로 가져갔다. 나는 큰 소리가 나도록 방문을 닫았다.
 

세상에는 오빠 같이 허리하학적인 남자들이 많다. 어쩌면 나는 흥행에 실패한 개봉 영화의 여주인공보다 유명할지도 모른다. 내가 가끔씩 느끼는 남자들의 시선은 날 알아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상관없다. 그들의 시선엔 확신이 없다. 혹시 누군가 확신을 가진다 해도 아는 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에로영화를 본다는 것을 시인하는 일이다. 그러니 이제 내가 키요미 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오빠조차 알아채지 못한다. 그저 나를 닮은 여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오빠는 매일 내가 나오는 영화를 본다.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검색창에 키요미 준이라는 단어를 치고, 또 친다. 한 번은 내게 일본어를 해석해 달라고 했다. 가족들은 내가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에 다녀온 줄 알고 있다. 읽어보니 데뷔 초에 출연했던 영화의 대사였다. 자막처리가 안 된 영상을 다운 받은 모양이었다. 한숨이 나왔다. 대충 해석해 줬다.
 

그날 밤부터 방문을 잠그고 잠을 잔다. 가능하면 목욕도 휘트니스 클럽에서 마치고 온다. 사람을 키우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나는 사람들을 겪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가르침은 많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이거다.
 

아무도 믿지 마라.
 

*
 

나는 홍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홍천은 서울에서 버스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평생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우리 가족은 대대로 홍천에서 살았다. 홍천의 삶의 방식은 다섯 가지뿐이다. 농사를 짓거나, 맥주공장에서 일하는 것. 그게 아니면 군인이 되거나, 군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것. 마지막은 홍천 군청에서 일하는 것이다. 다들 다섯 가지 중 무언가를 택해서 살아간다. 실제로 할아버지는 농사를 지었고,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오빠는 맥주 공장에 다녔고, 어머니는 외박 나온 군인들을 상대로 만두를 팔았다. 내가 공무원이 됐다면 완벽했을 것이다.
 

다른 방법이 한 가지 있다. 홍천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이다. 알 수 없는 세계로 나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아무도 여섯 번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오감에 만족하듯 그저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생 때 스스로 여섯 번째 방법을 깨달았다.
 

오빠가 가져온 잡지 덕분이었다. 씨네 21이라는 영화 잡지였다. 잡지 속에는 영화에 대한 소개와 평론이 있었다. 영화 속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삶이 존재했다. 세상에는 길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더구나 ‘유지나’라는 평론가의 글은 지금껏 내가 배운 것들을 모두 부정했다. 여자도 충분히 교육을 받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아버지 같은 사람들의 억압이 틀렸다는 것을.
 

나는 씨네21을 정기구독 했다. 아버지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우체국 사서함을 개설했다. 처음으로 돈의 필요성을 느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띄엄띄엄 주는 용돈으로는 구독료를 낼 수가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했다. 홍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식당 서빙 정도였지만, 내게는 꽤 큰돈이었다. 구독료를 내고도 돈이 남았다. 영화를 보고 싶었다.
 

홍천에는 영화관이 없다. 집에 있는 TV는 정규방송밖에 나오지 않고, 그나마도 아버지 때문에 마음대로 볼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나는 군인들이 외박을 나와 자고 가는 모텔에 TV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낮에는 요금도 반값이고, 케이블 TV가 설치되어 있었다. 종일 영화만 틀어주는 채널이 두 개나 있었다. 주말에는 하루 종일 모텔에서 지냈다. 가끔은 조퇴를 하고 모텔에 가기도 했다. 영화 속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막연한 것이긴 했지만, 조금씩 꿈이 생겼다.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진학지도표에서 영화영상학과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거다 하고 생각했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적이 필요했다. 나는 남은 고등학교 시절을 오직 두 가지 일만 하면서 보냈다. 하나는 영화를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두 가지 다 돈이 필요했다. 시간이 부족해 더 이상 아르바이트를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엄마의 만두가게 금고와 오빠의 지갑에서 조금씩 돈을 꺼냈다.
 

-대학 가고 싶으면 간호장교나 해라.
 

