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편제’나 ‘아름다운 시절’은 가장 한국적인 산과 들판, 우리 고유의 정서와 이야기를 그려낸 정말로 아름다운 영화였다. 이 후 우리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는 우리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근대화와 전쟁의 격동기를 살았던 작가다. 열다섯에 제1차 세계대전을 들었고 경제적 공황이후 마흔 넷에 태평양 전쟁을 겪었다. 그런 가와바타의 작품이 바로 가장 일본적인 것이며 동시에 세계적인 것이었다.

일본에게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이 바로 그렇다.

일본근대 서정소설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설국’은 여주인공 고마코의 순순한 생명감만에 의존하여 고독한 여심의 애처로움과 쓸쓸함을 하얀 눈의 나라 설국을 무대로 풀어내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대부분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을 회구하고 있는데, 그런 작품의 분위기는 오히려 차고 싸늘함으로 채워져있다. 아마도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윈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열여섯살 이전에 가까운 혈육을 모두 잃게된 그의 성장배경의 낳은 결과일 것이다.

신감각파인 가와바타의 글쓰기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본의 산하를 서정적인 눈으로 읽어내고, 붓가는대로 내맡긴듯 자연스럽고 투명한 문체에 의해 순간적으로 파악되는 삶의 진솔함을 그린다. 뿐만아니라 그 안에는 여름날 밤하늘에 새로 태어난 별빛처럼 작지만 영롱한 생명이 반짝인다. 서구의 문예사조와 일본 고전에 대한 깊은 인식이 있었지만 그의 글이 한문투의 어색함을 보이지 않는 것은, 그것이 가장 일본적임과 동시에 논리와 사고보다는 감각과 인상에 의해 태어난 한줄기의 진실이기 때문이다.노벨문학상을 낳은 ‘설국’은 하얗고 깨끗한 눈의 고장, 즉 현실 너머 세계의 눈보다 더 고운 여인들의 심리와 진실한 삶을 통해 독자에게 맑고 순결함을 회구하게 하며, 기차안의 여인과 차창에 비친 해지는 시골 마을의 소박한 불빛 묘사등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맛보게 한다.

또 중편 ‘학무늬’는 천마리의 학이 그려진 보자기의 문양을 뜻하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인을 사랑하고 어머니와 딸이 한 남자와 살을 섞는 일종의 패륜적 구조를 취하지만, 추악한 죄의식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뛰어넘은 미적 감수성이 아름답게 흐른다. 제목 ‘학무늬’는 결국 학무늬 보자기를 들고 대회에 참석했던 순결하고 아름다운 처녀의 상징으로,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우리 눈의 독소를 씻어주는 존재다.

전쟁이 끝나고 발표된 ‘산의 소리’는 예순이 넘은 노인의 일상과 그 괴로움을 그린 가정소설이다. 아들 부부의 불화와 늙어가면서 느끼는 육체적 쇠퇴와 서서히 아주 조용하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전쟁의 상처와 함께 어둡고 쓸쓸하게 그린다. ‘산의 소리’는 그 움직임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커다란 무게로 다가오는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소설은 예순의 시아버지와 이십대 며느리사이에 싹트는 남녀간의 진정한 애정과 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큰 사건이나 위기는 필요치 않다. 가정의 평범한 일상에 한망울씩 고이는 맑은 두사람의 사랑 역시 부도덕의 느낌은 전혀 던지지 않고 애절하고 안타까운 여운으로 막을 내린다.

한때 일본 펜클럽회장으로 활발한 정치적 활동도 마다하지 않던 가와바타는 일본에 국제펜클럽대회를 개최하여 일문학의 가능성과 고유성을 세계시장에 알렸다. 덕분에 그의 작품을 비롯한 일문학이 영어·불어·독어·스페인어 등 여러 나라에 번역 출간되고 세계는 신비함마저 주는 일본문학에 주목하게 된다.

각종 문학상과 국내외의 인정을 받은 가와마타는 ‘이즈의 무희’를 비롯하여 ‘수정환상’, ‘설국’, ‘잠자는 미녀’, ‘명인’ ‘학무늬’, ‘산의 소리’ 등 대부분의 작품을 통해 순결한 처녀와 순수한 소녀를 제시하는데, 이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죄를 안고 사는 우리를 순화시키는 가와바타의 카드였다. 가장 평범한 일본의 서정적 아름다움을 감각적이고 섬세한 감성으로 마무리한 가와바타는, 그들 문학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세계시장에 당당히 서서 일문학의 차원을 한단계 높였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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