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인간 문명이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과 희생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여성에 대한 이와 같은 억압은 남성 우월적인 지배의 정당성을 가능하게 한 가부장제도(Patriarchy)의 이념에 기인한다. 가부장제는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행해지고 있는 남성에 의한 성 지배의 이념이다. 이는 아버지의 권위와 힘에 의한 지배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측면에 걸친 남성의 힘의 행사를 정당화시키는 이념체계이다.
  이러한 가부장제의 이념은 남근로고스 중심주의(Phallogocentrism)라는 용어로 다시 쓸 수 있다. 남근로고스 중심주의라는 용어는 데리다(Jacques Derrida)가 남근중심주의(Phallocentrism)와 로고스중심주의(Logocentrism)라는 두 가지를 합쳐 만든 용어이다. 여기서 남근(Phallus)이라는 용어는 남성 성기(Penis)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남근은 좀 더 상징적이고 문화적인 용어이다. 남성 성기가 생물학적이라면 남근은 이에 상징적인 힘(권력)을 부여하는 이념체계를 가능하게 한다. 남성 성기는 여성 성기와 대칭을 이루는 출산에 필요한 성기관이다. 그러나 남근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를 정당화시키며, 또한 생물학적인 출산의 중요한 근원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데리다는 남근을 초월적 지표의 한 예로 보고 있다.
  미국의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을 다룬 희곡,『Death of a Salesman』은『세일즈맨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친숙한 극으로서 현대 산업사회에서 든든한 배경도 탁월한 능력도 성실함도 갖추지 못한 한 가장의 종말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작가 아서 밀러(Arther Miller)는 중하류 계층의 낯익은 문제들을 즐겨 다룬다. 그의 극의 주제는 대개 사회와 개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문제이다. 힘없는 개인과 거대한 조직체인 사회와의 대결의 결과, 패배는 개인의 몫이고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개인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마저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 밀러가 이 극을 통해서 의도한 것은 극의 주인공인 윌리 로먼(Willy Loman)을 철저히 파멸로 몰아붙인 억압요소에 대한 고발이다.
  이 극에서의 비극의 주체는 주인공 윌리에게 국한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권력과 부(富)로부터 소외되는 비극적 인물 역시 남성으로 국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외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남성이므로 여성은 더 이상 소외될 것도 박탈당할 것도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남성이 권력과 부를 소유했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남성이 사회적으로 유능하거나 무능하거나 간에, 여성이 하는 일은 가사일(물론 육체적 피로도의 문제는 있겠지만)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괄목할 만한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극에서도 역시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여성, 린다(Linda)라는 인물에 대한 해설은 남성에 종속되어 있는 여성의 형편을 짐작하게 할뿐만 아니라 극에서조차도 아내이자 어머니 역할은 그저 당연한 부분으로 소개되고 있다. 변덕스럽고, 허영덩이인 남편을 사랑하다 못해 존경하면서 남편에게 충고의 말도 하지 못하는 여성이 바로 린다인 것이다.
  사회적인 성(gender)에 있어서 남근이 생물학적인 남자 성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듯이 여성의 사회적인 성(gender) 역시 가부장적인 문명의 편견에 의해 생성되는 문화적인 산물이다. 이 같은 사실은 보부아르의 다음과 같은 지적에서 잘 드러난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길들여지는 것이다. 여성을 만드는 것은 총체적인 문명이다. 문명은 여성성을 결정한다.”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남성은 능동적이고 지배적이고 모험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으로 길들여지는 반면, 여성은 이러한 남성적 특징의 부정적인 면과 동일시된다. 그러므로 여성은 수동적이며 종속적이고 겁이 많을 뿐만 아니라 정서적이며 보수적인 인간으로 길들여진다. 문학에 나오는 오이디푸스, 율리시스, 햄릿, 톰 존스, 에이허브 선장, 헉핀 등이 이러한 남성상이다. 이에 비해 여성은 주변적이고 종속적인 인물로 그려져 왔다. 이러한 여성상은 남성 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가부장제의 이념에서는 여성 자신이 이러한 여성상을 자신의 것으로 하여 이런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에 대해 주디스 패털리라는 여성은 이러한 가치관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저항하는 독자가 되어 수정주의적 읽기를 할 것을 그녀의 『저항하는 독자』라는 책에서 주장한다.
  본 논문에서는 세일즈맨의 가정이 비극으로 귀결된 이유를 일차적으로 가부장적인 요소에 따른 대화의 단절과 소외에서 찾고 더불어 그 가치관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여주인공 린다에 대해서도 페미니즘적인 측면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Ⅱ. 비극적 동인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힘: 가부장제(Patriarchy)