내가 영화영상학과 합격통지서를 보여주자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기보다 계급이 낮은 사람의 말은 듣지 않았다. 아버지는 원사였고, 홍천에서 아버지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답은 씨네 21안에 있었다. 유지나 교수는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출발하라, 움직이지 않으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처지는 것이다. 나는 그 말대로 했다. 아버지의 월급과 만두 가게의 재료비를 훔쳐 서울행 버스에 탔다.
 

*
 

오빠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오빠의 방을 쳐다보니 나도 모르게 쯧쯧 하는 소리가 나온다.
 

-밥 먹어.
 

오빠를 깨운다. 밥을 차려 주지 않으면 종일 굶고 있을 게 분명하다. 어릴 때부터 오빠를 부엌에 못 들어오게 한 엄마 때문이다. 오빠는 새집이 세 개나 생긴 머리로 식탁에 앉는다. 눈곱 때문에 눈도 반밖에 못 뜬다. 물을 따라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오빠는 왼손에는 젓가락을 오른손에는 숟가락을 든다.
아버지는 오빠를 왼손잡이로 키웠다. 왼손잡이가 창의력이 높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왼손을 써라.
-하지만 전 오른손이 편한 대요?
-이제부터 왼손을 써.
-아버지도 오른손잡이잖아요?
-걱정마라 왼손잡이는 유전이 아니니까. 백선엽장군도 왼손잡이였다는구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오빠가 오른손을 쓰면 싸리나무로 손등을 때렸다. 오빠의 오른손은 늘 발갛게 부어 있었다. 하지만 여덟 살이 되었을 때, 오빠는 다시 오른손을 써야 했다. 양손잡이가 지능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뉴스에 나왔기 때문이었다.
 

-백선엽장군도 사실은 양손잡이였다는구나.
 

양손잡이라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왼손잡이도 오른손잡이도 아니라는 뜻이다.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손이 없으니까 한심한 사람이 된다. 오빠는 젓가락질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물론 어떤 가수의 노래처럼 젓가락질을 잘 못해도 밥은 잘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건강에는 좋지 않다. 오빠는 반찬을 하나씩 집어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숟가락을 사용한다. 많이 먹을 수밖에 없다. 반찬을 많이 먹으니까 밥도 많이 먹게 되고, 짜니까 물도 많이 마신다. 당연히 살이 찐다. 오빠는 목이 없다.
 

-어디가?
 

오빠가 묻는다.
 

-약속 있어.
 

내가 말한다. 오늘은 첫 시승의 날이다. 엘리베이터를 나오면서 차에 시동을 건다. 경쾌한 엔진 소리가 아파트 현관문을 뚫고 들려온다. 차가 온 지는 일주일이 넘었지만 처음 시동을 거는 것이다. 페라리 H1217, 페라리 중에 가장 싼 모델이다. 서른이 되기 전에 페라리를 사는 게 내 꿈이었다. 왜 그런 꿈을 갖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영화 때문일 것이다. '더락'이라는 내용은 그저 그런 액션 영화에서 주인공인 니콜라스 케이지가 노란색 차를 몰고 추격하는 장면이 있다. 마지막엔 차가 전차에 부딪혀서 폭발한다. 나는 영화를 다 보자마자 검색 창에 영화에 나오는 차 기종이 무엇인지 찾아봤다. 페라리였다. 모델에 따라 다르지만, 싼 것도 몇 억, 비싼 것은 수십억이 넘었다. 잘 모르겠다. 차에 반한 것인지, 수십억이 넘는 차를 폭파시키면서까지 영상을 만들어내는 영화에 반한 것인지. 어쨌든 지금 나는 스물여덟이니 꿈을 이룬 것이다.
 

