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을 위한 교양: 인문학 강의

1. 왜 윤리인가?

2. 옳음 또는 좋음에 관한 주장들(1)

3. 옳음 또는 좋음에 관한 주장들(2)

4. 공정사회에 관한 주장

5. 도덕 추론과 비판적 사고

6.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펼쳐진 도덕적 사고와 이공학도

 

● 옳음 또는 좋음에 관한 주장들(1)

 

옳은 행위를 규정하는 방법

 

이공학도 6명으로 이루어진 소모임 ‘중대’는 전공과 인문학을 공부하는 동아리이다. 이제 막 미적분학 담당 교수가 선정해준 예상문제 10개를 선배 신문의 도움을 받아 풀려는 중이다. 그런데 선희가 문득 “선배님, 예상 문제는 아니지만 삼각함수와 로그함수의 미분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문제를 몇 개만 꼭 풀어보면 안될까요?”라고 말한다.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이 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예상문제를 5개 이상은 풀어볼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장학금을 목표로 하는 나머지 학생들은 A학점을 받기 어렵다. 선희는 지금 당장은 A학점을 취득할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기본개념만 이해하면 A학점을 받을 수도 있을 만큼 명민하다. 한편, 선희가 풀어보자고 한 문제들 중 일부는 공교롭게도 이번에 출제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기출문제이다. 신문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또 그는 선희 역시 A학점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선희의 요청을 거절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문제들이 이번 시험과 무관하다는 거짓말이다. 신문은 나머지 학생들을 위해 선희의 요청을 거절해야 하는가?

우리 학생들 중에 누군가 위 물음에 대해 “예”라고 답한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다음 주장에 동의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행위 X의 결과가 최대한 많은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킬 경우 또 오직 그 경우에만 X는 좋은 행위이다.” 이에 따르면 선희의 요청을 거절하는 행위는 나머지 5명이 바라는 A학점을 받도록 한다는 점에서 좋은 행위이다.

이 주장은 공리주의의 핵심인 ‘최대다수 최대행복’의 원리에 의거한 것이다. 그러면 영국의 두 철학자 벤담과 밀이 제시한 이 원리가 좋은 행위의 기준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리주의자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대략 이렇다. ㉠우리들은 모두 그리고 언제나 쾌락을 추구한다. ㉡인간은 상호협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모든 사람의 이익을 존중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양심상 고통을 느낀다. 이들 중 ㉠은 ‘행복’이 왜 도덕의 기준인지를 말해주는 근거이며 ㉡과 ㉢은 최대 다수의 행복을 우선시해야 하는 근거들이다. 이는 여러분들도 대체로 동의할만한 사실들인 만큼 공리주의 원리 또한 매우 그럴듯해 보인다.

한편, “아니오”라고 답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 이유는, 거짓말은 나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목적 때문에 그 잘못이 가려지고 있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이 경우 여러분은 아마도, “어떤 행위 X는 그 결과와 상관없이 동기가 올바른 경우 또 오직 그 경우에만 옳다.”라는 주장에 동의했었거나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독일의 철학자인 이마누엘 칸트의 주장으로서 그 근거는 대략 이렇다. 첫째, 이성적 존재자로서 인간은 자연의 인과율에 지배받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지녔다. 둘째, 인간에게는 이성이 명령하는 실천법칙을 마음으로 존중하여 그것에 따르려는 선의지가 있다. 셋째, 실천법칙은 옳은 행위가 무엇인지를 규정하므로 그것에 따르는 것은 의무이다. 이들 근거가 좀 까다롭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번 정리해보자. 예컨대, 어떤 행위 X가 실천법칙이 규정하는 것이라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선의지에 따라 X를 행하되 그것이 옳기 때문에 마땅히 행한다. 즉 X를 행하는 동기는, ‘그것이 옳다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다. 칸트는 이것을 의무 동기라고 부른다. 그리고 욕구나 외적인 강제로 인해 행동할 때의 동기인 끌림 동기와 달리 이 의무 동기만이 도덕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옳은 행위인가? 즉 실천법칙이 옳은 행위를 규정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실천법칙은 일종의 형식적 원리인 만큼 개개의 옳은 행위를 나열하지 않는다. 그 대신 어떻게 해야 옳은 행위를 할 수 있는지를 다음과 같은 진술을 통해 알려 준다. ①어떤 모순도 낳지 않으면서 보편화할 수 있는 준칙(準則)에 따라서만 행동하라. ②나 자신과 타인을 언제 어느 경우든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도록 행동하라. 칸트는 이 진술들을, 특정 조건에 따라 행동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정언명령’이라고 부른다. 바꿔 말하면 ‘명령된 모든 행위는 어떤 조건 또는 결과에 구속되지 않고 행해지는 것들’이다. 그리고 칸트는 그러한 행위들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신문이 거짓말하는 것은 거기에 포함될까, 아니면 포함되지 않을까?

 

김진형

(서울시립대 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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