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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수임용자의 해외박사학위우대문제

(2)중앙대 교수 임용자의 박사학위취득현황

우리나라 대학은 최근 몇년새 괄목할만한 양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연구 및 교수 인력을 자체적으로 길러내는 자생적인 학문생산 구조는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령 교수 채용때 국내박사보다는 해외박사 출신자를 더 우대하는 풍토가 여전한 것이 현실이다.

‘토종박사’가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다보니 ‘국내 대학은 외국 대학원의 학부’라는 자조도 흘러나온다. 그래서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국내 대학의 박사과정을 기피하는 경향이 짙다. 가장 큰 이유는 학위 취득 후 교수로 임용될 가능성이 해외 유학파 출신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학에서 국내박사와 해외박사를 차별하는 배경에는 토종박사는 아무래도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선입관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해외 유학파 우대 현상 심하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수나,또는 미래에 교수로 임용될 강사들의 출신 학교를 살펴보면 명문대일수록,혹은 나이가 젊을수록,해외 유학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미국대학 출신자가 대부분으로,학계에서는 미국이 한국 학계를 이끌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돌 정도다. 교수신문이 지난 2005년 하반기 교수 임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지난해 상반기 신임 교수중 국내박사 출신자가 60%까지 상승했으나 하반기에는 50%대로 다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에 전체 119개 대학에서 총 1135명이 교수로 새로 임용됐다. 임용 규모는 계속 늘고 있지만 국내박사 출신자의 교수 임용 비율은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하반기 신임 교수 1135명 중 박사 학위자는 874명(77%)으로 이 가운데 국내 박사는 461명(52.7%)으로 집계됐다.

지난 2002년 상반기부터 해외박사보다 토종박사의 신임 교수 임용이 우위를 보이고 있기는 하다. 지난해 하반기 임용된 신임 교수 가운데 국내박사 비율이 가장 높은 학문 분야는 의.약학 분야(104명, 83.2%)였다. 이어 공학(100명, 56.2%), 예체능(29명, 54.7%), 이학(57명, 52.8%), 인문(44명, 51.2%)계열 순이었다.

하지만 인문.사회계의 해외박사 선호 경향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어문(10명, 31.3%),사회(105명, 39.2%)계열의 경우 국내박사 비율이 각각 31.3%(10명), 39.2%(105명)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특히 사회 계열은 절반이 ‘미국박사’ 출신자로 채워졌다. 농수해양 분야의 경우 국내박사와 해외박사 비율이 같다.

서울대의 경우 토종박사 비율은 34.8%에 불과하다. 지난해 1월 서울대 교무처가 밝힌 ‘전임교원 박사학위 취득국 현황’에 따르면 현재 서울대 전임교원 중 34.8%만이 국내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국내외 박사학위 동시 취득시 국내에 포함). 단과대별로는 인문대 61.3%, 사회대 93.6%, 자연대 89.1%, 공대 86.3%, 농생대 86.1%에 해당하는 교수가 해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학파가 우리나라 대학의 교수 사회 주도

해외박사 가운데 미국대학 박사학위 취득자에 대한 우대 현상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난해 하반기 전체 신임교수 가운데 32%인 280명이 미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일본(41명), 독일(28명), 영국(23명),중국(9명), 프랑스(7명) 순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의 경우 미국박사 출신자에 대한 우대 현상은 더욱 심하다. 해외 박사학위를 소지한 서울대 전체 교수 중 52.8%가 미국 박사학위 취득자이다. 서울대 교수의 과반수가 미국 박사 출신인 셈이다. 특히 거의 국내 박사로 구성된 의.치대 교수를 제외할 경우 절대 다수의 교수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서울대는 지난해 1월 미국을 제외한 해외대학 중 미국 박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으로 꼽히기도 했다. 미국 시카고대가 지난 1999년부터 5년간 미국박사학위 취득자의 출신 학교를 분석한 결과, 서울대는 1655명을 배출해 2175명을 배출한 버클리대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한 것이다. 미국 내 대학을 제외할 경우 전 세계 대학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그러다보니 서울대의 경우 교수 구성만 보자면 마치 어떤 서양대학의 분교가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처럼 미국 박사학위 취득자들이 계속 늘어나는 현실에는 이들 미국 박사 출신 교수들의 역할이 크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미국 박사 출신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미국 유학을 권유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렇게 미국 박사학위를 취득해 귀국할 경우 교수 신규 임용 때 미국 박사 출신 교수들이 많은 학교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외국 대학원으로 떠나는 국내 대학생 갈수록 늘어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내 대학원보다는 외국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하려는 학생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연세대 대학생은 “우리 학교 학생들이 학부과정까지 잘 다니다가도 교수 임용이나 연구환경의 측면을 바라보고 해외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 대학원은 점점 더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 등 국내 대학생들이 해외대학 대학원으로 떠나는 것은 교육 및 연구환경 부실로 인해 자생학문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국내 대학의 박사과정을 기피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학위 취득 후 교수로 임용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서글픈 현실은 교수 임용 때 연구 논문의 질과 영향력보다는 국내 대학과 외국 대학의 등급을 차별화해 출신 학교의 점수가 교수 임용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학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 없는 지도교수 밑에서 제대로 연구할 실험실과 장비도 부족한 데다, 쥐꼬리만한 장학금을 받아가며 교수의 잔심부름까지 해야 하는 열악한 현실도 우리의 인재를 외국으로 밀어내는 또 다른 원인이다.