차체가 가늘게 떨린다. 나는 첫 키스를 하는 여고생처럼 수줍게 차 문을 연다. 빌린 차로 몇 번 연습을 하긴 했지만, 면허를 딴 지 오래돼서 자신이 없다. 면허를 땄을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관인이 찍힌 면허증이 이제 이 나라 어디든 내 마음대로 가도 좋다는 허가증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면허가 있다고 바로 차를 몰고 다닐 수 있는 게 아니다. 차를 살 돈은 있었지만, 차라는 게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니까, 기름 값, 보험, 세금,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함부로 살 수가 없었다.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 천천히 내 쉰다. 사이드미러와 백미러의 각도를 조절한다. 욕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는다. 뒷유리에 초보운전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다. 당연히, 오빠 짓이다. 어젯밤에 밖에 왔다 갔다 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딴에는 날 위한다고 한 일일 것이다. 한심하긴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다. 차에서 내려 뒷유리로 간다. 정말 꼼꼼히도 붙여 놨다. 공들여 다듬은 손톱이 기어이 부러진다. 라이터로 테이프의 접착된 부분을 달군 후에 칼로 천천히 긁는다. 미세한 자국이 남았지만, 쉽게 눈에 띄진 않는다.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물론 난 운전에 능숙하지 않으니까 초보가 맞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려선 안 된다. 광화문에 서 있는 남자가 자신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한 것과 같은 이유다. 도로는 적들로 가득 차 있다. 옆 차선의 차가 초보라는 것을 알면, 함부로 끼어들 것이다. 때로는 겁을 주기 위해 클렉션을 울리는 사람들도 있다. 운전뿐만이 아니다. 모든 일이 그렇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어도 여유 있는 척해야 한다. 힘이 다했다는 걸 들키면 공격이 더 거세진다. 조금 있어도 많은 것처럼, 없어도 있는 척, 못해도 잘하는 척해야 한다. 틈을, 약한 모습을 보이면 세상의 날카로운 송곳니에 물린다.
 

사이드기어를 풀고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페라리의 가장 큰 장점은 정지 상태에서 5초 만에 시속 220km까지 속력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도로에서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빠르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키스할 때 휘감기는 혀처럼 핸들이 부드럽다. 차는 아무런 소리도 없이 스르르 아파트단지를 빠져나간다. 목적지는 없다. 그냥 서울을 한 바퀴 돌아볼 생각이다. 지도를 검색해 보긴 했지만, 처음 가보는 길이다. 네비게이션은 켜지 않는다. 그 장치가 편리하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장치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도심의 도로는 경주 트랙이 아니다. 빠른 주행과, 드래프트 같은 것은 소용없다. 운전을 잘하기 위해서는 길을 많이 알아야 한다. 직접 눈으로 부딪치면서 확인해야 한다.
 

너무 늦게 돌아오면 안 된다. 내일 아침 일찍 결혼식에 가야 한다. 가방에 청첩장이 들어있다. 결혼식에 갈지 말지 일주일 내내 고민했다. 청첩장을 준 이유가 정말 오라는 것인지, 그냥 오랜만에 만나서 인사차 준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래도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는 한때 자매 같은 친구였고, 갚아야 할 빚도 많다.
 

연재가 아니었다면 나는 견디다 못해 홍천으로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굳이 날 찾으려고 하지 않은 것도 돈이 떨어지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연재는 내 대학 동기다.
 

대학 동기는 참 이상한 집단이다. 단순히 수능성적이 비슷해서, 전적으로 우연히 같은 과에 들어왔을 뿐인데도 마치 대단한 인연이라도 되는 양, 몇 십 년 된 친구나 가족인 것처럼 행동한다. 물론 4년 내내 그런 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집단 안에 더 작은 단위의 집단이 생기고, 싸우고, 갈라선다. 그러나 적어도 1학년 1학기 때는 동기끼리 서로 챙겨주고, 잘 지내려고 노력한다.
 

앞에 사거리가 보인다. 여기서 좌회전을 해야 한다. 그런데 좌회전 신호가 없다. 허리를 펴고 심호흡을 한다. 눈치를 잘 봐야 한다. 차들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기회를 기다린다. 지금은 안 된다. 반대편 차선에 벤츠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사고가 나면 문제가 커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뒤에서 클렉션 소리가 들린다. 백미러를 힐금 보니 내 뒤로 차가 밀려 있다. 할 수 없이 직진을 한다. 더 이상 지체하면 운전자들이 창문을 내리고 욕을 내뱉을 것이다. 멀리 돌아가야 한다. 괜찮다. 이 정도 상황은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생각한 것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나는 계속해서 직진과 우회전만 한다. 타이밍을 맞출 수가 없다. 여섯 번째 사거리에서 나는 또 다시 우회전을 한다. 그러나 이번엔 좌회전을 하려다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한 것이다. 오른쪽에 고속버스 터미널이 보였기 때문이다. 터미널 앞은 버스와 사람들로 붐빈다. 차가 막혀 정체가 심하다. 그래도 내 차를 타고 한 번쯤은 와 보고 싶었던 곳이다. 서울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먼저 본 곳도 이곳이었다. 
 

