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로 확산됐을 때만 해도 신자유주의 질서에 균열이 시작됐다는 예측이 드문드문 제기됐다. 그러나 자성의 목소리도 잠시. 막대한 공적 자본 투입으로 미국발 금융위기의 급한 불이 꺼지자 신자유주의는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중대신문은 신자유주의 연재기획 4부작 중 제 2회에서 ‘시민·노동진영은 신자유주의 흐름을 역전시킬 수 있나’를 다루고자 한다.

“There Is No Alternative.”(TINA) 1980년대 영국 총리를 지낸 마거릿 대처가 한 말이다. ‘신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신자유주의의 대안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發) 세계 경제 위기가 터지자, 자본주의 체제를 가장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 그들이 지난 30년 동안 자본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했던 이데올로기를 이제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큰 은행인 도이체방크의 총재 요세프 아커만은 2008년 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시장의 자기치료 능력을 더는 믿지 않는다.” 오랫동안 신자유주의를 열렬하게 옹호해 왔던 <파이낸셜 타임스>의 수석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도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 투입이 단행된 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08년 3월 14일은 세계 자유시장 자본주의라는 꿈이 사멸한 날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의 세계 경제 위기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들을 통해 발전했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간, 신자유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세상의 악들이 일소될 것처럼 말해왔다. 그들은 무역과 투자와 금융의 자유화, 국가 개입의 축소가 경제 성장을 낳을 것이고, 고용을 창출할 것이며, 빈곤과 빈부 격차를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한 현실이 수백만 사람들로 하여금 신자유주의의 정당성에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심지어 미국의 주류 연구소조차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미국의 경제정책연구소는 세계화 시대(1980-2000년)와 그 전 20년의 시기(1960-1980년)를 상세하게 비교했다. 1인당 소득 증가, 평균 수명, 유아와 성인 사망률, 문맹률, 교육 정도 등, 두 시기의 성과를 비교하고는 “경제 성장을 비롯한 거의 모든 지표에서 지난 20년은 그에 앞선 20년에 비해 매우 분명히 후퇴했다”고 결론 내렸다.

신자유주의가 낳은 참혹한 결과-모든 것이 다국적 기업들의 이윤 대상이 돼 상품화되는 시도-때문에 신자유주의는 처방이 아니라 질병이라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확산됐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반자본주의 운동)의 직접적 기원은 1995년 프랑스 공공부문 노동자 파업이다. 당시 노동자들은 대량해고와 감원, 임금 저하, 노동시간 증대 등에 맞서 한 달 간 파업을 벌였으며, 수많은 반자본주의 지식인들이 이 투쟁에 연대했다.(대표적으로 故 피에르 부르디외)

반자본주의 운동은 1999년 시애틀 시위를 기점으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WTO 각료 회담을 무산시킨 시애틀의 성공은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신자유주의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사람들은 신자유주의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무적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새 천 년은 신자유주의 신화가 깨지고 저항 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에서 시작했다.

2001년 이탈리아에서 G8에 반대하는 투쟁에 30만 명이 모인 것은 북미의 시애틀을 유럽으로 가져다 놓은 격이었다. 저항 운동이 확산되는 분위기에서 2002년 4월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혁명적 좌파 후보들이 10퍼센트 이상 득표했다.

저항은 북미와 유럽에 국한되지 않았다. 브라질에서는 매우 성공적인 세계사회포럼이 개최됐고, 2001년 아르헨티나, 2005년 볼리비아에서는 대중 봉기가 일어나 대통령을 쫓아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시도하고 있는 ‘볼리바르 혁명’도 신자유주의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도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저항은 계속됐다. 프랑스에선 2005년에 당시 시라크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적 유럽 헌법을 부결시켰으며, 이듬해엔 26세 미만 청년들의 자유로운 해고를 가능케 하는 CPE 법안 통과를 프랑스의 학생과 노동자들이 두 달 동안 지속된 광범하고 단호한 대규모 운동으로 막아냈다.