 1. 젠더 수행성에 입각한 가부장제(Patriarchy)의 의미

  그리스 시대부터 여성은 이성보다 감성이 발달한 의타적인 존재로 인식되었으며, 이러한 견해가 일반적으로 수용되어 왔다. 서구 문화의 근간이 되는 기독교나 뉴잉글랜드(New England)의 청교도 정신 역시 여성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빅토리아조 이후 일반적인 여성관은 여성에게 마땅히 유순하고 온유한 성품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남편은 가족 부양에 주된 관심이 있었고, 여성은 자신의 의식이나 삶이 억압당하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에 따르는 불만이나 분노를 오히려 자신들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었다.(Elaine, 7) 즉 여성은 남성의 보호를 받고, 그들의 태도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좌우되는 연약한 의존자로 남아야 하는 것이다. 사회는 여성적 기질을 수동적, 비지성적, 유약성 등으로 규정 지웠다. 따라서 여성이 남성들에게 순종하고, 자신의 운명을 의탁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특징 지워진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자기 자신을 통해 그들의 존재를 찾기보다는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안위를 추구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처럼 남성 중심 가치관에 의해 왜곡된 이미지는 시대, 공간을 막론하고 역할에 따른 젠더 수행성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제인 플랙스(Jane Flax)는 『페미니즘/포스트모더니즘』에서 젠더 관계(gender relation)는 복잡한 일련의 사회적 작용으로서, 상호 관련이 있는 부분에 의해 형성되는 복잡하고 불안정한 작용으로, 이를 통해 두 가지 유형의 인간이 만들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남성과 여성이라고 말한다. 남성과 여성은 배타적인 범주로서 가정된다.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범주의 엄정함은 문화와 시대에 따라 매우 다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더 관계는 역사적으로 지배관계였다. 다시 말해서 젠더 관계는 상호 관련이 있는 부분 중의 하나인 남성에 의해 정의되고 통제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사회 문화적으로 창출하고 유지시키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가부장제(Patriarchy)이다. 가부장 제도의 핵심은 또한 여성의 성에 대한 금기와 통제를 갖는데서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여성의 성이 통제되지 않으면 그 존속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에서는 여성의 미덕을 정숙함(정절)에 두고, 이 미덕을 중시하는 여성 집단과 이에 상반되는 곧, 결격 사유를 갖는 여성을 또 하나의 집단으로 이분화 시킨다. 여성의 일차적 존재 의미를 남편의 정당한 상속인 및 가문의 계승자를 낳아서 가부장제를 유지·존속시키는 역할에서 찾는 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매우 합목적적이다. 여성의 정절은 이렇게 여성 존재 의미의 핵심이 되기 때문에 여성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서 그 여자의 능력이나, 인격, 품위 등에 우선한다.
  그러므로 가부장제 하에서는, 살아있는 여성의 몸은 남성에 의해 성적인 존재로 대상화되어 여성의 성적 표현이나 행동은 금기시될 수밖에 없다. 즉, 욕망과 성적 본능에서도 남성과 여성은 엄격한 이중 기준이 적용되어 성적 욕구나 충동이 있는 여자는 타락한 여자로 간주되는 것이다. 몸은 본래적으로 생물학적 욕망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여성, 이성/정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 묶여 몸 자체의 욕망은 억제되고, 특히 여성의 욕망은 악의 근원으로까지 인식되기에 이른 것이다.
  남성 중심의 문화에서 남성은 성을 능동적으로 표현하고 실행할수록 바람직하고 남성다운 것으로 인정받는 반면, 여성의 경우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경우 ‘타락한 성’으로 간주되어 범죄시 되었으며 본질적인 욕구를 억압하고 왜곡시킬수록 ‘정숙한 성’으로 판단되어 왔다. 이러한 뒤틀린 성문화는 남녀 신체가 갖는 생물학적 차이만을 고려하여 성을 규정한 결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여성의 신체는 생물학적 기능상의 특징들-생리, 임신, 출산, 폐경 등-로 인하여 유용성과 경제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의 동력원에서 오랫동안 제외되어 왔으므로 남서의 신체보다 훨씬 불리하고 부정적인 측면에서 이해되어 왔다. 여성의 성이 갖고 있는 재생산적 기능이 실제적으로 인류 역사의 형성에 주된 역할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바로 그 신체적인 기능의 ‘차이’로 인하여 문화적 ‘차별’의 이데올로기 속에 고정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사회의 중대한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 오랫동안 배제되어 왔다.
  가부장제 사회의 중심인 아버지는 단지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권력과 언어의 지배자요, 이성의 주체로 존재해왔다. 또한 아버지라는 존재는 남성의 고유 영역이라는 점에서 가장에게 막강 권한이 부여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고 가족 구성원들은 아버지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로서의 역할 행동은 자연적 또는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 이데올로기에 의해 강요된 타의적인 것으로서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 제도인 가족을 구성해내는 것에 있어 ‘아버지의 이름’이 가진 의미와 남성성을 중시한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반복된 행위의 수행’에 의해 여자로 되어 나간다. 이런 반복적 행위는 사회적 관행에 의존하며 그 문화 속에서 어떤 것을 행하는 습관적인 방식에 달려있다. 결혼을 하여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는 행위가 규칙적으로 반복됨으로써 사회적으로 확립된 방식이 나온다. ‘나-여성’이라는 것은 젠더 관계, 그 자체의 토대로서 오로지 그 안에서 출현한다. 젠더의 수행성은 단일한 행위에 의해 성취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반복적이며 인용되는 실천이며 젠더화된 주체를 활성화하고 구속하면서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다. 즉 가부장제는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면서 원시 공산 사회 이후 사유재산과 계급의 발생으로 파생된 양성의 조화가 결여되어 있는 지배이데올로기로서 가족의 대표인 아버지가 가족 구성원에 대해 행사하는 일방적인 권위와 지배를 의미한다.

 2.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타난 가부장적인 요소

  밀러는 사실주의적 전통에서 출발하여, 개인과 사회와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사회 속의 개인의 입장과 개인에 대한 사회의 책임이라는 주제를 다룸으로써 사회 비판 의식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회극이 주류이고 그 밖의 연극은 우회로가 되며 개인 심리극은 더 이상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확고한 신념을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The social drama, as I see it, is the main stream and the antisocial drama a         bypass. I can no longer take with ultimate seriousness a drama of individual         psychology written for its own sake, however full it may be of insight and          precise observation. (The Theatre Essays of Arthur Miller, 57)   

   사회극은, 내가 보는 견지에서, 주류이고, 반사회적 극은 우회로일 뿐이다. 나는 더 이상     그 자체만을 위해 쓰여진 개인적 심리극을 다분히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것이     통찰과 정확한 관찰로 가득 차 있을 지도 모르긴 하지만 말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사회를 떠나 살아갈 수 없듯이 개인이 없는 사회 또한 존재할 수 없다. 개인은 사회와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며 사회와의 관계는 개인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개인에게 영향을 줌으로써 개인을 형성하고 변화시킨다는 것이 밀러의 지론이다. 나아가 밀러는 사회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쓰는 과정에서, 사회가 개인에 대해서 가져야 하는 책임감과 개인의 정신적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는 문학의 의무를 잊지 않았다. 이러한 뚜렷한 의식 속에서, 그는 그가 속한 사회의 가부장적 체제 이데올로기라는 시대상을 『세일즈맨의 죽음』속에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가부장제(Patriarchy)가 비극적 동인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힘임을 강조하며 모순적인 사회 제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베이츠(Bates)가 “밀러는 전근대적인 가부장적 유물을 그의 후손에게 전달하려는 역할에 충실하다.”(베이츠, 164)라고 혹평했는데 밀러가 여자를 남자의 영역 안에 종속되는 존재로서 일상의 사소한 부분들을 맡도록 설정한 이유는 남녀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모순된 사회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당시의 시대상을 담기 위한 문학적 장치로 사용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가부장 체제 하에서 살아가는 남성들은 남성 중심적 사회 체제를 재생산하기 위해 여성에게 순종을 강요하고 가정과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의 층을 형성한다. 어머니는 가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없다. 그저 어머니는 아버지의 결정권에 따라야 하며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도 극의 대부분이 윌리, 비프, 해피의 삼각관계로 이루어져 있어, 두 아들만이 아버지와 갈등을 할 뿐 린다와 기타 여성들은 작품의 핵심적 구조에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소극적 기능을 펼친다. 전형적인 아내의 역할은 남성의 지배 하에서 자주적이 될 수 없다. 린다도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주적이지 못한 여성으로 등장한다.
  린다는 극의 시작부터 마지막 윌리의 장례식을 제외하고는 집밖을 나서는 일이 없이 그려지는데 이처럼 가시적으로는 경제 활동과는 거리가 먼 집안일에 바쁜 여성들과 돈벌이를 할 수 있는 남성들과의 지위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특권으로 인해 남성들은 여성들이 느끼지 못하는 자율성을 향유하며, 여성들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지배력을 열망한다. 윌리도 이 극에서 자신이 린다와 아들들의 경제적 안락함을 보장하고 경제적으로 그들을 장악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우월성을 획득한다. 여성들에게는 이러한 경제적 능력이나 자율성이 없기 때문에 가부장적 체제 안에서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주인공 린다는 윌리와 두 아들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주며 가족을 보호하는 모성적 역할만을 담당할 뿐 그들의 대화나 모임에서는 소외당한다. 윌리는 남근로고스 중심주의적 관점에서 가정의 중대사에 관한 린다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한다. 린다에게는 집안의 소소한 문제를 처리하는 역할만 주어질 뿐 조그마한 의사 전달마저도 남편에게 번번히 제지당한다. 제대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못하는 린다는 의무만 있고 실제 권한은 행사할 수 없는 허수아비같은 존재일 뿐, 가정의 수호자는 분명 될 수 없으며 소극적인 여성상을 대표할 뿐이다.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며 인생의 새 출발을 하려는 비프(Biff)와 해피(Happy)는 레스토랑에서 저녁 파티를 열면서 윌리만을 초대하고, 윌리 또한 비프와 의논하는 과정에서 린다의 의견은 아예 무시해버린다. 올리버(Oliver)를 만나서 투자 약속을 받겠다는 비프의 결심에 윌리는 꿈에 한껏 부풀어 반가워하지만, 린다가 대화에 참여하려는 순간 자신들의 계획을 방해하지 말라며 그녀의 말을 제지한다.

