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이다, 비나이다. 떠돌던 `마녀'들이 이제야 자리를 잡았습니다. 부디
지니고 있는 뜻 넓게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지난 13일 늦은 저녁, 홍익대 앞에 자리잡은 극장 `마녀'는 여성문화운동공간
의 등장을 자축하는 열기로 후끈했다. 개관식의 첫장을 장식한 무인 김경란씨
의 작두 타기는 약2백여 명의 참석자들의 입을 벌여놓기에 충분했으며, 굿이
열리는 중간마다 기원의 소리는 계속되었다. 영화평론가 유지나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개관식 행사에는 제8회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한 바 있는 윤석남
화백, 영화평론가 변재란씨 등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참석했다.

`마녀'. 중세시대 검은 망토와 뾰족한 모자를 연상케하는 색다른 이름의 이 극
장은 올봄 `서울여성영화제'를 치뤄냈던 여성문화예술기획의 또다른 야심작이
다. 대표 이혜경, 프로그래머 남인영, 사무국장 장경선, 극장담당 안미라, 총무
김수미씨 등 상근직원이 5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막강한 조직력은 이미 세인
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여성문화예술기획은 지난 92년 이혜경 대표가 "여성주의 시각에서 대중문화
운동을 펼치겠다"는 각오로 구성된 국내 최초의 여성문화운동단체이다. 그후
여성주의 연극인 `자기만의 방'을 상연했고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를 통해 한
국 여성운동에 영화라는 매체를 정식으로 소개하는 등 짧은 기간 속에서도 알
찬 결실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제는 일정한 근거지 없이 활동했던 생활을 청산
하고 이곳 극장 `마녀'에 짐을 푼 것이다.

"역사를 살펴볼 때 재능 있고 창조적인 여성들이 `마녀'라는 이름 하에 사회로
부터 얼마나 많은 탄압을 받아왔는가. `마녀'는 억압적인 사회규범 속에서 해방
되고자 하는 여성의 상징이다"라고 이혜경 대표는 `마녀'에 대해 나름대로 해
석한다. 또한 "새로운 문화의 기운을 뿜어내는 중심에 이제는 여성이 서야할
때"라며 여성문화운동이 지향할 바를 분명히 했다.

극장 `마녀'는 "여성과 젊은이들의 문화적 전진기지로 거듭날 것"이라는 이혜
경씨의 말대로 개관 첫 행사에 `서울여성영화제 다시 보기'를 마련했다. 지난
14일부터 시작해서 오는 18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영화제는 제1회 서울여성영
화제에서 이미 선보여 좋은 호응을 얻었던 `무소유', `나는 앤디워홀을 쐈다',
`늦게 핀 꽃' 등 11편을 재 상영한다. 또한 여기에 정신대 할머니들의 고통을
그린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2'와 올해 야마가타영화제에서 오스카 신스케
상을 받은 중국 리홍감독의 다큐멘터리 `봉황교로 돌아와'가 추가되었다.

풍성한 극장 외 사업도 눈여겨 볼 만하다. 우선 오는 25일부터 연극 `97 자기
만의 방'이 석달에 걸쳐 공연된다. 원작자 류숙렬씨가 수정 각색한 이번 연극
에는 초기 이영란씨 대신 방은진씨가 출연해 처음으로 모노드라마를 시도한다.
12월 이후에는 공포, 컬트영화 등을 상영하는 심야극장이 주말마다 상설될 예
정이며, 여성주의 문화이론과 관련한 각종 심포지움, 여성미술제,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중이다.

<최보람 기자>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