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로서 존재해야 한다.

  내 자신에게 여러 번 물어보았다. 우리는 우리로서 존재하는가? <중앙문화>는 <중앙문화>로서 존재해 왔는가? <중앙문화>는 ‘언로(言路)’로서 존재하고 싶었다. 모금을 통해 <대학개조선언>을 발간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 당시 학교 분위기에서, 반대편의 목소리를 공적으로 표출할 길이 꼭 필요했고, <중앙문화>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그뿐이었다.

  하지만 <중앙문화>는 맡은 바 역할에 맞게 기능하지 못했다. <중앙문화>가 <대학개조선언>을 통해 본부와 학우들에게 던진 물음들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물음들은 소리 없이 사장돼 버렸다. <중앙문화>는 <중앙문화>로서 존재하지 못했다. 다만 <중앙문화>는 ‘무너지는 학내 민주주의’의 상징으로만 기능했다. <중앙문화>를 지지해 준 고마운 사람들이 <중앙문화>에게 원했던 것은 책을 발간하는 ‘성과’였다. 학내 민주주의를 지켜냈음을 보여주는 것, 그뿐이었다.

  각박한 세상에 언론의 자유를 위해 한 푼 두 푼 망설임 없이 모아 주신 분들께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들께는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다만 우리의 역량을 탓하는 것이다. 더 좋은 글, 더 실천적인 글, 더 논쟁적인 글을 쓰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다. 더 날카롭지 못했던 것을 반성한다.

  대학 언론에 몸담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항상, 학우들이 교지를 잘 읽지 않는다고 불평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더 좋은 글을 써서 더 많은 논쟁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만큼 우리 교지를 집어가는 사람들도 더욱 많아지리라. 또 우리의 이야기를 더 크게 외칠 수 있으리라.

  독백처럼 썼지만, 결국 이 글은 반성문이다. 11월 말을 전후해 배포하게 될 <중앙문화 59호>에서 조금 더 실천적이고 논쟁적인 글로 학우들을 찾아갈 것이라는 홍보성 글이기도 하다. 언젠가 편집실에 앉아서 자그마한 상상을 해봤다. 59호로 말미암아 <중앙문화>가 제기할 논쟁적 담론이 본부와 학우들 간 또는 학우와 학우들 간의 건설적 논쟁으로 이어지는 상상. 그때야 비로소 참된 의미의 ‘학교 발전’이 시작되지 않을까? 외형적으로 덩치만 키우는 현재의 방식이 아닌 진짜 내실 있는 ‘발전’말이다. <중앙문화 59호>가 그 밑거름이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용수철을 누르는 것은 더 높이 튀어 오르기 위한 과정이다.

  아참, <녹지>도 근 1년 만에 새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에 더 이상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점차 해결될 문제라고 가볍게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심각한 오해이고, 아직도 사회에는 여성에 대한 심각한 차별이 만연해 있다. 여전히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건,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녹지>가 아직 중앙대학교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억눌림을 끝내고 다시 튀어오를 <녹지>와 <중앙문화>를 기대해 달라.

 

강남규 중앙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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