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의 모든 이론을 한꺼번에 논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지면의 제약이 있기에 ,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의 역사성’과 관련된 주제만을 검토할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의 생애와 이력도 생략이 가능할 것인데, 다만, 그 유명함은 보통 그만한 ‘오해와 편견’을 낳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이론을 이해하는데 도움보다는 걸림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더 큰 것 같다.
 

  필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오해와 편견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윤율 저하로 인한 자본주의의 붕괴와 사회주의 혁명의 도래를 주장했지만, 실제 자본주의는 20세기에도 성공적으로 부활했다. 결국 마르크스는 틀렸다.’

  그런데 만약 언젠가, 몇 십 년이나 몇 백 년 (또는 몇 천 년) 후에, 실제로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체계가 붕괴한다면, 그 기간 동안 ‘틀린 이론’이라고 여겨지던 마르크스의 이론이 순식간에 ‘맞는 이론’이 되는 것일까. 분명 마르크스는 『자본론』에 ‘몇 년 몇 월에 자본주의가 붕괴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써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는 언젠가 붕괴할 것이다’라고 한 적도 없다.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서술한 것일까.

  그의 전작(前作)과의 비교는 『자본론』의 핵심을 잘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된다. 마르크스는『자본론』을 집필하기 전인 1857-58년에 『자본론』의 초고에 해당하는 글인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일명 『그룬트리세』)을 쓴다. 이 둘을 비교하면 오히려 57~58년 원고가 더 논리적인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자본론』에는 ‘상품과 화폐’부터 시작하는 논리적인 설명의 중간에 ‘시초축적’, ‘공장법’, ‘기계 도입’ 등과 같은 역사적인 설명이 등장하여 오히려 그 전작보다 일관성이 더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가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한 책이 『그룬트리세』가 아닌 『자본론』이라는 것은, 마르크스 작업의 핵심이 ‘역사와 법칙의 관계’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연하자면 다음과 같다. 대체로 ‘물이 더 필수적인데 왜 다이아몬드가 더 비쌀까’에서부터 시작하는 보통의 ‘경제학원론’ 책과 마르크스의 서술의 차이점 중 하나는,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초역사적인 인간의 욕구와 합리성의 발현으로 파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자본주의라는 체계가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기에 출현해서 지속해왔다는 사실은, 개인들의 자본주의적 욕구와 합리성이 당연히 자본주의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역사적인 기원을 갖는 특정한 시기의 생산양식으로 파악했다.

  그 유명한 ‘이윤율 저하 법칙’을 예로 들어보자. 마르크스는 ‘가치’와 ‘사용가치’라는 개념의 발견과 이 둘의 구분을 도구로 하여, 자본주의적 기술진보에서 필연적으로 ‘이윤율 하락이라는 일반 법칙’이 도출됨을 증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일반법칙이 역사적으로 ‘상쇄요인’들과 결합하여 나타남을 보여주었고, 그래서 “그 법칙에 하나의 경향일 뿐이라는 성격을 부여”(『자본론』 제3권 3편)했다.

  이러한 『자본론』의 분석은, 위에서처럼 늘 ‘틀린 이론’으로 남아 있다가 어느 순간 ‘맞는 이론’이 되는 작업이 아니라, 자본주의만의 고유한 궤적 그리고 자본주의 내에서의 역사적 궤적을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준 작업인 것이다. 마르크스의 분석틀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는 최근의 국제 경제 정세를 볼 때 『자본론』의 유용성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끝으로 하나만 더 지적하자. 『자본론』의 저자인 마르크스의 시대적 한계, 작업의 유한성 등으로 인해, 이 책이 열어준 인식의 지평은 딱 그곳까지만 열려있다. 그 적용가능성과 설명력을 확장시키는 것은 이후 작업의 성과에 달려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뉴튼의 발견을 발전시켰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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