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언제나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신속한 취재로 왜곡 없는 기사를 생산해야 한다.’ ‘단순히 정보제공의 차원을 넘어 사회정의를 실현하기위해 여론을 올바로 이끄는 선구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것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가슴에 품었다. 바로 기자의 역할을 말이다.

  매주 출입하는 취재처 중에 시설관리팀이 있다. 학교의 전반적인 시설물을 책임지고 각종 공사를 도맡아 하는 부처이다. 이 곳 팀장과 대면할 때면, 철없는 기자의 한심한 물음으로 팀장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역력하다. “기숙사 감리 용역업체 선정이요? 감리가 무엇인데요?”, “건축심의랑 건축허가는 어디서 받는 건가요?” “기공식은 꼭 해야 하나요?” 이런 질문 뒤에는 언제나 ‘이런 것도 모르고 기자를 어떻게 하느냐’는 핀잔이 주어진다.

  한번은 흑석동 뉴타운 개발 취재를 위해 재개발정비조합원과 만났다. 그런데 대화를 가만히 살펴보면 기자와 취재원이 아니다. 마치 선생과 학생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주민 공람이 대체 무엇입니까?”, “주거이전비와 임대아파트는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죠?”, “사업시행 인가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나요?” 일방적인 물음의 연속이다. 처음엔 ‘학생 세입자들의 피해가 막심한데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다소 과격하게 말하려 했건만 오히려 한 수 배우는 ‘하수’의 심정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기자의 역할을 운운하기에 앞서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깨달았어야 했다. 바로 역할과 자세의 합치이다. 기자로서의 사명감을 명확히 인식하고 책임감이 무엇인지 분명 알고 있다. 하지만 기자의 근본을 이루는 ‘자세’에선 자격미달이다. 사전 취재를 통해 적어도 용어의 뜻이 무엇인지 묻는 불상사는 없어야 했다. 학과의 전공에서 저널리즘의 특성, 탐사보도의 이해 등과 같은 방대한 이론을 습득했으나 기자로서 스스로 올바른 자세를 함양하는데 실패했다. 강의시간 중 특히 마음이 찡했던 말이 생각난다. “기사는 머리로 쓰다가 발로 쓰고 그 후엔 폐부(肺腑)로 써야하며 나중엔 가슴으로 쓸 정도는 돼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취재처의 용어도 이해 못하는 이 한심한 기자는 기사 작성의 첫 단계인 머리로 쓰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할 수 있겠다.

  취재를 하루에 몇 번씩 가는 경우도 있다. 그 때마다 부족함을 한없이 느낀다. 처음에 그 상실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도대체 기자로서 알아야 할 것도 공부해야 할 것도 이렇게 많은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기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모든 상실감은 해소됐다. 오히려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기폭제로 작용하여 자세를 올곧게 하는데 최선을 다하게 됐다. 역할과 자세의 합치야 말로 진정한 기자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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