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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현시기 학생운동의 위기라는 명
제하에 현재의 여러 문제의식에 입각해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올바른 방
향모색의 일환으로 학생운동의 사상논쟁사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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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의 학생운동(이하 학운)은 70년대에 그 본격적인 태동과 함께 조직
운동 모색의 움직임을 보였다. 4.19투쟁의 역사속에서 학운은 유신이라는 열
악한 상황속의 어려운 싸움을 계속해왔다. 이시기 학운진영에서는 전국민주
청년학생연합을 구성해 최초로 조직적 대응을 꾀했으나 주체적인 역량의 미
비와 조직의 확고한 전망 등의 부재로 정부의 탄압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채 와해되고 말았다. 당시 이러한 유신정권의 강력한 탄압에 의해 조직건설
의 기피상황속에서 이뤄진 반유신 투쟁은 그 지도적 역량이 매우 미비했으며
학생들의 의식화 정도도 아직은 낮은 수준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운동진
영에 있어서의 전위조직의 필요성을 제시했으며 향후 80년대 학운진영의 조
직노선에 대한 다양한 모색과 실험의 바탕이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79년 10.26사건 후 80년 초까지 이어진 소위 서울의 봄이라 불리는 상황에
서 정치적요구를 주장하고 학원투쟁에서 가두투쟁으로의 변화를 주장한 주전파
와 대중적기반확보에 중심을 둔 주화파간의 대립양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 두
입장은 실천적 대안의 부재로 명확한 성격을 띄지 못하고 80년대 무림과 학림
논쟁으로 발전한다.

80년 5월 16일 최규하대통령의 귀국소식에 24개 대학 10만여명의 학생들은
계엄령이 떨어진 가운데 서울역에 집결했으나 학생대표들은 논의를 통해 사태
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결정하고 복귀조치를 내리게 된다. 이 사건이 80년 5
월 `서울회군'이다. 이러한 결정으로 인해 이틀 뒤 광주에서 자행된 군부의
대량학살에 있어서 학운진영은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 회군, 광주에
서의 패배는 새로운 자기 모색을 통한 과학적 인식의 심화를 가져오게 되었는
데 이 사건들의 평가에 대한 상이한 입장 대립이 바로 무림그룹과 학림간의
논쟁의 시작이었다.

주화의 전통에서 출발한 `무림'그룹은 자체적인 역량을 소모시키기만 하는
시위만능주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하며 학운 자체적인 역량의 개발
을 통해 전체적인 대중적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현
시기에서도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는 대중노선의 단초를 두는 것에는 의의가
있으나 학운을 전체운동의 주도체라는 과도한 설정을 함으로써 오히려 `준비
론'내지는 `조직보위론'이라는 심각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반면 `학림' 그룹은 80년 서울 회군을 대기론적인 발상이라 비판하면서 전
체적인 운동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복원력이 크고 조직적인
대응이 가능한 학운진영이 그 선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광범
위한 민중항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즉 문제제기집단으로서 학생운동을 두
고 문제해결집단으로서 기층민중운동세력 특히 노동운동이 발전할 수 있는 토
대를 만들어야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러한 무림과 학림진영의 한계와 오류를 제대로 평가하고 현시기에서 그 교
훈들을 받아안기 위해서는 그때의 운동세력의 주체적 역량에 대한 정확한 평
가와 그것에 바탕을 둔 정세파악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앞서도
말했듯이 당시의 학운의 역량이 그다지 양호한 편이 아니었음에도 부분적으로
나마 선도적인 지도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과 다른 계급에 비해 거대한 운동
력으로서의 전화가 용이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학림계급의 입장이 당시의
무기력한 운동진영을 깨울 수 있는 적절한 투쟁방식이었다고 평가된다. 하지
만 이 역시 다양한 학생대중과의 결합에 실패해 스스로의 한계를 나타내기도
했다.이러한 상이한 견해차이는 향후 정세인식에서부터 당면투쟁에대한 입장,
투쟁방향에 이르기까지 전혀다른 입장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선도성의
문제는 학운의 대 사회적 역할규정이란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현시
기에서 이러한 대립의 지점들은 아직 유효하다. 물론 그렇다고 당시의 정세파
악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학운진영의 역사적 위치는 항상
선도적 문제제기에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는 명제이다.

주전-주화, 무림-학림 논쟁 속에서 80년대 운동세력은 향후 실천방안에 대
한 치열한 고민속에서 한단계 높은 수준의 `야학비판', `학생운동의 모색과
전망' 논쟁으로 나간다.

<전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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