*
 

서울에 도착한 나는 압도적인 건물의 높이에 놀랐다. 서울의 건물들은 층수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건물들 사이에 갇혀 하늘을 찾기 위해 사위를 톺아봤지만, 눈에 들어온 것은 빌딩 유리창에 비친 구름뿐이었다. 사람도, 차도 많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나는 씨네21의 문구를 떠올리며 앞으로 걸었다. 그러나 금지구역에 몰래 들어온 것처럼 무섭고 낯설었다. 내가 합격한 대학은 남산에 있었다. 나는 남산이 서울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곳으로 향하는 버스와 지하철 노선을 외우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정류장 앞에 서자 뭘 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표지판도, 안내판도 너무 많았다. 때로는 너무 많은 지표들이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다. 결국 나는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말했다.
 

학교 근처의 고시원에 짐을 풀고, 학교에 다녔다. 등록금을 내자 돈이 거의 남지 않았다. 다행히도 선배들이 1학년들 밥을 사주는 이상한 전통이 있어 굶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업교재를 살 돈이 없었다. 다음 달 고시원 비를 내기도 힘들었다. 뭔가 일을 하고 싶었지만, 밖으로 나가는 게 무서웠다. 금지구역을 돌아다니다가 누군가에게 잡혀갈 것만 같았다. 나는 학교와 고시원만을 오갔다. 수업 후 뒤풀이나, 선배들과 어울리는 자리도 참여하지 않았다.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나는 자연스럽게 소외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홍천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매일 밤 집에 전화를 걸지 말지 고민했다. 그리고 졸린 눈으로 학교로 향했다. 고시원에서 학교까지는 도보로 십 분 정도 걸렸다. 고시원 골목을 벗어나 큰길에 들어섰을 때 연재를 만났다. 우리는 이미 신입생 환영회 때 통성명을 했고, 같은 수업이 많아 낯도 익었다. 우리는 같이 걸었다. 지극히 피상적인 대화가 오갔다. 초등학교 앞을 지날 때, 애국가가 들렸다. 아침 조회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습관적으로 차렷 자세로 멈춰 섰다. 태극기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렸다. 국기가 다 올라가고 애국가가 끝날 때까지 그렇게 서 있었다.
 

-방금 뭐 한 거야?
 

연재가 말했다. 그녀는 신기한 듯이, 그러나 악의적이지는 않게 날 쳐다봤다.
 

-아버지가 군인이야.
 

내가 말했다. 연재는 왠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수업이 끝나고, 연재는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며 내 소매를 잡았다.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난생처음 보는 스크린은 감동적이었다. 거대한 화면 속의 움직임은 눈을 깜박이는 게 아까울 정도로 실감 났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음향에 맞춰 심장이 뛰었다. 나는 상영관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나가고 있는데도 멍하니 앉아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바라봤다. 연재가 내 어깨를 치지 않았다면,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
 

-맥주 한잔하자.
 

영화관을 나오면서 연재가 말했다. 나는 순순히 연재를 따라갔다. 나는 술을 잘 마신다. 집안 내력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오빠까지 모두 애주가다. 신입생 환영회 때 선배들은 취하지 않는 날 보며 감탄했다. 그런데 연재와 맥주를 마시고 난 처음으로 취했다. 영화의 감동이 내 안의 무엇인가를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빈속인데다 피로가 누적된 탓도 있을 것이다. 술에 취한 나는 연재에게 모든 것을 토로했다.
 

-당분간 나랑 같이 살자.
 

연재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눈물을 닦아줬다.
 

