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스타벅스 등 세계적 기업의 이면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다국적 기업의 횡포가 외국에 진출한 한국계 기업에서도 버젓이 연출되고 있다.


지난 13일 대방역 근처 일경빌딩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시위 중인 사람들 사이 군데군데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외국인이 눈에 띈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인가 했는데, 필리핀 현지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라고 한다.


(주)일경은 필리핀 현지 법인 ‘필스전’을 소유한 한국계 다국적 기업이다. 약 400명의 현지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이곳에는 노조가 없었다. 회사가 강경하게 노조를 거부한 탓이다. 그러다 2006년에 대법원이 노조를 인정하고, 노조원들이 단체협상을 요구하자 필스전은 노동자들을 억압하기 시작했다. 필리핀 당국과 함께 파업을 폭력으로 진압하고, 괴한을 사주해 여성 노동자를 길가 구덩이에 버렸다.


이날 집회에서는 필스전 노동자들과 한국인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이 같은 필스전의 행태를 규탄하고, (주)일경에게 협상을 건의했다. 집회에 참석한 알리안츠생명 노동자 김만석씨는 “우리도 독일 자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임금이 체결돼 파업 50여일을 맞고 있다. 국가만 다를 뿐 필스전 노동자의 경우도 같다. 한국 기업도 같은 일을 저지른다는 것이 안타까워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실 기업이 ‘OECD 다국적 기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위배할 경우 국내 연락사무소에 진정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적인 강제 수단이 없어 그저 ‘권고’에 그칠 뿐이다. 한국은 일본, 멕시코와 더불어 이 국내 연락사무소가 잘 운영되지 않는 나라다. 국내기업에게 억울한 일을 당한 현지 노동자가 이를 호소할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한편 같은 날 오전 11시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는 이랜드일반노조와 뉴코아 노조가 이랜드 그룹 홍콩법인 홍콩증시 상장을 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노총산하 민간서비스사업연맹 이성종 교육선전국장은 “노사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불법 영업을 하는 기업이 국제적 증권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국가적 수치다. 한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서라도 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계 다국적 기업의 횡포는 기업 이미지를 넘어 국가적 망신이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에 대한 명확한 국제·국내법 기준 제정을 위한 움직임은 현재도 10년 전 그대로다.


박고은 기자 rhdms11@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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