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말 유대 민족의 국가 건설 운동인 시오니즘. 1948년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국가를 건립한다. 그로부터 4번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중동전쟁)과 크고 작은 분쟁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 하기위한 갖가지 신화와 이데올로기를 생산한다. 이번 학술부에서는 이스라엘 건국 역사와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시온주의자들의 메커니즘에 대하여 다뤄본다.                                                 편집자

 

  시오니즘은 고대 유대인들의 고국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할 것을 목표로 하는 민족주의 운동이다. 약 2천년 동안 하나의 국가를 성립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 흡수되거나 그들만의 사회를 꾸려가며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타민족의 핍박이 심해지자 하나의 국가를 세울 필요성을 느꼈다. 그 땅은 그들에게 역사적 정당성을 준다고 믿는 지금의 이스라엘 땅이었다.

  시온주의 운동의 활발한 전개는 19세기 유럽 자본주의의 위기와도 관련된다. 유대인들은 프랑스와 영국 같은 서유럽 선진국에서 경제적, 정치적 생활에는 많이 동화됐지만 그들에 대한 차별은 어느 곳에서나 존재했다. 유명한 고전 사회학자 짐멜은 ‘상징적 상호작용론’으로 새로운 사회학 방법론을 개척했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교수직에 오르지 못한 일례에서 보여지듯,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구별은 오래 전부터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그에 관련한 위기와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한 분노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는데 유대인은 지속적인 인종 차별 공격의 표적이 됐다. 시온주의자인 블라디미르 야보틴스키는 ‘유대인이 다수가 되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야 말로… 시오니즘의 근본 목표’라고 말했다.


갈등의 시작, 끊이지 않는 분쟁

  1897년 시오니스트 회의를 처음 주최한 테오도어 헤르츨은 그의 저작 『유대인 국가』에서 시온주의적 견해를 구체화 했다. 그는 ‘시온주의 운동의 주요 목표는 거대 열강들의 승인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그 당시는 제국주의 열강들이 아프리카나 아시아 중동의 광대한 지역에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기에 점령을 통한 새로운 국가 수립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시오니스트 대회에서 운동의 첫 번째 목표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모국을 창설’하는 것이라고 결정했다.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무장관 벨포어의 ‘유대 민족국가 건설 지지’선언은 시온주의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시온주의자들에 대한 영국의 지지는 팔레스타인 식민화를 정당화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앞서 1916년에 팔레스타인 지역을 비롯한 아랍지역의 독립을 약속한 ‘맥마흔 선언’을 번복하며 더 유리한 이득을 재고 있었던 것이다. 식민지화 과정을 공식화 한 영국은 토지, 경제 등에서부터 체계적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잠식해간다. 영국 정책의 대부분은 시온주의자들에게 유리한 것이었다.
  토지를 매입하고 경제적 실권을 장악한 유대인의 억압에 대하여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1936년 대대적 봉기를 일으켰고, 1947년 팔레스타인 분할이 결정됐다. 유대인들은 다음해 바로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였지만 팔레스타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몇 번의 큰 전쟁과 무력충돌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식권력의 작동, 세 가지 신화

  시오니즘 지식권력은 자신 국가의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오늘날 팔레스타인 분쟁의 진실을 가리고 은폐한다. 노먼 핀겔 슈타인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이미지와 현실』에서 ‘시오니즘 지식 권력이 학술적 권위를 입혀 사람들을 얼마나 속이고 있나’를 밝혀내고 있다.

  지난 역사를 보면 정복자의 입장에서는 땅을 일구어 정착해 있지 않거나, 문명화를 이루지 못했다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땅에 대한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처녀지와 같은 땅’에 문명화를 일군다는 미명아래 정복을 미화 시킨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시오니즘 문헌도 이런 담론을 차용했다. 다비드 벤구리온의 『개인의 역사』에서 시오니스트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직전의 팔레스타인을 ‘무정부 상태…원시적이고 관리가 소홀한곳’으로 묘사한다. 조안 피터스의 『태고적부터』에서는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이 나라를 재건한 것을 ‘사망의 부흥’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시오니즘 주의자들은 되풀이하여 이스라엘 땅의 역사적 명분을 내건다. 이스라엘 점유는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한 권리이며 불가피한 요구가 된다는 것이다. 책의 저자인 노먼 핀겔 슈타인은 이러한 태도에 반박한다. ‘이데올로기적 낭만적 주장이다. 유대민족은 고향 없이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선조들의 고향에 자기들만의 국가를 재건하는 것만이 박해를 종식시킨다는 생각이다.’  

  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해 갈 때, 물리력을 사용하여 폭력적으로 잠식했다는 것에 그들도 대부분 동의한다. 이데올로기적 시오니즘의 선구자인 블라디미르 야보틴스키는 ‘팔레스타인에 통치와 방어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무력이 필수적이다’며 무력을 통해 강한 힘을 보여줘야 함을 주장했다. 시온주의자들의 테러는 합법적인 ‘투쟁의 수단’으로서 너그럽게 용인된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분쟁은 유대인이 이스라엘에 국가를 건설하려는 첫 움직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오늘날 시온주의자들은 특히 미국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정당화시키는 유대인 지식권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 하는 학자는 많지 않다. 그만큼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신화를 깨는 작업에서 그리고 오해를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오늘날 두 국가의 분쟁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 : 『인티파다』, 『잔인한 이스라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이미지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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