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선생의 삼근계

 

 며칠 전 3박4일의 일정으로 학생들과 해남지역을 다녀올 기회가 생겼다. 학생들과 순례한 여러 지역들 중 강진의 다산문화관에서는 다산과 그가 가장 아끼던 제자 황상(黃裳)에 대한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 특별전에서 다루어졌던 삼근계(三勤戒)의 가르침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내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기에 이 지면을 빌어 소개하고자 한다.

황사영백서사건으로 인해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되었을 때 그의 명성에 이끌려 배움을 자청한 많은 학동들 중에 15세의 황상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소년에게 다산이 책 한권을 주며 공부에 정진해보기를 권하자, 이 어린 소년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주저했다고 한다. “선생님, 저는 공부에 관한 한 부족한 점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鈍)하고, 둘째는 앞뒤가 막혀(滯)있고, 셋째는 미련 합니다” 어린 소년의 이러한 우려에 대해 다산은 말했다. “공부하는 자들에게는 세 가지 부족한 점이 있는데, 네게는 그러한 단점이 없구나. 먼저, 기억력이 뛰어난 자는 공부를 소홀히 하며, 둘째, 글 짓는 재주가 좋은 자는 허황된 곳으로 흘러버리며, 셋째, 이해력이 빠른 자는 깊이 없이 거칠게 흐르는 폐단이 있다. 둔하지만 파고드는 자는 식견이 넓어지고, 막혔지만 뚫어내는 자는 흐름이 거세지고, 미련하지만 잘 닦는 자는 빛이 난다. 파고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근면함(勤)이다. 뚫어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근면함(勤)이다. 닦는 방법은 무엇인가? 근면함(勤)이다. 그러면 이러한 근면함은 무엇으로 지속하는가? 마음을 확고히 하는데(秉心確) 있다” 황상의 인생을 바꾼 다산의 이 가르침은 미천한 신분의 그를 당대에 손꼽히는 문장가로 만들었다.

이러한 다산의 가르침은 동서양과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최근에 ‘1만시간의 법칙’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던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는 심리학자 루이스 터먼(Lewis Terman)이 20세기초에 시작해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연구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놀랍게도 어릴적 지능지수가 최상위에 속했던 미국 최고의 영재들의 사회적 성공도는 일반인들에 비해 그리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현대사회에서 전문가로서 성공하려면 뛰어난 머리보다 10년 동안 1만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내·외부적 기회가 필요함을 강조한 글래드웰의 논지는 19세기 초 다산의 것과 매우 닮아있다.

다산은 근면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의지가 필수적임을 강조하였다. 자신은 어떤 모습으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싶은지에 관한 장기적 비전, 향후 몇 달 동안은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단기적 계획 등은 다산이 강조한 ‘병심확’, 즉 마음을 바로잡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주어진 외적기회에 대한 파악을 통해 마음을 잡은 후 근면함을 지속해야 한다는 조금은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 다산의 가르침.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기실현의 방법을 묻는 사람들에게 사실 이 이상의 좋은 대답은 없는 듯하다.

마강래

산업대 도시및지역계획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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