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신자유주의 물결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IMF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흐름들, 철저히 반민중적이며 반노동자적인 이들의 논리를 현시기 대두되고 있는 쟁점들을 통해 분석해 본다. <편집자주>

지난 2월 24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는 노사정위원회 탈퇴가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민주노총은 ‘정리해고 위주의 일방적인 구조조정과 노조의 파업, 공권력 투입, 분신으로 이어진 지난달 조폐공사 사태가 현재의 노사관계의 전형’이라고 규탄하며, ‘구조조정에 의한 정리해고 중단,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안정, 올 임금 7.7% 인상 등 임금 및 단체 협약 체결, 2백만 실업자를 위한 사회 안전망 구축’등을 요구했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입장에 대해 정부와 자본측은 여전히 경제위기 이데올로기와 국난극복 논리로 대국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탈퇴는 한국 노동시장에 대한 외국언론 및 투자가의 부정적 시각을 증폭시켜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치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적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낡은 논리를 되풀이하며, 노동자들의 총력투쟁에 ‘총력’대응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대중 정권은 경제위기와 IMF체제라는 조건속에서 국내외 독점자본의 대리인으로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총체적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조정은 경제와 정치를 넘어서 전사회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특히 노동시장 유연화와 노동계급의 탈정치화라는 노동정책을 통해 효과적인 노동력관리와 통제에 집중하고 있다.

즉, 과잉경쟁, 과잉축적의 위기에 직면한 국내외 자본은 효과적인 노동력 관리를 통해 이윤창출의 새로운 길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고, 이러한 노동정책에 있어 전투적·계급적 노동조합운동의 경향은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은 외자유치와 외국자본투자에 있어 노동조합 운동의 흐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통해 발견된다.

이미 노사정 ‘합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87년 이후 성장해온 노동자 민중에 대한 정권 측의 조직적·전략적 대응이 존재했다. 노태우 정권 시기에는 90~91년의 한 자리수 임금 정책과 92년의 총액임금제의 조절, 94년 노총·경총 임금 합의 등의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것들은 임금통제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96년 들어 더욱 명확해진 형태의 신노사관계 구상이 등장한다. 기본적으로 집단적 노사관계법의 문제 조항들을 노동측의 구미에 맞게 개정하지만, 개별적 노사관계법인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시간제, 근로자파견법 개정을 통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노동정책이 노동시장 유연화와 동전의 양면에 있으며, 노동통제·관리 전략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96년 12월 국회 날치기 통과에 맞선 97년 1월의 총파업을 통해 노동자 계급의 힘이 확인되었고, 정리해고 반대라는 기치로 노동자 민중의 전계급적 총자본전선이 구축되게 되었다. 그러나 노사정 합의는 다시 복원되었다. 경제위기와 IMF를 빌미로 화려하게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이고, 이제는 화합을 통한 국난극복을 주된 화두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속에서도 98년 2월 9일 지도부의 합의안을 당당히 부결시키고 총파업을 결의했던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투쟁의 힘과 다시 충돌했으며, 이제 다시 만장일치로 노사정위원회 탈퇴를 결의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자간 합의라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합의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고통분담은 철저히 계급관계의 힘을 반영한 산물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적 힘에 의해 좌우되는 ‘합의’라는 특수한 상황을 설정한다 할지라도, 이에 대처하는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단결과 능력 여하에 따라 특수한 상황의 ‘합의’ 역시 반민중적, 반노동자적 결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98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사정위원회가 얼마나 헌신짝처럼 버림받아 왔는가는 다시 상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현재의 노사정위원회는 전세계적 자본의 재편양상과 맞물린, 철저히 친자본적인 구조조정 정책의 힘과 속도에 발맞춘만큼 노동자 민중진영에게 그 어떠한 양보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현재의 노사정위원회의 계급적 성격과 김대중 정권의 노동정책의 방향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김대중 정권은 ‘위로부터의 부분적 개혁’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밑으로부터의 투쟁을 탈계급화·탈정치화시켜내고, 제도화시켜내려는 의도인 것이다.

즉, 노동조합 상층부에 대한 분할 포섭 정책과 동시에 노동자계급을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로, 고용노동자와 실업노동자로 분리시켜내고자 하는 것이다.

즉 노동조합의 상층지도부 일부를 포섭하여, 이를 통해 광범위한 하부대중과 미조직, 실업노동자들의 저항을 통제해 나가기 위한 것이다. 총자본진영은 이러한 공세를 통해 정책 참여를 통한 실리의 획득이라는 유혹과 하부대중의 대중적인 저항과 밑으로부터의 압력사이에서 동요하는 노동자계급의 상층 일부를 포섭해내고, 민주노조운동을 협소한 조합주의적 이해속에 동적인 노동통제의 수단으로 노사정위원회가 복원유지되어야 한다는 방향 설정하에 전교조 합법화, 실업자 초기업단위노조 가입 허용검토, 노사정위 특별법을 통해 구조조정 관련 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한국노총의 요구안 협의 등으로 노동계의 노사정위 복귀를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전교조의 민주노총 참관을 전제로 한 민주노총의 합법화라는 미끼를 던지고 있으며 제2건국운동과 실업대책국민운동 등을 통해 민주노총을 포위 고립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김대중 정권의 대노동정책은 단기적으로는 99년 상반기에 구조조정 반대투쟁과 임단투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전국적 투쟁전선으로 집중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고 중장기적으로는 노자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신노사문화라는 방향에서 민주노조 운동의 전투성과 계급성을 거세하여 제도화하려는 것이다. 또한 투쟁의 집중을 막기 위해 김대중 정권은 구조조정의 시기 분산, 고용안정지원센터 등 실업대책 보완, 주요 전략사업장 무력화 등의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한편 99년 상반기 노동자 투쟁을 교란시키고 노자관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려는 방향에서 ‘우리사주법’ 개정을 통한 경영참가와 업종별 노사협의회를 수용하여 국면전환을 시도할 가능성도 높다. 이미 재경원에서는 우리사주 개선안을 제출하고 있고 경총에서는 업종별 협의회 구성을 검토 중이다. 만약 경영참가 카드가 노사정위의 산별협의체계 전환과 맞물려 업종 지역별 노사정 합의등을 전제한 구도가 현실화된다면 사실상 제3노사정위원회가 출범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정권측에서 본다면 노사정위 존립 해체 논란은 일거에 해결되는 것이다. 김대중정권의 이러한 대노동정책은 민주노조 운동 진영 내부의 특정한 입장과 맞물리면서 관철될 가능성이 있다. 경영참가 정책참가론 노사정위원회 활용론, 그리고 조직형식 전환을 통한 산별노조 건설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통합론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입장들은 현시기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 투쟁이 갖는 전투성과 계급성을 탈각시키고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노동자의 계급적 정치적 대응을 희석화시켜낼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의 탈퇴와 더불어 이제 4~5월 민주노총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투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현재의 투쟁은 과거의 임단투 중심의 투쟁과는 명확히 다른 구조조정 저지와 신자유주의 저지의 기치를 내건 정치적 투쟁의 성격이 강하다. 이제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자본의 허구적 구도가 아닌 노동자 민중의 구도에서 새로운 재편을 강제하기 위해서는 선언적 의미를 넘어선 투쟁의 힘을 보여주어야만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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