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신드롬-해방의 상징인가, 종속의 그림자인가」는 논리체계성과 논점의 부각이라는 평가범주에서 우수한 특성을 보였다. 그 이유는 이론적 전제로서 대중문화의 지배논리와 대중관리에 대한 마르쿠제의 비판적 사유를 제시한 후, 장기하 신드롬이 주도하는 인디문화 현상을 논리적으로 비판,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계량화된 수치와 사실성에 의존하는 학술풍토에서 문화적 타당성과 가치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중요한 연구자의 태도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문제를 던지면, 우선 자의성과 추측성 논조를 들 수 있겠다. ‘대중들은… 대안적이고 새로운 문화를 희망하였고’라는 서술에서 ‘대중’의 실체는 불명확하고, 모든 대중들이 ‘대안적’ 문화로서 장기하의 음악을 향유하는지 근거가 부재하다. 둘째, 40~50년대의 대중문화 현상을 주시한 마르쿠제의 사유가 현대 대중문화를 설명하는 데 부합하는지, 혹은 한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없다. 마지막으로, 해방적 가능성의 주체는 누구인지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인디문화 음악가의 노래실천 외에 공중과의 상호작용은 어떻게 가능한지 논점이 부재합니다. 인디문화의 해방적 속성은 특정 음악가의 실천이나 저항적 기질 뿐 아니라 이를 향유하는 공중들의 성찰적 참여를 통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의 구조에 대한 분석이 역동성을 갖기 위해서는 주체의 문제에 긴장해야 할 것이다.

“영화 <육체의 고백> 스타일 분석”은 조긍하 감독의 1964년 작 영화를 필름 누아르로 규정하고 그 스타일을 분석한다. 그러나 몇몇 시퀀스 분석과 음악 분석은 그 자체로서는 상세하다 할 수 있으나 이 영화의 ‘누아르성’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고, 여주인공을 팜므 파탈로 규정하는 것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특히 필름 누아르에는 스타일 못지 않게 그 세계관 역시 핵심 관건이 되는데, ‘징후’라는 표제 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관련된 논의는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멈추고 있는 형국이다.

 

 

주은우 문과대 사회학과 교수

강진숙 미공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