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2월 8일 남산의 영화감독협회 시사실에서 스크린 쿼터제 사수를 위해 농성중인 영화인들 앞으로 한 지지 성명서가 날아 들었다. 연일 성명서가 접수되는 터라 평범한 지지 성명서엔 영화인들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두 사건을 통해 본 인식차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프로듀서 연합회 명의의 지지 성명서라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제
목도 다른 어떤 단체보다 선명해보였다. ‘DJ정부는 스크린 쿼터제 선거공약을 이행하라’
는 제목하에 방송인들은 농성 영화인들에 적극 지지를 보내며 성명서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탰다.

“…작금 통합방송법의 제정이 연기되고 방송개혁위원회의 구성이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이 국면에서 시민, 언론 단체간 연대활동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는 우리 방송
PD들은 아파체타의 돌무덤에 작지만 단단한 돌 하나를 얹는 심정으로 스크린 쿼터제 사수
운동에 연대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후의 협상과정을 주시할 것이며 적극적인 대응으로 우리
영화를 지켜낼 것이다…”

프로듀서 연합회는 방송과 영화의 연관성 때문이 아니라 단체간 협조의 필요성에 입각해 성
명서를 내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방송과 영화제작에 끼어드는 모든 권력에 대해 연대하
고 운동할 것을 제안하는 것처럼 들린다. 미리 답을 말하자면 ‘이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방송과 관련된 모든 정책, 비젼 등에 항상 날카로운 비판의 조언을 던지는 프로듀
서 연합회가 이 정도의 성명서만을 낸다면 그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 왜 그런 낙담을
하는지는 조금 후로 미뤄두자.

성명서들이 접수될 즈음 태평양 건너 저편에서는 전혀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부
분은 프로듀서 연합회에서 눈여겨 보아둘 부분이다. 98년 12월 12일자 한 일간 신문 기사를
인용해보자.

“11일 한국무역협회 워싱턴 지부에 따르면 미 무역대표부(USTR)가 내년 3월말 발표할 99
년도 ‘국별 무역장벽보고서’ 작성을 위해 미 업계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 총 42건의 의견
서 중 17건(40.5%)이 한국과 연관된 의견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는 지난해 통 46건 중 18
건(39.1%)이 한국과 관련된 것과 유사한 수준이다. …미 영화수출협회(MPEA)는 스크린 쿼
터제(한국영화의무상영일제), TV 및 케이블 방송의 수입프로그램 방영 상한제, 케이블 TV
외국인 소유지분 한도제 등을 무역장벽으로 지적하고 외국인 소유한도 철폐와 수입 방송프
로그램 한도 확대를 촉구했다…”

무서운 사람들이다. 어느 것 하나도 돈 벌이들이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면 공론화시키
고 힘을 무기로 그 장벽들을 치워버리는 그야말로 용의주도한 프로 장사치들이다. 우리 프
로듀서 연합회는 성명서에 무서운 용어들을 담기는 했지만 치밀하지는 못했다. 미국의 영상
사업자들에 비하면 말이다. 미국 영화협회는 공세적으로 한국의 방송과 영화를 한데 묶어
규제를 풀 것을 요구하고 있다. 프로듀서 연합회 뿐만이 아니다. 불행히도 영상관련 정책 담
당자들도 여전히 방송, 영화 식으로 분리해 인식하고 있다.

영상 매체에 대한 통합적 인식필요

시청각 매체라는 범주안에 방송과 영화를 한데 묶는 미국 사업자들의 통합적 인식과 매체별
독자성을 인정하되 연대의 가능성을 점치는 한국의 프로듀서들간 인식의 차이는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예를 들어 보자. 현재 우리의 방송계는 구조조정을 심도있게 논의하고 있지만 그 구조조정
이 우리의 생활세계 전반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영상
매체에서의 변화가 생활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검토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외부 환경변화에
대한 수세적 구조조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신문이나 소설 등의 인쇄매체를 통해 국민이라
는 정체성을 갖던 시절에서 영상매체를 통해 정체성을 습득하고 가꾸어가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그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방송영상은 단순히 방송사에 의해 독점되어서는 안되고 방
송사 바깥의 다양한 원천으로부터 도입되어야 한다. 그 중 중요한 제도가 바로 영화제도다.