   Biff   : I'll see Oliver tomorrow.
   '''
   Linda : May be things are beginning to-
   Willy : (wildly enthused, to Linda) Stop interrupting! (To Biff.)
           But don't wear sport jacket and slacks when you see Oliver.
   Biff   : No, I'll-
   Willy : A business suit, and talk as little as possible, and don't crack
           any jokes.
   Biff   : He did like me. Always liked me.
   Linda : He loved you!
   Willy  : (to Linda) Will you stop!
   '''
   Linda : Oliver always thought the highest of him-
   Willy :  Will you let me talk?
   '''
   Willy : (angrily) I was talking, wasn't I?
  
   비프  : 내일 올리버를 만날거예요.
   '''
   린다  : 이제야 일이 되는 모양이예요-
   윌리  : (열광해서, 린다에게) 당신은 좀 빠지구려! (비프에게) 올리버를 만날 땐,
           운동 자켓이나 헐렁한 바지를 입으면 안 된다.
   비프  : 안 입을께요. 절대로·
   윌리  : 정장을 입고 되도록 말을 적게 하고 농담 같은 건 하지마라.
   비프  : 그분은 나를 정말 좋아했어요. 항상 말예요.
   린다  : 그분은 널 항상 최고로 생각하셨다구!
   윌리  : (린다에게) 가만 있으라니까!
   '''
   린다  : 올리버가 비프를 항상 최고로 생각했대요-
   윌리  : 말 좀 끝냅시다. 여보!
   '''
   윌리  : (화내며) 내가 말하고 있는 중이었잖아?

  윌리는 린다의 의견을 무시할 뿐 아니라 그녀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불쑥 끼어들면서 그녀를 억압하고 침묵시킨다. 그는 가정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린다가 말하는 것을 강력하게 제지하는 것이다. 남성들의 권위와 우월성만이 강조되는 세계 속에서 린다는 침묵을 강요당함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그녀가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게 됨을 의미한다. 윌리와 두 아들 사이에서 제대로 발언조차 하지 못하는 린다의 모습에서 아내로서 또 어머니로서 설 자리를 잃은 무기력한 여성의 위치가 그대로 드러난다. 린다는 남자의 영역 안에 종속되는 존재로서 윌리에게나 두 아들들에게 단지 가사일만 돌보는 아내나 어머니로 대상화되면서(윌리의 회상 장면에 등장하는 린다는 늘 빨래를 하거나 스타킹을 깁고 있는 모습이다.) 자주적인 주체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가부장적이고 남성 유대적인 집단을 추구하는 윌리에게 있어 남자들만의 대화는 남성적인 주체성을 더욱 확고히 해 주는 것이다. 이런 태도에서 여성스런 분위기를 멀리하고 자신들만의 남성적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남성 권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가부장제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남성상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들이 여성들을 대하는 모습에는 극단적인 남성 우월적 욕망과 사회적 태도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어머니와 아내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다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남성과의 성공적인 유대인 것으로 나타난다.(Austin, 50) 이들 남성들간의 관계는 정서적 유대나 개인적인 연결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것으로 가부장제의 재생산을 위해서 필요한 전제가 되는 것이다.
  메이슨(Jeffrey Mason)이 성별 체계에 의해 남성과 여성을 분리시키는 것이 밀러 작품의 공통점이라고 지적했듯이 『세일즈맨의 죽음』에서도 이러한 성별 체계와 성역할이 강화되어 나타난다.

   Most often jovial, she has developed an iron repression of her exceptions to        Willy's behavior-she more than loves him, she admires him, as though his           mercurial nature, his temper, his massive dreams and little cruelties, served her     only as sharp reminders of the turbulent longings within him, longings which she     shares but lacks the temperament to utter and follow to their end.

   명랑한 성격을 지닌 그녀는 윌리의 행동에 대해 강한 참을성을 키워왔다. 그녀는 남편을     숭배한다고 할 정도로 사랑한다. 남편의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라든지 불같은 성질, 분     에 넘치는 야망과 이따금 나타나는 엉뚱한 괴벽은 오히려 남편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성취 욕구를 그녀에게 일깨워주는 자극이었다. 때때로 그녀 자신도 그런 욕망을 가져보     았지만, 열망을 실제적으로 추구할 만한 용기는 갖고 있지 못하다.

  위의 무대 지시문은 현장에서 공연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알 수 없지만 희곡으로서 이 작품을 접하는 독자들은 린다가 윌리를 사랑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찬양한다는 구체적인 설명을 통해 작품의 시작부터 린다의 제한적 역할을 인식하게 된다. 이처럼 자신의 참된 감정과 실제적인 행위가 조심스럽게 숨겨져 있는 듯한 한정되고 모순된 인물로 재현되어 있는 그녀는 극의 전반을 통틀어 개성이 보이는 부분이 거의 없으며 또한 모습과 태도에서도 특별하게 묘사된 점이 없다. 명랑하다고 표현된 그녀의 성격은 이 극이 끝날 때까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두 아들을 키우고 35년 동안 살면서 남편의 뜻을 거역하거나 의견 차이로 서로 다투는 일 없이 지내왔고, ‘강한 참을성(iron repression)’을 ‘키워왔다(has development)’라는 표현에서도 나타나듯이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침묵하거나 복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지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녀도 윌리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인간 주체로서 성취 욕구를 가지고 있었으나 현실에 순응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가부장적 아내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온 것이다.
  또한 린다의 ‘three of you’, ‘You and your two boys’라는 표현을 통해서 윌리 로만의 가정이 린다를 제외한 남성들만의 공간으로 경계가 설정되어 있으며 그녀 자신 또한 스스로의 역할을 주변인에 한정시키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Willy : Is that so! How about you?
   Linda : No, just the three of you. They're gonna blow you to a big meal!
   Willy : Don't say! Who thought of that?
   Linda : Biff came to me this morning, Willy, and he said, "Tell Dad, we want to             blow him to a big meal." Be there six o'clock. You and your two boys               are going to have dinner.

   윌리 : 그래! 당신은 어찌하구?
   린다 : 전 말구요, 단지 삼 부자만요. 그 애들이 한 턱 대접할 생각인가 봐요.
   윌리 : 설마! 누가 그런 생각을 했지?
   린다 : 비프가 아침에 왔었는데, “아버지께 한 턱 대접할 터이니 말씀드려 주세요.”라고            하더라구요. 6시에 그곳에서 당신과 두 아들 함께 식사하는 거예요.


