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인 3월 24일, 회사측과 임금 및 단체협상을 체결하고 드디어 조인식까지 마쳤다. 작년 10월 20일 공공노조에 가입하여 분회창립식을 한 후 거의 5개월만의 일이다. 여성인 환경미화원의 경우 14.5%의 임금을, 남성인 방호원은 11%의 임금을 인상한 것이다. 뿐만아니라 환경미화원은 1시간 일찍 퇴근하게 되었고, 방호원은 경비업무 외의 잡무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나이먹은 우리가, 사회에서 거의 퇴물취급을 받는 우리가 해낼수 있을까’하고 수없이 되물었지만, 결국 우리는 해내고야 말았다. 용역업체에 속한 비정규직이라는 열등감을 비롯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단결된 힘으로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이루어낸 나와 우리 조합원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하루라도 청소를 하지 않고 건물 경비를 서지 않으면 대학교는 난리가 난다. 그만큼 우리는 중요한 일을 한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우리는 꼭 필요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살아서 학교캠퍼스를 위해 몸을 부지런히 움직임에도 마치 대학 내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취급을 받는다는 말이다. ‘투명인간!’

  대학교에서 청소하고 경비를 서는 우리는 대부분 오랫동안 다녔던 직장에서 은퇴하고, 가정에 몇 십만원이나마 보태고자, 노후에 얼마라도 벌어서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취직하였다. 어찌보면 지금의 일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 직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근로조건이나 임금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고 지금의 직장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냥 만족하며 일하기에 근로조건은 상식이하를 맴돌았다. 휴게시간을 쓸데없이 많이 명시해 놓아서 실제로 일을 했음에도 근로시간으로 인정을 받지 못해 실질적으로는 법정 최저임금을 밑도는 임금을 받아왔다.

  비교적 쉬운 업무인 경비를 선다고 해서 법정최저임금의 80%를 받는 우리 남자들은 사무실에서 야간에 잠자는 시간은 근로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잠을 자다가도 학생들이 문을 열어달라고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경비업무가 아닌 무거운 짐나르기, 눈치우기 등 건설현장에서 하는 일들도 무수히 많이 해야 했다. 점심값도 지급이 안되서 눈치를 보며 구석에서 음식을 해먹거나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스쿨버스가 안다니는 방학에는 자비로 출퇴근을 했지만 교통비도 지급받지 못했다.학교에서 근무한지는 10년이 넘기도 했지만 업체가 바뀌면 근속연수를 인정받지 못했다.

  나이들어서 이 정도도 감지덕지 해야한다는 의식을 알게모르게 주입받았고 우리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동조합을 하면서, 용역회사와 학교에 당당한 목소리를 내면서 우리는 생각이 바뀌고 우리의 삶을 대하는 자세도 바뀌었다. 우리도 중앙대학교의 당당한 구성원이며 가족이다.  이후에도 학교측이 강의동을 빛내고 지켜내는 우리를 학원의 구성원으로, 중요한 일을 하는 사회의 어엿한 직장인으로 대해주기를 기대한다.

이병준 안성캠 방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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