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대 총학생회를 되돌아보다
서울캠 강한총학생회

등록금 문제와 학문단위 구조조정 등으로 학생들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던 2009년 가을, 강한총학생회(이하 총학)는 55.1%의 투표율을 기록한 가운데 61.7%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52대 총학은 등록금 투쟁, 구조조정 참여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학생들의 실질적인 고민에 적극적인 대응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강한총학생회, 시작부터 난관= 52대 총학은 시작부터 고난에 부딪혔다. 2010년이 채 밝기 전 12월 30일 구조조정안이 발표된 데 이어 신입생 맞이를 준비하던 2월 갑작스런 ‘새터 불가’ 통보 받은 것이다. 총학과 각 단위별 학생회는 총장실에 몇 차례 항의 방문하고 총학 주도의 새터를 이어나갈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자연대만 학생회 주도의 단독적인 새터를 진행했고 다른 학과에서는 본부와 협의해 새터를 기획했다.

대립의 시작, 학문단위 구조조정= 3월 개강 후 총학은 본격적인 구조조정 반대 사업을 벌였다. 학문단위 구조조정의 가장 큰 피해자로 파악된 어문계열 학과의 ‘천막농성’을 지지하고 구조조정 반대 투쟁을 통해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의견 수렴과 지속적인 관심 제고는 이뤄지지 못했고 구조조정안은 이사회를 통과해 내년부터 시행하게 됐다.

구조조정 반대 투쟁은 학생징계사태라는 새로운 국면을 낳았다. 구조조정 반대 퍼포먼스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사건과 ‘고공시위’로 인해 4명의 학생들이 각각 퇴학·무기정학·유기정학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이에 총학은 ‘중앙인 아고라’를 개최하고 구조조정과 학생징계철회를 요구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방학 중 발생한 ‘학생 사찰논란’에 대해서도 총학은 강력한 목소리를 냈지만, 본부로부터 “사찰이 아니다”라는 답변만 들었을 뿐이다. 퇴학생 김주식씨와 노영수씨는 본부측과 법적 공방을 벌이며 대립각을 줄이지 못했다.

끝내 해결못한 소통문제= 총학은 중앙인 커뮤니티에서 벌어진 ‘소나라인 사건’과 학생들의 ‘소통’에 대한 불만으로 곤혹을 겪기도 했다. 총학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동총학생회, 바람막이사업 등을 기획했지만 실질적인 소통 매체가 구축되지 않아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2학기에 접어 들어 총학은 학칙개정운동, 멀티캠퍼스 정보공개 요구 등의 정책을 준비했지만, 전학대회가 성사되지 않아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총학은 학칙과 학생회칙에서 비민주적이고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을 수정하고자 했다. 여기엔 학생회원에 대한 논의와 교내 게시물관리에 관한 사항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학생대표자들의 관심 부재로 큰 힘을 얻지 못했다.

축제, U카드 사업 성공리에 치러내= 올해 축제는 작년에 처음으로 개최됐던 ‘서울캠 LUCAUS 축제’를 이어나갔다. 축제 일정은 9월 중순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잡혀, 시험기간과도 겹치지 않아 많은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총학은 축제에서 부스를 설치해 U카드 발급을 활성화하고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시행하기도 했다. 특히 U카드 사업은 발급 현재 1700여명의 회원을 모집하고 17개 가맹점을 확보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

임기를 한 달 여 남겨둔 지난 10월, 총학은 멀티캠퍼스 건설에 대한 정보 공개요구를 하고 나섰다. 외부 언론 보도와 현실을 고려할 때 멀티캠퍼스 건설 과정에서 의문점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총학은 본부에 강력하게 정보 공개를 요구해 하성규 부총장과의 면담을 가졌지만, 의문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임지혜 총학생회장은 한 해를 되돌아 보며 “내걸었던 공약들에 비해 성과를 많이 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전했다. 학생들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매체 구축의 부재도 아쉬웠던 점으로 꼽았다. 그러나 임지혜 총학생회장은 학생들이 품고 있던 의문과 쟁점 사안들을 표면으로 드러냈던 점은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임지혜 총학생회장은 “실험 실습비 공개와 학칙개정 등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들을 미완으로 남겨 안타깝지만 문제 사안들을 표출해 모두가 논의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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