그렇다면 국민 정체성, 영상매체, 방송, 영화 등은 한데 가야 하는 사안이지 결코 어느 하나
가 다른 것에 종속되거나 부차적인 존재로 정리되어서는 안된다. 영상산업에 대한 통합적
인식은 독점의 방지, 각 매체들의 균등한 발전, 문화적 다원성 등을 한번에 낚아낼 수 있는
영상정책의 기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방송, 영화, 애니메이션 등등은 독립된 정책대상으로 설정되고 있다. 이들을

육성하기 위한 방안들이 매번 쏟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각 대상들을 한정하고 있을 뿐 그들
을 한데 통합해 사고한 정책들이 많지 않다. 방송과 관련해서는 방송법제에 관심을 둘 뿐,
그것이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발전에 기여할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방송사의
외주 프로그램 편성비를 낮추어 독립 프러덕션을 육성한다고 발표하지만 그것이 영화제작의
활성화와는 어떤 연관을 맺을 지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이미 방송, 영화, 애니메이션 등은
독립된 장르 혹은 매체가 아니라 한 몸의 서로 다른 면일 뿐이다.

앞서 예로 든 스크린쿼타 문제는 그런 점에서 단순히 영화적 사건으로만 인식될 수는 없다.

미국 영화수출협회가 적실히 지적했듯이 방송도 스크린 쿼터와 비슷한 방식으로 외국 작품
방영에 제한을 두고 있다 (방송사 전체 편성의 20% 한도 내에서 외국 제작물을 편성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다). 만약 스크린쿼터 제도에 변화가 생긴다면 방송에 남아있는 편성제한도
영향을 받게 된다. 무역협정에서 시청각 부문에 대한 일괄타결이라는 제안이 대두되지 말하
는 보장도 없다. 물론 오랫동안 있어왔던 방송 시청자 운동 등의 동의를 얻어내는 일이 쉽
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정책변화는 선례로 남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방송에서의 외국 프로그램 편성정책의 변화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처럼 한 몸의 매체를
따로 쪼개어 정책대상으로 삼고 있는 우리 영상정책이 올바른 방향을 잡아나가기는 힘들 것
이다.

외국의 영화-방송간 유기적 관계는 우리 영상정책으로서는 모범으로 삼아야 할 미덕이다.
이제 방송이 직접 나서서 영화에 개입하는 방식은 세계적인 추세처럼 보인다. 유럽 공동체
의 ‘국경없는 텔리비젼’ 협약에 이은 Media Programme I, II,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의 영화지원 방송정책 등은 영화와 방송이 서로 다른 매체가 아니라 같은 매체의 다른 채
널일 뿐이라는 인식에 입각한 것이다.

방송의 영화지원은 영화 투자가들의 시장실패 부담율을 분산시켜줌으로써 적극적으로 투자
하고자 하는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다. 방송의 영화지원이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호혜
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선제작으로 인해 방송은 방송시간확보라는 잇점을 얻을 수 있기 때
문이다.

예를 들어 주말 드라마 두편 정도에 해당하는 비용을 선투자함으로써 그에 해당하는 편성시
간을 확보할 수 있음은 방송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경비절감과 ‘구조조정’을 훨씬 명확하
게 해줄 수 있다.

통합적 영상정책 시급

시청각 매체에 대한 통합정책을 사고할 것을 제안하고 요청하는 것은 단순히 산업적 편의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세계화의 파고를 타고 들어오는 초국적자본의 대중문화물들은 우리의 문화지형을 변화시키
고 있다. 창의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우리의 문화물들마저도 외부 것들이 모사품이거나 인용
품인 경우가 잦다. 이제 어느 것이 우리 것인지 남의 것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의 혼돈에 우
리는 시달리고 있다.

영화 따로 방송 따로 이루어지는 극복노력은 효율성이 없을 뿐 아니라 긍정적인 결과를 낳
을 수도 없을 전망이다. ‘따로 똑 같이’ 가는 전략 수립을 위한 노력은 한시 바삐 이루어
져야 하며 그에 대한 정책담당자, 영상산업, 학계, 종사자들의 인식전환은 더 늦추어져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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