연재의 집은 후문 뒤의 원룸이었다. 그 안엔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다. 인터넷이 연결된 최신식 컴퓨터, 48인치 벽걸이 TV, DVD플레이어, DSLR카메라, 캠코더……. 연재는 집안을 둘러보며 놀라는 날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마치 영화과 학생이라면 이 정도는 있어야지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우선 DVD플레이어로 영화를 봤다. 완전 평면이라는 48인치 TV는 작은 영화관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무엇보다 날 설레게 한 것은 카메라와 캠코더였다. 사진은 내 눈으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순간을 포착할 수 있게 해줬다. 새로운 세상과 날 이어주는 창 같았다. 반면 캠코더는 그 새로움의 세상에서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도구였다. 나는 임의대로 컷과 액션을 외쳤고, 그 순간 세계는 움직이거나 멈췄다. 나는 지구의 자전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배터리가 떨어질 때까지 캠코더의 스위치를 눌렀다.
 

내가 원룸 안에 있는 물건들을 다 사용해 보기도 전에, 연재는 나를 화장대와 옷장 앞으로 데려갔다.
 

-여자의 무기는 미모야.
 

연재가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씨네 21을 떠올렸다. 비슷한 구절이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가꿔라.
 

처음 해본 화장은 어색했다. 연재는 내게 어울리는 적절한 색조와 라인을 만들어줬다. 적십자에서, 헌혈을 하면 군인들에게 나눠주는 스킨과 로션밖에 써 본 적이 없는 내 피부는, 연재의 표현을 빌리자면 화장이 잘 먹는다. 아버지의 일과에 맞춰 규칙적인 생활을 한 덕에 몸매는 균형 잡혀 있고, 매일 10km씩 걸어서 학교에 다녀 다리는 탄력 있었다. 홍천에서 구박받던 큰 키와, 긴 팔다리는 오히려 장점이었다. 연재의 옷은 내게 조금씩 짧았다. 미니스커트가 초미니스커트가 됐다. 내가 가슴이 크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홍천의 바람과 햇볕에 그을린 피부가 건강미를 돋보이게 한다는 것도. 연재는 내게 이 옷 저 옷을 입혔다.
 

-섹시해.
 

네 시간여의 패션쇼가 끝난 후에 연재가 말했다. 조금 피곤했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영화 속 여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다음날, 나는 화장을 하고, 연재가 골라준 옷을 입고 학교에 갔다. 다들 날 못 알아봤다. 선배들조차도 데면데면하게 인사했다. 연재가 나라는 것을 알려주자 모두 놀랐다. 나는 조금 우쭐해졌다. 전보다 밥을 사주는 선배가 많아졌다. 남자 동기들은 수업이 끝나도 내 주위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새로운 모습과 생활에 익숙해져 갈 때쯤, 연재가 남자를 소개해 줬다. 연재의 남자친구의 아는 형이라는 그는 졸업한 우리 과 선배이기도 했다. 나보다 여덟 살이 많고, 영화사 사장의 아들이었다. 그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 놀이공원, 대학로, 케이블카, 수영장, 스키장, 유람선, 아쿠아리움, 클럽, 호텔, 손잡기, 포옹, 키스, 섹스……. 그와 간 곳, 그와 한 모든 것이 내겐 처음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는 키스를 참 못했다. 
 

그와 헤어졌을 때,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안다. 그는 내게 전화를 걸었고, 나는 그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고 여관에 가서, 자고 집에 왔다. 그리고 다음 날쯤, 혹은 며칠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그러니까 나는 일종의 콜걸이었던 것이다.
 

-요즘 좀 지루한 것 같아.
 

그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다. 아마 다른 콜걸을 구했을 것이다. 그는 부자니까. 내게 남은 건 그가 사준 핸드폰과 몇 가지 선물들뿐이었다. 연재는 나를 위로 한다며, 매일 밤 날 클럽에 데려갔다. 조명이 얼굴을 가려주고, 음악 소리가 대화를 묻어버리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연재가 하는 대로 따라 했다. 술값은 남자들이 전부 냈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났다.
 

-아르바이트하자.
 

