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爾(이)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공길’이 이젠 말 많고 탈 많은 ‘석봉’이 됐다. 그 주인공은 바로 연극과 91학번 박정환 선배다. 기자가 선배를 찾았을 때 선배는 연습실에서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를 맹 연습중이었다. 대본을 손에 쥐고 열정에 찬 눈망울로.

배우가 배역을 맡는다는 것은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는 선배. “오랜 친구 한명을 얻는 것과 같죠. 그리고 그 배역을 끝내고 다른 배역을 맡았을 때 전 배역이 서서히 지워지죠. 예전에는 마음이 아팠지만 지금은 보낼 줄 알게 됐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때 느낌이랄까. 시원함과 섭섭함이 교차하는 그런 마음이요.”

나의 인생, 나의 연극

 선배는 기자가 질문도 하기 전에 자신의 배우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중학교 때 집에서 지물포를 했어요. 그런데 손님이 연극표를 하나주셨지.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게 됐어요. 그때 탑조명안에서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 그 힘에 압도된 거죠.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를 할 때 그렇게 가슴이 후련할 수 없더라고. 말 그대로 뻥 뚫리는 느낌, 그 느낌이 좋아서 연극을 시작하게 됐어요.” 선배의 눈에는 추억이 서린다.

“일단 시작은 했는데 집이 너무 가난했어. 남들은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기 위해 교습소를 다닌다지만, 난 그렇지 못했거든. 그래서 무작정 서울예전에 찾아갔어요. 거기 형들 따라다니며 어깨 넘어로 배웠지. 그렇게 배워서 중앙대 시험 보고 덜컥 붙었어요. 아마 실기를 잘 봤나봐. 하하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길로 선배를 인도한 것은 배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시작한 선배의 대학생활. 그 생활이 순탄치 만은 않았다. “자취방 구할 형편이 못돼서 분장실이나 소극장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어. 등록금은 직접 벌어서 다녔지. 휴학하고 1년 동안 벌어서 다음 1년 다니고, 그러느라 학교를 좀 오래다녔어.” 

그렇게 힘든 시절을 보내고 선배는 결국 배우라는 꿈을 이루었다. 남들 부럽지 않은 팬클럽도 있고 선배를 보러 매 공연마다 찾아오는 마니아층도 생겼다. 이런 그의 인기에 어깨가 으쓱해질 만도 하지만 그는 자만하지 않는다. “팬클럽? 팬클럽이 아니라 식구예요, 식구. 오히려 가족보다 더 가깝게 잘 지내요.” 이렇게 많은 지원군을 얻었기에 그의 어깨가 든든해 보이는 것이리라.

“처음에는 그냥 연극배우만 되길 원했어. 사람이 참 욕심이 많은게, 연극배우가 되고 나니 작품이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리고 작품이 끊이지 않게 되니까 또 욕심이 나더라고 하하하.” 그는 계속 말을 잇는다. “대본이 없으면 배우가 아니다.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 왔는데, 다음 욕심이 뭔 줄 알아? ‘연극해서 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 실제로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연극을 하면서도 줄 곧 아르바이트를 해야했다. 그렇게 견디고 기다린 끝에 그는 결국 마지막 꿈도 이뤘다.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기다리니까 돈도 자연스럽게 벌게 되더라고. 연극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기다림인 것 같아.” 그가 힘들었던 것은 연극 때문이었고 그를 이기게 한 것도 연극이었다. 이것이 그의 인생에서 연극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감동할 수 있는 공간, 대학로

“배우는 작품을 하는 사람이야. 많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을 돋보이려 하지 않으면서도 잘 표현해야하지. 연예인은 자신이 돋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이는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다르지.”

이렇게 연예인과 배우의 차이를 조근조근 설명하더니 연극배우를 꿈꾸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곁들인다. “대학로는 연기자가 되기 위해 거쳐가는 공간이 아니야. 대학로는 끝을 보는 공간이지. 그런 착각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동안 대학로에 가졌던 환상을 깨뜨리라고 그는 충고한다. “연극배우를 꿈꾼다면, 존경하는 선후배를 찾고 싶다면 대학로로 와. 일단 와서 많은 작품을 보고 느끼고 감동하고 … 온 몸으로 체험해야 배울 수 있는 것이 연극이라고 생각해. 많은 작품을 돈내고 볼 능력이 없다면, 연극배우와 친해져. 연극하는 사람은 연극할 사람을 알아보거든.”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대학로는 거쳐가는 공간이 아니라는 그의 마지막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연극을 시작한 이유가 탑조명안의 생명력이었듯 그의 연극을 향한 열정도 끊임없이 샘솟을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연극무대에 오를 박정환 선배, 탑조명안의 그의 모습이 연극 배우를 꿈꾸는 다른 이의 꿈이자, 희망이다. 

박정환 선배 프로필
출생 1972년 10월 18일
학력 중앙대 연극영화과
현재 극단 '우인' 단원

출연작  형제는 용감했다 -석봉 역
 미친키스 - 장정 역
 爾(이) - 공길 역
 미스터 마우스 - 인후 역
 뮤지컬 오디션 등 - 최준철 역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