  이렇듯이 남성인 윌리 로만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정이라는 사적인 영역과 사회라는 공적인 영역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 반면 여성인 린다는 가정이라는 사적인 영역에서조차 완전하게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다. 즉 린다의 의식은 남편과 자식에게 의존하는 수동적인 모습이거나, 공적인 영역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불완전하고 열등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녀의 역할이나 의식은 남성만큼 확장되지 못하고 주변화된다. 싱(Pramila Singh)이 밀러의 초기 작품에 나타난 여성들은 항상 배경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하듯이(156)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남성들의 관계에 초점을 둔 작품의 의도된 구조 방식에서 여성 인물인 린다는 소외된 채 소극적인 역할만 펼치게 된다.
  가부장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하며 윌리의 영향을 받은 비프와 해피 역시 그들이 만나는 여성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극단적인 남성관을 드러낸다. 특히 해피는 여성과의 관계를 쓰러뜨려 보았자 별 볼일 없는 볼링 게임으로 비유하고, 다음 달 결혼하는 부사장 후보의 약혼녀가 마음에도 없지만 붙잡아 보고 즐기다가 결혼식 날에 나타나면 재미있지 않겠느냐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있어 여성은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기 위한 하나의 소모품에 불과하다. 또한 한편으로 그들은 이중적인 여성관을 가지고 있다. 비프와 해피는 결혼을 위한 상대로 온순하고 참을성 있는 여자, 어머니같은 여자를 찾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정복하고 싶은 여성과 어머니같은 모성적 여성을 동시에 동경함으로써 여성을 순진한 부인형과 육욕적인 요부형으로만 국한시키고 있다. 이러한 가부장적 사고 방식은 성적 존재로서의 여성과 어머니로서의 여성을 대립시킴으로써 어머니, 주부들만이 모든 여성의 이상형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Biff : I'd like to find a girl-- steady, somebody with substance
   Happy : That's what I long for. I would! Somebody with character with                         resistance! Like Mom, y'know?

   비프 : 나는 착실하고 듬직한 여자애를 찾고 싶어.
   해피 : 나도 그래. 온순하고 지각있는 여자말야. 어머니 같은 여자.

  윌리와 두 아들이 레스토랑에서 만난 포사이드(Forsythe)와 레타(Letta)는 충분한 근거 없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평가되고 있다. 웨이터인 스탠리(Stanley)는 그녀들을 ‘바람둥이(chippies)’라고 부르며, 린다 역시 그들을 전혀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더러운 창녀(lousy rotten whores)’로 취급한다.
  해피는 포사이드가 레스토랑에 들어설 때 그녀를 먹음직스러운 과자(strudel)로 지칭하며, 그녀를 창녀로 취급하는 의미의 질문을 하지만(You don't happen to sell, do you?) 그녀는 분명히 ‘No, I don't sell’이라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는 언제라도 그녀를 불러낼 수 있다는 듯이 말하며(she was on call) 그녀를 자신의 욕망대로 해석하고 있다. 남성에게 있어 여성의 육체는 하나의 먹이에 불과하며, 해피는 그 자신의 관능적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여성을 음식에 대입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음식은 식욕을 나타내는데 이를 여성에 표현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남성의 성욕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므로 포사이드는 남성의 성욕을 채워준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창녀의 역할을 간접적으로 하고 있으며 음식에 비교됨으로써 객체화되고 있다.
  또한 윌리와 보스턴에서 밀회를 즐긴 여성 역시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그녀는 프란시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객체화되어 등장인물 명단에 올라가 있지 않고 간단하게 ‘여자’라고만 표기됨으로써 창녀 또는 요부 같다는 느낌을 준다. 이 느낌은 그녀의 웃음소리와 검은 속옷, 그리고 그녀가 등장할 때 들리는 무대의 배경 음악에 의해 강화된다.
   The woman enters, laughing. Willy follows them off. She is in a black slip; he is     buttoning his shirt. Raw, sensuous music accompanies their speech.

   여자가 웃으며 등장한다. 윌리가 뒤따라 온다. 여자는 검은색 속옷을 입고 있다. 윌리는     셔츠의 단추를 채우고 있다. 거칠고 육감적인 음악이 그들 대화에 반주가 된다.
 
  그녀는 방문객을 구매계로 안내하는 커리어우먼으로서, 윌리와 연령이 비슷하고, 동일한 직종에 종사하며, 말이 많고, 야한 농담을 즐기는 등 매우 유사한 성격으로 설정되어 있다. 남녀 모두 성품이 유사한 공범자로서 주인공의 외도는 윌리와 프란시스 쌍방의 과실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위와 같은 표현과 장치에 의해 프란시스가 일방적으로 선량한 가장인 윌리를 유혹한 악녀라는 관점에서 부정적인 인물로 인식하게 된다. 이것은 윌리와 같은 당대 남성들의 가부장적 시선이 투사된 극적 기제로서 남녀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모순된 사회 제도에 대한 비판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린다와 같은 자상한 어머니나 정숙한 아내의 위치로 살기를 거부하고 가부장적 틀에서 벗어난 여성들은 남성들의 시선에 의해 비난받아 마땅한 위치에 머물게 된다. 이러한 정형성에 의해서 설정된 여성들은 남성에 의해서 물질적으로 대상화되고 이러한 대상화에 의해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희생되는 것이다. 이처럼 밀러는 사회에서 일탈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 등장인물을 통해서 여성에게 편파적인 사회 제도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3. Feminist 관점에서 바라본 린다의 수동적 가치관 비판

  이 작품에서 아내 린다는 남편 윌리에게 순종하고 두 아들에게 남편을 옹호하고 대변해주는 인물이다. 집안의 남자들이 일, 운동, 혹은 바깥행사를 위해 외출할 때도 린다는 결코 집 바깥에 나오지 않는 전통적인 아내다. 윌리가 옛 시절을 회상할 때, 그녀는 옷, 수선, 세탁, 그리고 가계부를 작성한다. 윌리가 두 아들과 충돌이 있을 때 그녀는 항상 윌리를 지원하고 옹호해준다. 두 아들이 그의 행동을 불평할 때 그녀는 “그는 나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분이야. 그리고 나는 어느 누구도 그를 부족하게 혹은 비참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을거야.”라고 말하면서 그를 옹호한다. 비프와 해피가 윌리를 식당에 내버려두고 돌아왔을 때 린다가 두 아들에게 하는 말은 그녀가 윌리를 사랑하고 걱정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Linda : Get out of here, both of you, and don't come back! I don't want you tormenting him any more. Go on now, get your things together! To Biff : You can sleep in his apartment. She starts to pick up the flowers and stops herself. Pick up this stuff, I'm not your maid any more. Pick it up, you bum, you!

   린다 : 둘 다 여기서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마! 더 이상 아버지께 고통을 주어 괴롭히는 걸 원치 않는다. 짐 챙겨 가지고 어서 나가! (비프에게) 넌 해피의 아파트에서 자도록 해! (꽃을 주워 올리려다가 멈춘다.) 이것 줍도록 해! 난 더 이상 너희들의 식모가 아니란 말야! 어서 주워! 건달같은 자식들!