연재가 말했다. 평소와 달리 견결한 말투였다. 나도 미안함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집에 얹혀사는 건 물론이고, 먹는 것, 입는 것, 차비까지도 연재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연재가 나를 데려간 곳은 고속버스 터미널이었다. 우리는 터미널 옆의 건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에서 연재는 망설임 없이 7층을 눌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운터와 긴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여러 개의 문이 있었다. 노래방 같았다. 서른이 조금 넘은 것 같은 여자가 연재와 반갑게 인사했다.
 

-매니저 언니야.
 

연재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곳은 키스방이었다. 돈을 받고 방에 들어가 남자들과 키스를 하는 것이다. 요금은 삼십 분에 4만 원, 키스를 하는 것 외에 가슴을 만지는 것까진 허용된다. 나는 매니저의 설명을 끝까지 듣지 않고, 크게 고개를 젓고 밖으로 나왔다. 연재가 따라와 내 손목을 잡았다.
 

-뭐 어때? 키스 정도는 클럽에서 만난 애들하고도 하잖아.
-가슴도 만진다면서?
-뭐 어때? 닳는 것도 아닌데.
 

연재가 말했다. 나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훨씬 더 힘들게 돈을 번다. 사단장의 전화를 받고 새벽에 맨발로 뛰어나가는 아버지와, 아들보다 어린 군인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엄마를 떠올렸다. 그래 닳는 것도 아닌데.
계약이 끝나자 사장이 나왔다. 생각보다 젊었다. 사장은 매니저 언니의 오빠였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몇 번 떨어지고 나서 남매가 같이 가게를 차린 거였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건 완전히 합법적인 사업이야. 성기만 접촉하지 않으면 유사성행위가 아니거든. 남편이 정부랑 발가벗고 누워 있어도 삽입만 하지 않으면 간통죄가 성립 안 되는 것처럼. 원래 법이란 게 그래.
 

사장이 말했다.
이주일 동안 연수를 받았다. 키스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연재의 말처럼 클럽에서 게임을 하면 종종 하는 게 키스니까. 하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키스의 종류가 있었고, 방법도 다양했다.
 

나를 가르친 것은 연재였다. 연재는 꽁꽁 언 돼지고기를 사왔다. 지방과 고기가 반씩 섞인 삼겹살이었다. 나는 고기를 구워 먹자는 줄 알고 좀 썰어 오지, 하고 말했다.
 

-이거 빨아.
-이걸 왜?
-연습이야. 언 게 녹아서 돼지기름 맛이 날 때까지 빨아.
 

연재가 말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연재는 일주일 동안 계속 돼지고기를 사왔다. 하지만 입안의 온도로 고기를 녹여도 혀가 얼어서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다. 일주일 째 되는 날 나는 연재에게 기름 맛이 난다고 거짓말을 했다. 연재는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알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 연습은 태연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남은 한주 동안 나는 연재와 계속 키스를 했다. 
 

 -키스는 대화야.
 

연재가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그 일주일 동안 키스를 하면서, 한 학기 동안 함께 생활한 것보다 연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연수가 끝나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힘들었다. 남자들이 대화를 할 줄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남자들은 남의 얘기를 들을 줄 모른다. 나는 아버지들이 아들에게 키스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키스방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력으로는 키스를 할 수 없는 남자들이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도 가끔

오는데,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번은 패션쇼를 마치고 온 모델 같은 남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솔직히 가슴이 조금 뛰었다. 영화처럼 양 팔로 키 큰 남자의 목을 끌어안고, 뒤꿈치를 살짝 들어서 키스해보고 싶었다. 세상에는 하이힐을 신은 나보다 큰 남자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는 바로 자리에 앉았다. 술 냄새는 나지 않았다. 보통은 이름을 묻는다. 그게 예의다.
 

-아 해봐.
 

그의 첫 마디는 그것이었다. 나는 일단 입을 벌렸다.
 

-더 크게.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나보다 더 크게 입을 벌리고 가까이 다가왔다. 누구 입이 더 큰가 재보자는 것 같았다. 내가졌다. 패배의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그는 그 큰 입으로 내 입을 덮어 버렸다. 그놈 때문에 왼쪽 입술

끝에 아직도 흉터가 남아 있다.
 

