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만화계의 작가중 누가 가장 그림을 잘 그릴까. 물론 이런 생각에는 매
우 객관적인 그림의 평가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기본적인 데생능력에서 연
출력, 그리고 대표작을 포함한 추구하는 경향에 작가정신이 있느냐 하는 것
까지 감수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작가를 꼽아 본다면 얼핏 떠오르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림이 좋으면 작품이 빈약하고 작품을 따지자면 대
중주의에 물든 상업작가 일색이고, 진정한 작가정신과 만화정신을 추구하는
작가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그러나 분명히 떠오르는 작가가 하나있다. 8
0년대 `장길산'이라는 20권짜리 대하역사만화를 그려낸 작가, 우리 풍토에서
흔치않은 대표적인 역사만화가 백성민이 바로 그다. 장쾌한 스타일의 데생에
는 꼼꼼하고 세밀한 터치가 숨어있으며 만화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나가는 자
유자재의 연출작법을 구사한다. 답답하고 딱딱한 역사물은 무게있되 가볍게
읽어갈 수 있도록 그려내는 만화가가 그다.

황석영이 10년동안 걸쳐 쓴 `장길산'을 그는 두달에 한 권 꼴로 만 4년에 걸쳐
조선조 중엽의 풍속과 인물로 새롭게 만들었다.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역사만화의 전형을 보여 준 그다. 사실 `장길산'은 백성민의 존재를 유감없이
보여주지는 않았다. 80년대 후반 격동기의 한국사회에 많은 지식인, 대학생들
에게 만화의 품격을 최대한 확장시킨 성과에 비해 황석영이라는 작가의 작품
에서 또다른 자신의 세계를 찾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원전에 대한 중압감이
원인이었다. 황석영이 백성민의 그림체가 좋아서 직접 찾아와 부탁한 것이 계
기가 된 만큼, 그의 부담은 당시의 80년대라는 시대적인 상황에 맞물려 원전이
상을 넘지 못하는 한계를 나타냈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장길산'은 몇가지 기록을 갖는다. 첫째
는 당시 문화운동 세대들이 관심을 기울여 만든 (박인배 각색) 첫 만화작품이
라는 점, 둘째는 당시 어려운 여건에서 연재물을 한데 묶어 출판하지 않고 전
작을 시리즈로 출판하였다는 점, 셋째는 만화와 문학의 결합속에서 한국만화
의 장편 역사만화가 출간됨으로써 한국만화의 가능성을 새롭게 모색하는 준
거가 되었다는 점이다.

백성민은 1948년 경남 충무(현재의 통영)생이다. 서라벌 예대에서 동양화를
전공, 1년 반 다니다 그만두었다. 라이파이로 유명했던 산호선생의 문하생으
로 잠시 있었으며 고우영선생의 추천으로 만화계에서 활동했던 만큼 그의 영
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우리나라 만화가들의 행보가 대개 비슷하듯이 한때 아
동잡지에 일본만화를 모작모사하기도 하였으며 만화대본소로 풀려나가는 무
협만화, 기업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요즘 만화가 10대층의 매니아에서 벗어나
남녀노소 세대, 연령차없이 넓어진데 반해서 읽을만한 만화가 별로 없는 것은
아무래도 백성민과 같은 작가의 부족도 한 원인이다. 다음은 어떤 작품이 나올
지 주시하면서 백성민과 같은 뚝심있는 작가들의 출현이 기대된다.

곽 대 원<상명대 만화과 강사>만화세상을 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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