  이처럼 린다는 어머니로서 방황하는 두 아들을 질책하고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남편 윌리를 격려하며 궁색한 집안의 살림을 꾸려가는 등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적인 현모양처로 그려져 있다. 더 이상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 두 아들에게 아버지야말로 “몹시 지쳐있는 사람”이며 “항구를 떠나 표류하는 작은 배”와 같은 외로운 존재임을 주지시키고, 반대로 두 아들의 방황에 상심한 남편에게는 “당신처럼 자녀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없다.”고 추켜세운다. 사회상에 비추어 보았을 때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린다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이유로 비극의 한 축을 동시에 담당하게 된다.
  린다는 남편을 사랑하고 가정의 행복을 염원하는 전통적인 아내로서 남편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데 급급했던 나머지, 남편이 진정한 자아를 되찾고 자신의 적성에 알맞은 일을 하는 것을 방해해 왔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의 잘못을 비판하거나 충고하지도 않으며 윌리의 비위 맞추기에만 신경을 쏟을 뿐 진정 삶의 동반자로서의 조언이나 충고는 기피한다. 심지어 윌리가 자살을 시도할 거라는 낌새를 알아차리고도 그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다.

   Linda : Don't you feel well?
   Willy : I'm tired to death. I couldn't make it. I just couldn't make it, Linda.
   Linda : Where were you all day? You look terrible.
   Willy : I got as far as a little above Yonkers. I stopped for a cup of coffee.                 Maybe it was the coffee.
   Linda : What?
   Willy : I suddenly couldn't drive any more. The car kept going off onto the                  shoulder, y'know?
   Linda : Oh. Maybe it was the steering again. I don't think Angelo knows the                 Studebaker.
   Willy : No, it's me. Suddenly I realize I'm goin' sixty miles an hour and I don't             remember the last five minutes. I'm- I can't seem to- keep my mind to             it.
   Linda : Maybe it's your glasses. You never went for your new glasses.
   Willy : No, I see everything. I came back ten miles an hour. It took me nearly              four hours from Yonkers.
   Linda : Well, you'll just have to take a rest. Willy, you can't continue this way.
   Willy : I just got back from Florida.
   Linda : But you didn't rest your mind. Your mind is overactive, and the mind is what counts, dear.

   린다 : 몸이 편찮으세요?
   윌리 : 정말 피곤해 죽을 지경이요. 잘 안돼, 정말 안된단 말이요.
   린다 : 하루 종일 어디에 계셨어요? 당신 정말 안돼 보이는군요.
   윌리 : 양커즈 바로 위까지 올라갔었소. 커피 한 잔 하려고 차를 세웠었소. 아마 그 커피            때문이었던 것 같아.
   린다 : 뭐라구요?
   윌리 : 갑자기 더 이상 운전할 수가 없더군. 갓길에 계속 접근할 수 없더란 말야.
   린다 : 아마 그 놈의 핸들이 다시 말썽부린 모양이죠? 안젤로는 스튜드베이커 차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윌리 : 아냐, 문제는 나한테 있어. 문득 내가 60 마일로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지막 5분은 기억이 나질 않아. 마음을 도무지 운전에 집중시킬 수 없었던 것             같아.
   린다 : 아마, 안경때문일거예요. 당신, 안경을 새로 맞추지 않으셨잖아요?
   윌리 : 시력 탓은 아니야. 돌아올 때는 10마일로 왔소. 양커즈에서 집까지 꼬박 4시간             걸렸지 않았겠소.
   린다 : 글쎄, 당신은 좀 쉬셔야 해요. 이런 식으로 계속 일할 수는 없어요.
   윌리 : 플로리다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소.
   린다 : 그렇지만 마음 편히 쉬지는 못하셨잖아요. 당신은 지나치게 마음을 쓰고 계세요.            중요한 것은 몸보다 마음이잖아요.

  그녀는 윌리가 일으킨 차 사고들이 전부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험 회사 검사원으로부터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차를 고친 수리공이 문제라고 말하며 사건의 진실을 왜곡하며 윌리를 두둔한다. 윌리가 자신의 탓이라고 말해도 린다는 시력이 나빠져서 그렇다며 안경을 새로 맞출 것을 종용하고 마음 편히 쉬면 나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윌리가 휴가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반문하자 휴가에서도 계속 신경을 쓰고 마음 편히 있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상황을 단순화시킨다. 그동안 일방적인 명령을 해온 가장 윌리였지만 삶의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 린다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으나 이미 자신의 생각과 마음까지도 남편에게 길들여진 린다와 윌리 사이에 진정한 양방 통행의 대화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이 진정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일차적 책임은 윌리 나아가 가부장제(Patriarchy)라는 사회적 힘에 있다.
  윌리는 린다를 진정한 삶의 동반자로 생각하기 보다는 집안일과 아이를 양육하는 상대로만 여기고 항상 그녀의 말을 가로막거나 고함을 지르고 핀잔을 주었다. 수직적인 부부관계 속에서 린다는 남편의 고통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근본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거나 현명한 판단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킬 궁리조차 하지 못하는 가부장 제국 속의 맹목적인 여성이 되었던 것이다. 윌리가 세일즈를 마치고 돌아오기가 무섭게 린다는 그 날 수입에 대하여 묻고 생활비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다. 이것은 회사와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윌리를 더욱 위축시켰고 그가 물질적 성공이라는 환상에 집착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어떤 측면에서는 린다가 남편의 비극적 파멸을 방관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린다는 두 아들에게 남편을 옹호하면서 “윌리 로만은 돈도 많이 벌지 못했고 신문에 이름이 난 적도 없다.”라고 말한다. 그녀 역시 윌리가 이루지 못할 꿈을 꾸고 헛된 망상에 사로 잡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윌리가 세일즈맨으로 일을 한 34년 동안에 린다는 그에게 한 마디의 진정한 충고나 전직에 대한 권유 등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윌리가 아버지나 형처럼 돈을 벌기 위해서 그의 가족을 버리지는 않을까 두려워한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벤이 윌리에게 알래스카에 있는 목재용 임야를 관리하는 일자리를 제안했을 때 린다는 남편을 만류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경제적인 능력은 남성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 혼자서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갈 수 없다고 그녀는 스스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사실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극의 배경인 20세기 초반의 미국 사회는 경제 공황과 2차 세계 대전을 겪고 난 후 경제적으로 산업화가 시작된 시기로서 전쟁으로 인한 많은 미망인을 비롯한 다수의 여성들이 산업 현장에 뛰어들고 있었다. 극에서 윌리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프란시스라는 여성 또한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 그려진다.
  린다 역시 윌리와 마찬가지로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부장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이상적인 역할 모델로 생각하는 데이브 싱글맨을 언급하면서 윌리가 세일즈맨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불어 넣으며 윌리의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는다. 세일즈맨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윌리에게 린다는 남편이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다는 말로 위로하며 무조건 두둔함으로써 윌리의 자아인식의 기회를 빼앗아 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윌리가 가스질식을 통해 자살을 시도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하며 그저 두 아들에게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을 뿐인 그녀는 남편의 비극적 결말에 일조하고 있다. 린다는 윌리가 자신의 자살 시도를 아내가 눈치챘을 때 느낄 자괴감을 미리 염려하고 사건을 조용히 덮어두려 한다. 남편이 자동차로 죽음의 질주를 할 때 집안 거실에 앉아 고무호스를 들고 불안에 떨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가부장적 가치관에 철저히 동화된 여성의 수동적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Linda : He's dying, Biff.
   Biff : Why he is dying?
   Linda : He's been trying to kill himself.
   '''
   Linda : Last month... Oh, boys, it's so hard to say a thing like this! He's just a      big stupid man to you, but I tell you there's more good in him than in many         other people. I was looking for a fuse. The lights blew out, and I went down the     cellar. And behind the fuse box- it happened to fall out- was a length of rubber     pipe- just short.
   Happy : No kidding?
   Linda : There's a little attachment on the end of it. I knew right away. And sure     enough, on the bottom of the water heater there's a new little nipple on the gas     pipe.