미친놈 보다는 차라리 술 취한 손님이 낫다. 허청거리며 들어와서는 그대로 소파에 누워 자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늘 그렇게 운이 좋지는 않다. 가장 큰 적은 냄새다. 방에는 세면대가 있고, 일회용 칫솔과 가글이 준비되어 있지만, 홍어를 안주로 먹고 온 사람한테 나는 입 냄새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긴, 담배보다는 심하지 않다. 폐 속에서 올라오는 담배 냄새는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방독면을 쓰고 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언제나 나쁜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 들어 올 때도 있다. 친구나 형들한테 끌려온 입대 직전의 남자들은 진지하게 대화에 임한다. 내가 첫 키스 상대인 경우도 있다. 한눈에 봐도 나이를 속이고 온 것을 알 수 있는 고등학생들은 순진하고 다루기가 쉽다. 내 마음대로 대화를 주도할 수 있다. 그런 애들이 오면 천천히 가르쳐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만들어서 내보낸다. 나중에 여자 친구가 생기면 나한테 감사할 것이다.
 

힘든 만큼 수입도 괜찮았다. 처음 세 달은 나를 소개한 연재한테 10%를 떼어줘야 했지만, 그걸 제하고도 웬만한 대기업 사원들의 초봉보다도 많았다. 일한지 넉 달째 됐을 때, 나는 연재의 집에서 나와 방을 구했다. 학교 근처의 원룸이다. 갖고 싶은 것들도 마음껏 샀다. 나만의 카메라와, 컴퓨터, TV, DVD플레이어, 옷과 화장품들. 등록금도 걱정 없었다. 내가 꿈꾸던 학교생활을 마음껏 영위할 수 있었다. 선배들의 팀에 들어가 단편영화를 찍었다. 우리들만의 작은 스크린에서 상영됐지만, 영화의 엔딩크레딧에 내 이름이 있는 것을 봤을 때는 진정으로 오르가즘을 느꼈다.
 

*
 

터미널 한쪽에 차를 세우고, 은행으로 간다. 축의금 낼 돈을 찾기 위해서다. 아버지에게도 돈을 부칠 생각이다. 며칠 전에 아버지는 내게 전화를 걸어 생전 처음으로 부탁을 했다. 연금으로는 엄마 병원비가 부족한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전화 목소리를 들은 것은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여름이었다. 그것도 엄마와 통화하는 중에 옆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엄마가 전화를 한 이유는 오빠 때문이었다. 그 여름에 오빠는 나를 따라 서울로 왔다.
 

-너 때문에 한수까지 바람이 들어서, 오빠 연락 오면 집에 전화해라.
-이건 반역이야.
 

엄마 목소리 너머로 아버지의 말이 들렸다. 나는 오빠가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반역자끼리 서로 돕고 살자는 취지였다. 그때 오빠를 도와준 걸 많이 후회한다. 오빠가 내가 키스방에서 번 돈을 훔쳐 도망갔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차라리 잘된 일이다. 그리고 이해도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것은 비유일 뿐 아니라 화학적으로 사실이다. 그러나 돈을 만들 때 쓰는 특수 잉크는 피보다 수백 배는 진하다. 그러니 오빠가 내 통장을 훔쳐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나는 여러 개의 계좌에 돈을 나눠서 관리한다. 비밀번호도, 명의도 전부 다르다.
 

모든 책임은 나한테 돌아온다. 내가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이제는 아버지와 오빠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다. 미움도 애정이 있어야 생겨나는 것이다. 안쓰러운 마음은 조금 있다. 몰락한 어떤 것에 대한 씁쓸함 같은 것이다. 아버지는 홍천의 모든 곳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상인협회 회장, 부녀회장, 군수와 협조해서 모든 일에 간섭하고 참여했다. 그러나 원사 계급장을 떼는 순간 모든 것은 사라졌다.
 

