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으로 잘 알려진 심형래는 영화제작자로 변신한 후 어린이용 SF를 줄곧 만들어왔다. 그는 최근 영화‘용가리’를 제작, 마케팅에 돌입해 칸느 견본시에서 2백만불을 수주하는 등 성과를 올렸다. 그러자 각 언론에서는 남들이 돌아보지 않는 부분을 개척한‘한국형 벤처의 개가’라는 표현으로 칭찬에 칭찬을 거듭했고, 그는 서울대학에 강연까지 나가는 “뜬 사람”으로 변신했다. 영구의 대변신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여기서 멈춘다. 성공은 성공이지만, 그의 영화가 A급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는 B급 영화시장을 공략해 돈을 번 것이지, 무슨 대단한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잘 도전하지 않는 특수효과나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SF장르라는 점을 높이 사줄만은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심오한 생각이나 한국문화의 전형을 반영할 것이라는 기대는 절대로 안한다. 그런데 왜들 이렇게 난리인가?

한국축구가 네덜란드에 무참하게 무너지자, 한국의 언론과 PC통신, 구전통신은 난리가 났다. 패기를 상실한 무기력한 경기에 대한 분노와 허탈감으로 사람들은 차범근 감독의 지나치게 합리적인 “고고함”이 바로 독선과 편견이라며 그를 깨물었고 이 간단하면서도 “뜻깊은” 한 분노하는 “씹기”는 기술위원들이 기언시 경기중에 감독을 해임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잘했다, 잘못했다 말은 많지만 어쨌거나 벨기에전에서 보여준 투혼을 보며 사람들은 우리는 저렇게 해야 이길 수 있다고 한 마디씩 하기를 주저않는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우리 축구의 적나라한 실상을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도 만만찮다. 벨기에전은 마음을 비우고 사투를 결심한 마지막 “전투”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을 뿐, 우리는 멕시코와 상대할 실력조차 없는 2류축구라는 것이다. 우승후보들의 1류축구가 있다면, 거기에는 못 미치지만 상대하면 가끔은 이기는 축구인 아류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도대체 심형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우리는 심형래가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자, 그가 무슨 영화를 만들었는지 돌아보기 시작했다. ‘우뢰매’ 시리즈? 아이들이나 보는 영화아닌가? 녹색눈의 유치한 외계인 영화 아니었나 말이다. ‘티라노의 발톱’? 스필버그의 ‘쥐라식 파크’와 한 판 벌이겠다던 그의 맹세 그 자체가 일종의 코미디였지? 그런데 그런 생각들은 다 어디로 가고 갑자기 ‘벤처기업가’ 심형래가 튀어나오는가? 칸느에서 돈을 벌어왔대서?

영화도 안보고? 맞다. 우리는 그의 영화도 안보고 그를 치켜세우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의 영화보다는 그의 ‘성과’가 너무 지대해서인지도 모른다. 심형래가 잘 못했다는 이야기도, 그의 업적을 깎아내리자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거기는 2류시장이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아, 돈 벌어오는데 2류면 어떤가? 고상한 영화에서 못하는거라면 그런걸로 해야지! B급 영화라서 뭐 가문에 먹칠이라도 한다는 말인가?

바로 이것이 문제다. 1류에 A급이 아니면 돌아보지도 말아라. 아무리 재미없어도 영화제 수상작이면 O.K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한국영화는 아니다! 우리가 그러지 않았던가? 그 정신 덕분에 우리는 우리 축구가 B급 축구라는 점을 인정하지 못했다.

만년 B급에 이제는 한 급수가 더 떨어지려는 점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저 16강에 1승만 되뇌이다보니 우승후보 네덜란드와도 한 판 붙어 이겨주길 바란다. 못난 욕심을 일찌기 버린 곳도 있으니 그 과목이 바로 영화다. A급 망상에 사로잡혀있는 우리들에게 “영화”는 이미 꿈을 상실한 과목이다.

너 생각해봐라, ‘쥐라식 파크’하고 ‘티라노의 발톱’이 비교가 되니? 아 그런데, 그 와중에 생각도 안하던 이 과목에서 돈을 벌어왔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게 AB딱지를 어떻게 붙이든 내용은 따로 생각하고 신기한 일 아닌가? 아니 2류는 돈도 못버나? 아니 2등은 살아남지도 못하나? 라고 변명하기도 전에 돈벌었으니 1류 벤처기업이라고 방석깔고 모셔놓아버렸다.

반면 그래도 일본을 이기는 아시아의 맹주 한국축구가 5대빵이라니, 이게 뭔가, 뭘 이따위로 하고있나! 감독 갈아치워!

A급만 살 것같은 미국에도 B급은 있다. B급만 있을 것같은 아주 후진 나라에도 특A급은 있다. 한 과목의 수준이 A,B,C중 어느 것인지, 우리 곁에 일어나는 일이 어느 정도의 질있는 부류인지 아는 것이정말 필요한 시점이다. 이건 정말 프로축구를 안보는 것과 상관이없을 수도 있고, 한국영화는 죽어도 안본다는 서약과도 관계없을 수 있다. 그러나 충분히 살아날 수 있고 충분히 자라날 수 있는 B급과 2류를 과감하게 죽여버리는 나라에서는 1류와 A급은 없다. 그게 심형래와 한국축구를 연결짓는 아주 “심각한(?)”고리라면 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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