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당국은 학생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질의서에 대해 무려 31장에 달하는 답변서를 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가 요구한 77억에 관련한 이종훈 총장의 입장도 없고, 대학운영위 건설에 대해서도 ‘원만하게 해결하자’는 말뿐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는 협상이 아니라 우리의 힘을 보여줄 때입니다.”

14개의 의자에 14명의 사람들이 들어 앉는다.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을 비롯한 14명의 중앙운영위원들은 숙연한 자세로 의자에 앉는다.

8백여명의 학생들 앞에서 가위와 바리깡을 머리에 들이대고 서투른 솜씨로 서로의 머리털을 아낌없이 잘라낸다. 무스로 바짝 세운 머리카락이, 곱게 길러 염색까지 한 머리카락이 살짝 묶어 작은 머리핀으로 장식한 머리카락이 한 가닥 한 가닥씩 발밑으로 낙하한다. 머리카락이 흩어짐과 동시에 이를 지켜보는 학생들의 눈초리도 각기 머리카락을 향해 흩어지고 만다. 그럼에도 자르는 사람도 잘리는 사람도 움직임이 없다.

이제 머리카락을 내버린 사람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 마이크를 잡는다.

“김희수 재단이 들어오고 지난 12년 동안 중앙대는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습니다. 더 이상 사랑하는 학교를 이대로 보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학교를 아름답게 하겠다는 결의로 살아가겠습니다.”

마지막 한 마디는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잇기가 어려워 입속의 침을 몇 번이고 꿀떡거리며 겨우 이어간다.

그리고 학생들은 본관으로 향했고 중운위들은 총장과의 면담을 끝내고 다시금 본관 1층을 점거하고 들어앉은 학생들 앞에 선다.

“여러분을 보니 내가 가슴이 아파요. 학우들이 수업거부 안하고 제대로 수업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총장님과 만났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정말 이래야 하나 묻고 싶습니다. 정말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잠시후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사장실 집기를 들어냅시다.”

그날 그들은 밤을 새워 문짝하나 제대로 남지 않은 이사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다음날 아침, 본관 앞에는 밤을 지새 그들이 만든 듯한 노오란 민들레꽃이 그려진 대형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이제, 우리만이 희망이다.”
노오란 민들레꽃잎은 쌀쌀맞은 바람에도 흩날리지 않고, 회색빛 구름에도 주눅들지 않고 그저 그자리에,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한 채 그렇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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