나는 아버지가 불러준 계좌로 오백만 원을 송금하고, 천백만 원을 찾는다. 천만 원은 축의금을 내고, 백만 원은 오빠를 줄 생각이다. 다시 시동을 건다. 한 번 내렸다 탔을 뿐인데도, 뭔가 익숙해진 기분이 든다. 이제는 좌회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모든 일에 어떻게든 적응한다. 빙하기를 견뎌낸 포유류의 유전자가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핸들을 왼쪽으로 꺾는 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
 

오빠가 도망간 후에 나는 막막한 마음에 졸업하면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던 키스방에 다시 나갔다. 그러나 나이가 든 만큼,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렇게 평생 살 수는 없었다. 학사학위라는 것이 생겼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하나의 상징일 뿐이었다. 분명 대학은 세상에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곳이다. 그러나 대학이 세상에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알려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알려줄 뿐이다. 운전면허 학원에서 도로주행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려 주는 것처럼.
현실을 알면, 그 공포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밖에 없다. 나는 4대 보험과 상여금 400퍼센트라는 말에 한 번도 관심조차 가져보지 않은 일을 하는 선배들을 여럿 봤다. 공포는 스스로 준비하게 만든다. 졸업장을 받았을 때, 그리고 오빠가 통장을 가져갔을 때, 나는 내 안의 심연 깊숙이 그 공포를 느꼈다. 그것은 마주하기에는 너무 거대하다. 싸울 수 없다면 피하는 것이 좋다. 홍천에서 그랬듯이 나는 또 다시 여섯 번째 선택을 한다.
 

키스방 사장이 소개해준 사람은 일본인이었다.
 

나는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사장의 통역과 가끔씩 들리는 영어에 의존해 계약을 했다. 통장에 찍혀 있는 숫자는 어딘지 현실감이 없었다. 도박장에서 사람들이 많은 돈을 잃는 것은 그 칩이란 것이 현실감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가방을 열어 가득 찬 현금을 보여줬다. 그것은 사실 종이일 뿐이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길들여진 화폐에 대한 관념이 그것의 가치를 무한하게 만들었다. 현금이 씨네 21처럼 보였다.
연재에게만은 사실대로 말했다. 그것이 조금 후회가 된다. 연재한테도 유학을 간다고 말했다면 지금도 친한 친구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내 얘기를 들은 연재는 처음으로 화를 냈다.
 

-그건 몸을 파는 거잖아.
-뭐 어때, 닳는 것도 아닌데.
 

나는 연재한테 배운 대로 대꾸했다. 연재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
 

-더러워.
 

연재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쫓아냈다. 섹시한 것과 더러운 것의 차이는 뭘까? 나는 잘 모르겠다. 자기 자신을 사용하고, 사람들을 유혹한다는 점은 둘 다 같다. 유명 여배우가 나오는 영화의 정사장면과 에로영화는 똑같다. 남자들은 여배우가 나오는 정사장면을 보면서도 자위를 한다. 그냥 시각의 차이일 뿐이다. 연재와 나의 차이, 사람들과 나의 차이. 그러나 그 차이라는 것이 정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고 그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가령 요즘 TV에는 짧은 옷을 입은 소녀들이 나온다. 그들의 옷은 에로배우들이 입는 옷보다 더 면적이 좁다. 그들은 춤을 추면서 외친다. 소원을 말해보라고. 그 앞에는 남자들이 몰려 앉아 박수를 치며 그들의 외침을 따라 부른다. 나는 그 앞에 앉아 있는 남자들의 소원이 무언인지 안다. 소녀들이 자기 앞에서 옷을 벗고 오빠, 오빠하고 외치면서 다리를 벌리는 것이 그들의 소원이다. 어쨌든 나는 솔직하지 못한 연재와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조금 쓸쓸했던 것 같다.
 

*
 

사거리다. 차선은 두 개뿐이다. 이번에 좌회전을 하면 집으로 갈 수 있다. 신호등이 세 개뿐이다. 나는 차들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기회를 기다린다. 신중해야 하지만 너무 시간을 끌면 뒤차의 클렉션이 울릴 것이다. 지금이다. 나는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엑셀러레이터를 밟는다. 알아서 가야 한다. 누구도 도와주지도, 알려주지도 않는다. 이곳은 비보호 구역이다. 사고가 나면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내 이름은 키요미 준이 아니다. 나는 김희재다.
 

그런데 혹시 다들 아는지 모르겠지만, 올해부터 교통신호체계가 ‘좌회전 후 직진’에서 ‘직진 후 좌회전’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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