한국에서도 2000년 10월 서울 아셈(아사아·유럽 정상회의) 반대 투쟁과 2005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아펙(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반대 투쟁, 2007년 한미FTA 반대 운동 등,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자?학생 들의 저항이 있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흐름을 역전시킬 수 있는지의 분수령은, 지금의 세계 경제 위기의 대가를 누가 치를 것이냐를 둘러싼 투쟁의 성패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현재 폭풍의 눈은 그리스다. 2008년 12월 발생했던 그리스 청년 반란의 선례를 따라, 그리스 노동자 운동은 정부의 긴축 정책―임금 동결과 연금 삭감―에 반대하는 파업과 시위를 벌였다. 그리스 노동자들은 전 세계의 사회주의자, 노동조합원과 반자본주의자 들의 연대를 필요로 한다. 금융 시장은 그리스를 첫째 표적으로 삼았다. 금융 시장은 다른 나라들도 노리고 있다. 그리스 노동자들의 승리는 다른 나라의 저항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비록 불균등하지만, 유럽 전역에서 노동자 저항이 일어나고 있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서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가 잇따라 일어났다.

한국의 이명박 정부와 사장들도 경제 위기에 대한 고통을 노동계급에게 떠넘기기 위한 공격을 본격화하려 한다. 그러나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지난 2월 25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사측의 정리해고에 맞서 전면 파업에 돌입한지 10시간 만에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중단하겠다는 사측의 양보를 이끌어냈다. 1천1백99명의 대량해고 계획에 맞서 금호타이어 노동자들도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재단과 학교 당국의 학교를 기업화하려는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맞서 중앙대학교 학생들이 저항에 나섰다. 이 투쟁은 이명박 정부와 다른 대학들의 신자유주의적 교육 ‘개혁’ 시도에 맞선 싸움의 최전선에 있다. 중앙대학교 학생들의 투쟁이 꼭 승리해 교육의 공공성과 학문의 자유가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앞서, 지난 10여 년간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반(反)신자유주의 저항(과 가능성)에 대해 살펴봤다. 이러한 저항이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완전히―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역전시키기 위해선, 결국 신자유주의의 핵심 교리인 이윤과 경쟁 논리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한다. 그리고 이 맹목적인 이윤과 경쟁 체제-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오늘날의 세계 경제 위기의 원인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이라고 얘기한 노동자 계급의 집단적 힘을 주목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체제에 도전할 힘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노동자들의 노동 없이는 단 하루도 돌아갈 수 없다. 다만 노동자들이 이와 같은 자신의 힘을 아직 행사하지 않고 있는 것은 자신감과 인식의 발전이 일률적으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지, 그들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 아니다.

앞의 다양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오히려 성공적인 반자본주의 투쟁 사례일수록 노동자들의 집단적 참여가 관건이었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힘을 끌어내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노동계급의 정치가 중요하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고무하고 그러한 투쟁이 이윤보다 사람의 필요를 우선시하고 시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데 까지 나아가게끔 만들 정치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칼 마르크스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마르크스는 1845년에 “철학자들은 세계를 이렇게 저렇게 해석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하고 썼다. 현재 상황에서 세계를 변혁한다는 것은 두 가지를 뜻한다. 하나는 노동계급을 동원해서 해고, 임금 삭감, 주택 압류, 복지 삭감, 세금 증가 등 앞으로 벌어질 온갖 공격에 맞서 저항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궁극적으로 벗어나는 길은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이윤이 아니라 필요를 위한 생산 체제로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것뿐임을 이해하는 운동과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 위기에 따른 절망적 고통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기보단, 절망적 해결책을 거부하고 희망의 새 집을 짓기 위해 내일의 벽돌을 놓는 사람들이 돼야 한다.

 

신정환 ‘다함께’ 서울 남부 지구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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