   린다 : 아버진 돌아가실거다.
   비프 : 돌아가시다뇨?
   린다 : 자살하려고 하셨어.
   '''
   린다 : 지난 달에... 얘들아, 이런 말은 차마 못하겠구나. 아버지가 너희들에겐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난 아버지가 다른 누구보다 멋진 분이라는 것을 알고있지.      전기가 나가서 퓨즈를 찾으러 지하실에 내려갔단다. 퓨즈상자 뒤에서 뭔가 떨어지길래      보니까 짧은 고무 호스였어.- 아주 짧은 것이었어.
   해피 : 정말예요?
   린다 : 호스 끝에 뭔가 달렸는데, 금세 알아챘지. 히터 밑의 가스 파이프에 새로 꼭지를     끼워 놓으셨더구나.
  
  사람은 누구나 사회를 떠나서 살 수는 없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다른 이들과 더불어 함께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하는 사회적 존재(social being)이다. 그러나 인간이 사회를 떠나서 살 수는 없지만 더 나은 사회로 변화시킬 가능성은 열려있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여주인공 린다는 남편의 진실된 모습을 사실대로 인식하기를 두려워하면서 애써 남편을 인기가 있는 위대한 세일즈맨으로 믿으며 그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충고하거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려는 노력 대신 지나치게 남편에 의존하였으며, 남편의 기분을 맞추는데 급급했다. 린다는 윌리가 판매량이 적다고 투덜대며 힘들어 할 때 계속 위로의 말만 되풀이한다. 마치 윌리의 세일즈가 기대치에 이르지 못한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때문이 아니고 외적인 상황이 좋지 못해서 이러한 결과가 야기된 것처럼 그를 위로한다. 이러한 그녀의 말은 남편에게 순간적인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결국 윌리가 평생을 환상에 빠져 살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녀는 구시대적인 가치관에 철저히 동화되었고 물질적인 안정을 취하기 위해 남편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조언을 회피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윌리의 장례식 때 “정말로 알 수 없는 일이예요. 하필이면 오늘, 삼십 오년 만에 처음으로 빚을 다 갚고 홀가분해졌는데.”라는 그녀의 대사는 이러한 추측을 반증한다. 작가 밀러는 그가 속한 사회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에 아무런 비판적 사고 없이 길들여진 린다의 무기력한 모습을 통해서 남녀 모두에게 결과적으로 비극적 동인으로서 작용하는 사회제도의 모순을 지적하는 동시에 여성 스스로의 각성 또한 요구하고 있다. 

Ⅲ.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와 소외 그리고 비극

 1. 대화의 단절과 소외

  미국 문화에서 전통적인 남성의 이미지는 용감하고, 강인하며, 독립적인 남성으로 정의되어 왔다. 이러한 시각은 미국의 서부개척 시대의 잔재로서 미국인의 잠재의식에 내재되어 그 면면을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남성성에 대한 믿음은 미국 사회에서(물론 대부분의 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남성의 삶을 결정하는데 강력한 역할을 해왔다. 한 사회에서 문화가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과 역할을 결정하기 때문에 남성성과 문화의 불가분의 관계는 분명하다.『세일즈맨의 죽음』에서도 가부장제(Patriarchy)라는 모순적인 사회제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도시가 팽창되면서  물리적인 힘보다는 섬세하고 조직적인 기술력이 우위를 차지하는 시대가 도래했지만 오랜 세월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가부장제의 잔상은 여전히 통념으로서 일반에 각인되어 있다. 이러한 남성성의 기준으로 사회에서 남성적인 속성을 갖도록 키워진 남성은 자신의 전통적인 남성성을 유지하고 방어하기 위해 비 남성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고 여성을 억압하여 그들의 강인한 남성성을 과시하고자 한다. 주인공 윌리 역시 다정한 아버지이자 자상한 남편이기보다는 자녀들과 아내에게 군림함으로써 가장으로서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하려고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에게 있어 가족이란 어려운 일을 함께 도와가며 헤쳐 나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주종적인 상하관계에 불과하다. 따라서 윌리의 가정에서는 참다운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루어질 수도 없다. 가정이란 애정과 갈등이 연속되면서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계속되는 집단이기에 가족들간의 좋은 유대 관계는 원만한 의상 소통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윌리는 사업 자금을 빌리기 위해 올리버를 만나고 돌아온 비프의 말을 차근차근히 들으며 함께 대화하는 과정 속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생각을 강요하면서 대화의 물꼬를 막아 버린다. 윌리로부터 담력과 용기를 강조하는 남성성을 주입받은 소년 비프는 미식축구 선수로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을 당시에는 친구들을 지휘하며 강한 남성성을 한 때 과시했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명령을 받지 못하고 고정된 직업을 갖고 정착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청년 비프는 남성성의 확인을 도둑질이라는 극한 수단으로 증명하게 된다. 이미 옷 한 벌을 훔친 죄로 수감 생활을 한 비프는 전 직장의 사장인 빌 올리버를 만나러 가서 여섯 시간이나 기다렸지만 올리버는 그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그는 충격을 받고 올리버의 만년필을 훔쳐 손에 쥔 채 십 일층 계단을 뛰어 내려와 회사 문을 나설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인식하게 된다. 자아 인식에 도달한 비프는 자신의 참모습을 마침내 윌리에게 이야기하려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잘 되었을 것이라고 단정하며 재촉하는 아버지를 실망시킬 것이 두려운 비프는 올리버를 만났다고 거짓말을 하며 자신은 아버지와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다고 절규한다.
  
   Willy : You know why he remembered you, don't you? Because you impressed      him in those days.
   Biff : Let's talk quietly and get this down to the facts, huh?
   Willy : Well, what happened? It's great news, Biff. Did he take you into his          office or'd you talk in the waiting-room?
   '''
   Biff : Dad, will you give me a minute to explain?
   Willy : I've been waiting for you to explain since I sat down here! What             happened? He took you into his office and what?
   Biff : Well- I talked. And- and He listened, see.
   Willy : Famous for the way he listens, y'know. What was his answer?
   Biff : His answer was- (He breaks off, suddenly angry.) Dad, you're not letting      me tell you what I want to tell you!
   Willy : You didn't see him, did you?
   Biff : I did see him!
   Willy : What'd you insult him or something? You insulted him, didn't you?
   Biff : Listen, will you let me out of it, will you just let me out of it!
   Happy : What the hell!
   Willy : (to happy) I can't talk to him.

