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회고록이 출간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이 일반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지금까지 “블랙박스”로 치부되어온 북한의 최고 권부 내에서 벌어지는 일뿐만 아니라 경제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김정일이 빨치산과 군부지도자들에 의해 후계자로 옹립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마키아벨리적인 정치감각을 구사하여 후계자로 부상했다든가, 1985년경부터는 김일성을 대신하여 최고통치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든가, 고위엘리트들로 하여금 상호견제하여 충성경쟁을 부추기는 통치스타일을 구사한다든가 하는 사실들은 황비서가 아니면 확인해 주기 어려운 것들이다.

또한 그와 함께 망명한 김덕홍을 통해 입수한 당 조직부 통계에 근거하여 1995년에는 북한주민 50만 명이, 96년에는 1백만 명이 아사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증언들은 황비서라는 북한의 고위층 인사에 의해 확인되었음을 의미할 뿐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 책은 우리의 무지를 확인하는 데 그칠 뿐이다.

이 책의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황비서는 그 자신 모스크바 유학시절 이래 철학의 근본 문제를 찾아 고민하다가 마침내 “역사의 진리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가 이 진리에 접한 것은 1967년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문제에서 ‘수정주의적’ 견해를 밝힌 논문을 집필함으로써 대대적인 비판에 직면했을 때였다. 기존의 계급투쟁에 의거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으로는 계급이기주의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인본주의적인 새로운 철학체계를 세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체계를 바탕으로 마르크스주의가 갖는 객관적 법칙을 탈피하고 인간중심의 철학적 원리에 기초한 세계관과 사회역사관, 인생관 문제를 해명함으로써 주체철학을 체계화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 김정일의 이름으로 발표되었지만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나 인류의 생명은 무한할 뿐만 아니라 발전한다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도 그의 사상에 기초한 것이라고 증언한다.

그러나 황비서에 따르면 이러한 인본주의적 사상이 결국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권력을 포장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인간중심의 철학이 비인간적인 북한의 현실을 위장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체철학은 주체의 왕국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는 말인가? 사실 주체사상의 발전은 두 단계로 구분해서 봐야한다. 1955년 주체라는 용어가 등장할 당시 북한이 고민했던 문제는 소련과 동구에 몰아닥친 ‘수정주의적 경향’과 중·소 분쟁으로부터 독립된 정체를 유지하면서 경제를 급속하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응당 사회주의국가들의 경제지원이 필수적이지만, 그렇다고 국내정치에 변화를 초래할 ‘수정주의자’들과의 협력은 허용될 수 없었다. 따라서 북한은 주체를 내세우면서 중공업 중심의 강행적 산업화전략에 매진했던 것이다.

그 이래 주사는 북한의 현실을 지도하는 실천 전략으로서의 지침 구실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황비서가 1970년대 초에 체계화시켰다는, 그러나 김부자에 의해 왜곡·이용되었다는 주체철학은 인본주의적인 고매한 사상은 담았을지 모르지만 현실과는 점차 유리된 사상으로 변질되었다.

물론 사상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거나 황비서의 의도를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렇지만 이론은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검증되고 발전되어야 하는 것이다. 현실과 유리된 이상적인 사상이 현실을 치유하지는 못한다. 만일 김부자에 의해 왜곡·이용되었다면 적어도 그 빌미를 제공한 책임의 일단은 황비서와 같은 북한의 지식인들에게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사소하지만 북한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증언들이 무수히 많이 나타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이 북한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고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한 사회에 대한 평가는 아무리 고위층 인사라고 하더라도 그 사회의 전체적인 흐름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내리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황비서의 책은 개인사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따라서 그가 오랫동안 지적 훈련을 쌓은 인사임에도 불구하고 이 증언이 전반적인 북한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가치는 분단사회를 살아온 한 지식인의 간고한 삶의 족적과 고민을 간취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분단이 남겨놓은 황폐한 토양을 비옥하게 하기 위해서 그 밑거름을 준비하려는 한 지식인의 몸부림을 읽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를 지닌다. 이를 보지 않고 황비서의 증언의 구절 하나 하나만을 침소봉대하는 것은 또 하나의 편향임에 틀림없다. 동시에 황비서의 증언이야말로 북한을 이해하는 가장 권위있는 근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편향임에 틀림없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