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리>, <웰컴투 동막골>, <JSA>, <태극기 휘날리며>등이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면서 한국영화계에는 하나의 명제 아닌 명제가 유행했다. 한국영화의 성공은 남북 휴전선에 있다는 것. 그러나 남북문제를 다룬 영화 <태풍>이나 <국경의 남쪽>이 실패하면서 이러한 명제는 깨어지고 다시금 하나의 명제가 성립했다. 한국에서 탈북자 문제를 다루면 흥행에서 실패한다는 것. 그러나 확신은 이르다는 지적도 있었다. 영화들이 거대 제작비에 비해 완성도가 낮았기 때문이라는 지적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잘 만든 영화 <크로싱>도 실패했다.

 대중적 인식 탓 만일까? 탈북자를 다룬 이들 영화가 무조건 잘한 것은 아니다. 탈북자를 다루는 영화들은 탈북자를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대하기보다는 애써 북한 주민 출신이라고 구별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고통을 대중적 흥행을 위한 감동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들이 오히려 ‘탈북자 편견’을 강화한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존재인데 말이다.

 보수 세력이 열광한 간첩 원정화 사건은 조작 의혹 속에 편견을 더 확인 강화시켰다. 우선 여성 간첩을 미모로 대하는 편견이다. 원정화 사건을 다루는 미디어의 보도는 여성의 외모에 집중했다. 특히 조중동은 ‘여간첩 미모는 어떻길래’, 한국판 마타하리, 성(性)포섭과 같은 선정적인 제목을 뽑기에 서슴지 않았다. 일부 인터넷 매체는 7살의 딸이 있는 그녀의 얼굴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 다음으로 탈북자에 대한 편견의 강화다. 탈북자를 위장해서 간첩 활동을 했다는 사실은 탈북자들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강화했다. 더구나 젊은 여성들을 향한 시선은 더욱 이중적으로 괴롭게 하는 것이었다. 여성탈북자로 위장해 성을 수단으로 공작을 했다는 보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편견에 기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북한 여성은 결국 편견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이들의 수단이 되었다.

 한편 보수매체들은 탈북자들의 증가 추이만을 다루고 편견에 적응하지 못해 한국을 떠나는 탈북자들에 대해서는 잘 다루지 않는다. 남북관계의 단절로 치닫고 있는 보수 정부의 정책은 탈북자 문제를 포함해 남한만의 편견을 강화하고 있어 더욱 우려스럽다. 보수 세력은 편견을 이용해 반대급부로 이익만을 취할 것이 아니라 남북 전체에게 어떤 게 더 이로운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김 헌 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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