   윌리 : 왜 올리버가 널 기억하는지 아니? 예전에 네가 좋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야.
   비프 : 조용히 말씀하시고, 침착하게 사실대로 따져 보도록 하죠?
   윌리 : 그래, 그래서 어찌 됐는데? 굉장한 소식이겠지? 올리버가 사무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던? 아니면 응접실에서 얘기했니?
   '''
   비프 : 제게 설명할 시간을 좀 주시겠어요?
   윌리 : 여기 앉자마자 계속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던거야!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갔댔지.      그리고 어찌됐어?
   비프 : 말을 했죠. 귀담아 듣더군요.
   윌리 : 남의 말을 잘 귀담아 듣긴 하지. 뭐라고 대답하던?
   비프 : 올리버 대답은요-(갑자기 화를 내며, 말을 끊는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좀 내버려 두세요.
   윌리 : 올리버를 만나보지도 못했지?
   비프 : 만났다니까요!
   윌리 : 모욕적인 말 같은 걸 쓰진 않았니? 모욕하진 않았지?
   비프 : 제발 절 좀 내버려 두세요. 내버려 달라구요!
   해피 : 제기랄
   윌리 : 어찌 됐는지 말해 봐!
   비프 : (해피에게) 아버지한테 말할 수 없어!

  비프는 윌리와의 대화를 다시 시도하려 노력한다. 장남인 자신에게 지나친 관심과 기대를 걸고 있는 윌리에게 자신의 참모습을 바라봐줄 것을 간청한다. 그리고 아버지 또한 남성성에 집착하면서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려 하기 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진정한 삶을 찾을 것을 주문한다. 그렇지만 윌리는 끝까지 지나친 자존심과 허세를 부리며 이를 거절하고 비프가 자신을 여전히 원망하고 있다고만 생각한다.

   Biff : Pop! i'm a dime a dozen, and so are you!
   Willy : I am not dime a dozen!  I am a Willy Loman, and you are Biff Loman!
   Biff : I am not a leader of men, Willy, and neither are you. You were never         anything but a hard-working drummer who landed in the ash can like all the        rest of them! I'm one dollar an hour, Willy!...
   Willy : You vengeful, spiteful mut!
   Biff : Pop, I'm nothing! I'm nothing, Pop. Can't you understand that? There's no      spite in it any more. I'm just what I am, that's all.

   비프 : 아버지, 전 평범한 인간이예요. 아버지도 그렇구요.
   윌리 : 난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난 윌리 로먼이고, 넌 비프 로먼이라구!
   비프 : 아버지나 저나 둘 다 남을 지도하는 사람도 아니예요. 아버진, 대부분의 다른 사     람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했어도 결국 쓰레기통 속에 처박히는 지경에 이른 외판원     에 불과할 뿐이라구요! 전 시간당 1달러짜리 인간이구요!
   윌리 : 복수심에 불타고 앙심이나 품고 있는 녀석!
   비프 : 아버지, 전 쓸모없는 인간이예요. 가치없는 인간이라구요! 아버진 그걸 모르세요?     그렇게 된 것에 더 이상 원망이라곤 없다구요! 전 단지 현재 모습의 인간일 뿐이라구요.     그게 전부예요.

  비프의 충고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지만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지키는 것에 급급한 윌리는 이를 깨닫지 못한다. 이와 같은 의사소통의 단절은 윌리와 비프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두 사람의 소외감을 더욱 깊게 만든다. 좋은 대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 상대방, 그리고 주변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고,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원만한 의사소통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나 과소평가와 같은 비합리적인 사고에 빠지거나 상대방이나 주변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원만한 의사소통이 단절된다. 
  의사소통의 단절은 주변인으로부터의 소외를 초래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는데 이것은 주로 개인의 객관적인 지식이나 분별력의 결여 또는 제3자의 소통방해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하면 원만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첫째,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고, 둘째, 주변에 당사자들의 그러한 노력을 방해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의사소통은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만큼 역으로 소통단절은 기존의 인간관계를 훼손하고 결국은 개인을 불행으로 이끌 수 있다.

