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교내 벽보에서 어느 학과의 학생총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한다. 다시 말해 우리 학생들은 어느 조직이 민주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성원들의 폭넓은 참여가 필요함을 분명하게 알고 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며칠 앞으로 다가온 5.31 지방선거에서 뽑히는 단체장들 (서울시장이든 경기도지사이든)에 대해서 무더기로 당선무효 소송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의 전체 투표율은 유권자의 절반보다 적은 숫자가 참여한 48.9%였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대부분의 지역에서 맥빠진 경쟁이 지속된다면,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48%보다 현저하게 낮아질 수도 있다. 예컨대, 지지율 60%로 당선된 서울시장은 실제로는 서울 시민의 단지 30% 안팎의 지지로 당선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거 정족수 미달이고, 선거 무효라는 벽보가 선거 후에 붙을 것인가?

  대학생을 포함한 젊은 유권자가 이번 선거에 열심히 참여해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은 진부한 것이다.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다시 한번 선거참여를 권하는 까닭은 두 가지이다. 첫째, 요즘 젊은 유권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정치참여는 ‘행동 없는 요구 voice without action’에 기울어있다. 다시 말해 젊은 층의 상당수가 온라인상에서 혹은 오프라인에서 정치적인 이슈에 관심을 갖고 또한 이슈거리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들은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정치현안을 토론하고 중대한 이슈가 제기되면 수많은 댓글을 숨가쁘게 달면서 토론방을 달구곤 한다. 온라인상에서의 관심과 정치적 토론을 지켜보자면, 젊은 층의 정치무관심이 심각하다는 주장은 치우친 생각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들은 ‘토론하되 투표하지 않을 뿐’인 것이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자신들이 편안해하는 공간에서 정치이슈들과 즐겁게 어울리고 있을 뿐이다.

  정보통신시대의 기술적인 기반과 디지털 신인류의 특성이 만나서 빚어내는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정치관여에 대해서 필자가 갖는 우려는 이런 것이다. 모든 정치체제는 시민들로부터 지지와 요구의 두 가지를 받아들이고 이를 기반으로 체제가 운영된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지지와 요구 사이의 균형이다. 한편으로 정부에 대해서 시민들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이를 정책의 형태로 집행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시민들의 요구만을 먹고 살 수는 없다. 정부는 아울러 시민들의 지지라는 자원이 있어야만 적절하게 기능할 수 있다. 이러한 지지와 요구의 균형의 관점에서 볼 때에 오늘날 젊은이들의 ‘행동없는 요구’는 곧 ‘지지없는 요구’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정부는 지지의 결핍과 요구의 과부하에 시달리게 된다. 정부를 지지의 결핍으로부터 구하는 길의 하나가 투표에 참여하는 일이다.

  둘째, 오늘날 젊은이들이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삶의 질’이다.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싶고, 청결하고 정돈된 도시에서 살기를 원하고, 문화 인프라가 넉넉하게 갖추어진 곳에서 살고 싶어한다. 유럽의 선진국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오는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된 것은 그들의 높은 소득수준이나 국방력이 아니다. 오히려 선진화되고 문명화된 삶, 쾌적하고 교양 있는 삶을 부러워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러한 쾌적한 삶의 여러 요소들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은 실은 영국, 프랑스, 독일의 정부가 아니라 파리시, 런던시, 프로방스의 작은 마을과 같은 지방행정기관들이다. 즉 풀뿌리에 해당하는 조그만 자치단체들의 역량과 역할이 서유럽의 지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풍요로운 도시들을 키워온 것이다. 결국 우리가 우리의 삶의 질은 높이는 길의 하나가 올바른 지방정부, 지방의회를 뽑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남은 열흘 동안 면밀하게 잘 지켜보고, 우리 모두 투표장으로 가야한다. 

 

장훈 /정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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