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시인의 등장에 큰 박수를 보낸다

열입골 돌을 맞이한 의혈창작문학상의 시 부
문에는 총 32명 학생의 243편이 투고되었다. 이
수명 시인이 건네준 6명의 예심 통과작에 드러
난 장단점을 논해본다.
 

「침잠의 공식」외 6편을 투고한 권혁민(조선
대)은 시어를 다루는 솜씨가 능숙하다. 시란 결
국 언어의 연금술로 승부가 좌우되는데, 그런
점에서 혁민 학생은 시인이 될 자질이 있다. 그
런데 시가 짧건 길건 간에 불필요한 낱말이나
구절이 꽤 된다. 기교의 시보다는 정신의 시가
오래 남는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사과 하나」외 8편을 투고한 김미주(인제
대)는 이야기 만들기의 능력이 탁월하다. 작품
마다 서사적 얼개가 확실하기 때문에 읽는 재
미가 있다. 하지만 역으로, 시적 형상화가 약하
다. 시란 아무래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
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압축하여 상징화하는
장르가 아닌가.
 

「꽃」외 7편을 투고한 박채림(서울예대)은
엉뚱한 상상력과 발랄한 표현기법이 강점이다.
하지만 주제의식이 약하기에 읽고 나서 다소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발랄함’을 지켜나가되
‘진중함’도 살펴봤으면 한다.
 

「봄은 얌체같이 온다」외 6편을 투고한 홍경
오(원광대)는 시어의 경제적인 운용에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주제의 깊이와 서술의 힘이 충
분히 느껴지므로 여기에 묘사의 핍진성을 보강
하면 좋은 시인이 될 것이다.
 

「소화되지 않은 만찬」외 8편을 투고한 공현
진(중앙대 국문과)과「서표」외 6편을 투고한
이계섭(대전대) 두 학생 중 누굴 당선자로 하
느냐를 두고 이틀을 고민했다. 공현진은 시적
대상을 파고드는 집중력이 뛰어나다. 언어의
조율 기능도 무척 높다. 하지만 시들이 전반적
으로 설익어 당선작으로 미는 것을 망설이게
했다. 게다가 본교 출신인 것도 감점 요인이었
다. 한편 이계섭의「서표」는 시를 끌고 가는 노
련한 솜씨가 기성시인의 수작을 방불케 했다.
상상력은 풍부했고 표현은 날렵했다. 그런데
큰 약점은 여타 작품 중 어떤 것들이 이 작품
에 영 못 미친다는 것이었다. 흉내의 흔적도 여
기저기 묻어 있고 약간의 장난기도 느껴졌다.
그래서 시상 전개가 무르익지는 못했으나 설익
음이란 신선함의 다른 뜻이기에 공현진의「소
리의 층계」와「빛의 걸음걸이」2편을 당선작으
로 밀기로 했다. 전자는 아버지와 피아노를 연
결시킨 은유 기법이 꽤나 진지했고, 후자는 길
바닥에 쓰러진 노인에 대한 묘사가 아주 침착
하게, 집중력을 갖고 전개되었다. 예비시인의
등장에 큰 박수를 보낸다.

이승하·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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