2. 비극적인 결말

  역사 속에서 남성들은 시민권을 획득하고 역사 창조의 주체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여 왔지만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어느 계층이나 집단보다도 소외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서부 개척 시대나 농경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산업화가 추진되고 산업 사회가 도래한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여전히 남편은 경제적 활동을 독점하고 부인은 가정에 머물면서 정서적 기능을 수행하는 획일적인 역할 분담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가부장제(Patriarchy) 하에서 가족 관계는 엄격한 권력 구조를 배태하고 있을 수밖에 없으며 가족 구성원 가운데서도 특히 최고 연장자인 남성이 권위를 장악하고 그의 지배 하에서 성과 연령에 의한 편성 원리에 따라 가족 중에 나이 어린 구성원과 여성은 종속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고, 그들은 가장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다시 말해 가부장적 가족주의는 가장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 구성원 개인의 의지와 자율성이 부정되고 억압되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가장이 절대적인 주권자로 군림하는 가부장제(Patriarchy) 사회에서 가족 결속의 핵심은 상속의 규칙이다. 가부장은 상속에 의해 정해지며, 가부장 개인은 가구 성원 전체에 대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아버지는 가족을 대표하고 아들에게 재산의 상속과 가계를 계승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버지는 가족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절대적 권력자로 모든 가족 구성원을 관리하고 지배하며 그들을 부양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영향력을 미친다. 인간은 누구나 모태로부터 출생하고, 인간으로서의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녀는 성장과정에서부터 다르게 양육된다. 남자는 강인한 남성성을 그리고 여성은 순종적인 여성성을 지닐 것을 가정과 사회로부터 강요받는 것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주인공 윌리 역시 가족에 대해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며 가족 구성원을 횡적인 동반자적 관계로 보기 보다는 종적인 상하 관계로 인식했다. 용기와 담력을 가진 독립적인 남성성을 가질 것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성장한 윌리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가장의 권위를 과시하고자 늘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포장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윌리는 가족을 부양하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남성성을 지키려고 한다. 그는 “자신이 프로비던스 시장을 만났고”,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뉴잉글랜드 어느 거리에나 주차를 할 수 있고, 경찰차들이 자기 차처럼 봐준다고” 허풍을 떤다. 사실은 물질적 성공을 크게 거두지도 못했으며 도덕적인 인물도 아니었고 다른 이들에게 크게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는 가족들에게 항상 허풍과 가식적인 태도로써 우상처럼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세 개의 대학에서 장학금 제의를 받은 소년 비프가 학년말 시험에서 낙제를 한 후에 아버지라면 어떠한 어려운 상황도 해결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윌리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보스톤에 있는 호텔로 찾아갔을 때 우상같이 흠모하던 아버지의 불륜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더욱이 값이 비싸 어머니는 제대로 신어 보지도 못하는 스타킹을 두 상자나 다른 여자에게 주는 것을 본 이후에 둘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어지게 되었다. 집에서 어머니가 스타킹을 깁는다고 화를 내던 아버지가 어머니 것이 되어야 할 스타킹을 다른 여자에게 주는 것을 본 순간 아버지에 대한 환상과 존경심이 적개심으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그 때까지 아버지에게 존경심을 품고 있던 비프는 이 사건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랜 방랑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윌리는 여전히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비프의 방황이 자신에게서 기인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를 비난하는 윌리는 비프와 진정한 대화를 나누기를 꺼려하고 자식으로부터 소외된다.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유지하고 방어하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며 인정하지 않는 그의 행위는 그 이면에 감추어진 전통적인 남성성의 위기와 불안감을 감추기 위한 기제로서 가부장제의 단적인 폐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윌리는 또한 아내인 린다로부터 소외된다. 그가 아내를 대하는 사고방식과 태도에서 부부간의 소외양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부장제의 남성 중심 사고방식에서 아내란 남편의 능력에 대한 상징물 중의 하나로 생각되기 때문에 윌리 역시 아내를 대화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안락한 가정과 가사에만 전념하는 아내는 어쩌면 남편의 능력을 나타내는 척도일 수 있다. 즉, 집안에 좋은 냉장고나 녹음기와 같은 가전제품, 고급 승용차, 그리고 멋진 저택 등과 같이 아내도 안정된 생활의 정도를 나타내는 상징일 수 있다. 이와 같이 아내를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소유물로 인식하는 사고방식은 부부간의 진정한 대화를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소유물과 마찬가지로 아내는 불평과 결핍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조은영, 45) 따라서 윌리 부부 사이에 진정한 양방통행 대화는 없었으며 린다는 전통적인 아내의 역할에 충실한 나머지 남편의 자살 시도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방관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윌리는 삶의 동반자인 아내에게조차도 진실되지 못한 채 소외되고 결국 비극적인 삶을 마친다.
  여기에서 윌리의 자살 원인을 좀 더 심화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는 가족들에게 우상이자 흠 없는 존재로서 군림했고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였으며 또한 가족 구성원들을 대화 상대라기보다는 종속적인 대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결국 가족들로부터 소외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남성 중심 사고방식에서 요구하는 부양자로서의 의무에 대한 부담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윌리는 판매 실적이 형편없었지만 회사에서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라고 과장하면서 진실을 왜곡하고 가장의 권위를 지키려 했다. 이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족 부양 능력이 가장의 강인한 남성성을 증명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윌리는 결국 자본주의의 냉정한 현실 원리를 내세우는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게 되고 그는 보험금을 가족 좁게는 장남인 비프에게 상속해주기 위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남성이자 집안의 최고 권력자인 윌리 또한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남성성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또 다른 희생양이 된 것이다.

 Ⅳ. 결론 

  문학은 인간의 삶 속에서 형성된 인간적 산물이며 인간들의 삶과 사회의식, 정치나 경제 등의 사회 현상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무대 위의 인물들의 다양한 몸짓과 행위를 통해서 인간의 삶과 정신을 반영하는 연극은 사회 현실을 이해하고 형상화하는 작가의 개성이나 주관, 이데올로기를 다른 어떤 장르보다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 될 수 있다.『세일즈맨의 죽음』역시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본 논문에서는 특히 이 극에서 나타나는 가부장적 요소들에 주목하였고 가부장제라는 사회제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권력구조가 피지배자인 여성과 나이 어린 남성 곧 가족구성원 뿐만 아니라 가장인 남성 본인 또한 소외시키며 이것이 결국 비극적 동인으로서 작용하는 사회적 힘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처럼 밀러의 비극은 강한 사회성을 띠고 있으며 이것은 그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주장한 것과 동일하다. 밀러는 인간에게 미치는 사회의 힘과 거기에서 발생한 개인들 간의 갈등과 소외에 비극의 초점을 맞춘다. 그는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를 물고기와 바다의 상호 유기적인 관계로 파악한다. 그래서 사회란 인간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터전이 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파멸의 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밀러는 개인에 대한 사회의 책임을 자신의 극에서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그는 흔히 사회극을 쓰는 작가로 이해된다. 이것은 앞에서 인용했듯이 작가 자신이 사회극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존경하고 모방했던 입센과 버나드 쇼 등의 사회극의 전통이 그의 극에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밀러는 또한 현대의 보통 사람들도 비극의 주인공이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미국 중 하류층의 가정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부부 사이의 관계, 가장으로서의 책임, 아들의 도리 등의 문제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차원으로 승화되어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다. 주인공 윌리는 특별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물질적 성공을 크게 거둔 부유한 인물도 아니며 단지 그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보통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과도 같은 윌리의 비극을 통해서 독자는 깊이 공감하고 비애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낀다. 고매한 신분의 영웅이 아닌 현대의 보통 사람도 현실 속에서 충분히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며 그의 몸부림, 좌절, 그리고 몰락이 우리에게 어떻게 비극적인 감정을 일으키는지 독자는 이 극을 읽으며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와 결합해서 나타날 때 우리에게 더 큰 공포감과 문제의식을 가져다주는 것에 대해서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밀러는 보통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독자를 포함한 소시민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주인공을 파멸로 이끄는 요인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 비극적 동인으로 주목한 가부장적 요소는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을 불행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까지 파멸의 길로 이끌었다. 작가는 가부장제를 권하는 사회에 일침을 가하면서 개인에 대한 책임을 촉구하고 나아가 사회에 종속되기도 하지만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있는 사회적 존재로서 각 개인들도 무비판적으로 담론을 수용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작가의 이러한 비판 의식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가 급변함에 따라 남녀가 담당하는 역할이 많이 다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남녀를 분리시켜 남편은 가족의 부양자로 여성은 피부양자로 가정을 우선적으로 지켜야 하는 성역할 분업은 아직도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선천적 성에 기반을 둔 성별 고정관념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어 개인적 요구와 사회적 요구 사이에 갈등이 증가하고 있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살펴보았듯이 남성편중적인 사회구조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의 근본인 평등이 중요한 도전을 받게 되며 남성중심의 사회는 급속히 변화하고, 그에 따라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며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에 경쟁력 약화를 가져온다.
  성별에 따라 가족과 직장으로 이분화 되거나, 아니면 일과 가족에 대한 여성의 이중부담을 요구하는 현재의 사회구도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왜곡되고 파편화된 삶을 요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난 평등한 기반 위에서 남녀가 책임과 의무를 분담하는 동반자적인 관계를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이제까지 여성들에 의해 주로 수행되어 온 가족 내의 재생산역할을 재평가함으로써, 그에 대한 남성과 사회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는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타난 사회적, 동시적, 주관적 존재인 인간과 사회제도간의 관계와 그 비극적 설정을 통해 독자는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사회적 힘을 깨닫고 인식의 전환을 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간은 문학 작품을 향유하는 것이며 이와 같은 간접 경험을 쌓는 과정을 통해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발전할 가능성이 열려있는 존재로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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