외국의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하면 국내 대학의 교수직이 기다린다는 암묵적 법칙이 공유되고 있는 한 국내 대학원은 자조적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렇듯 엄청난 수의 외국 유학 출신자들이 국내 우수 대학들의 교수직을 차지하고 있는 데도 국내 대학의 경쟁력이나 연구력이 국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대단히 역설적이다.  대학 교수 가운데 상당수가 해외, 특히 미국 유학파이다보니 국내 대학생들의 해외 유학을 부추길 뿐만 아니라 한국의 학문.가치 체계의 미국 종속 현상을 심화시키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 학계가 서양,특히 미국 이론의 단순한 수입상에 불과해 미국 종속적 학문.가치 질서의 양산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해외 박사 출신자들이 우대받은 것은 우리나라 대학의 학문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대학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해외의 학문 성과를 적극적으로 흡수했던 유학파들의 공이 크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까지 우리의 교수 요원을 외국 대학원에 위탁, 양성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국내에서 학위를 땄다고 해서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최근 들어 국내 이공계 대학을 졸업한 토종박사들이 세계적인 명문대학 출신 박사들과 치열한 경쟁 끝에 잇따라 외국 명문대학의 교수로 임용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가 키운 고급 두뇌들이 해외로 빠져 나가지 않도록 국내 대학에서도 ‘해외 간판’ 지상주의에서 탈피, 실력을 중시하는 교수 임용 문화가 뿌리내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처럼 대학 간판이 대학의 질을 결정하는 것과 달리 수월성을 추구하는 미국의 최우수 대학들은 우수한 교수의 스카우트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바로 교수진의 질이 대학의 질과 명성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UC버클리, 칼텍, MIT, 예일대, 미시간대, 프린스턴대 등 미국의 최상위권 대학들의 교수 채용은 출신 대학과 학위 취득 대학보다는 그 개인의 능력해 기초해 결정된다.

국내 대학원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국내 학문의 근간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각 학문 분야의 연구력에서 대학원생의 몫은 지대하다. 미국이 세계 과학계의 주도권을 쥔 것도 알고 보면 세계 각국에서 제 발로 찾아가는 우수한 두뇌들 덕분이다. 국내에서 아무리 경쟁력 있는 박사를 배출해도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면 연구인력 수급의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한시적으로 대학 교수 임용 때 국내 박사 교수 할당제를 시행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각 대학의 교수직 중 일정 비율을 국내 박사에게 할당하는 제도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국내 박사 할당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내 박사와 해외 박사를 똑같이 경쟁시켜서 그 중에 우수한 인력을 뽑아서 대학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국내 박사라는 이유로 우대한다면 더이상 대학은 발전은 없고 정체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국내 박사들에게 학문적 동기 부여를 제공하고 학문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교수 할당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쏠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잠재력 있는 학문 후속 세대를 배출해 경쟁력 있는 연구환경 조성과 국내 학문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서 국내 박사 할당제 도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반가운 것은 최근 학계에서 국내 박사 살리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도 교수로 임용되기는커녕 실직 상태를 면하기 어려운 ‘토종박사’를 구제하고 적극 활용하기 위한 방안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성균관대 등 5개 대학은 국내 박사들에게 교수 임용의 길을 넓혀 주는 것은 물론 교수 임용때 타 대학 출신 토종박사들에게도 문호를 대폭 개방할 방침이다. 이는 그동안 대학원 중심 교육을 표방하면서도 토종박사를 홀대해 온 대학들의 자기반성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주요 대학들이 토종박사 키우기에 머리를 맞댄 것은, 늦었지만 의미 있는 일이다.

더욱이 타 대학 출신에게 문호가 개방된다면 ‘동종교배’의 폐단을 씻어내는 데도 크게 기여할 터이다. 이를 위해서는 폐쇄적인 교수 사회부터 열린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해외 박사와 토종박사를 불문하고 학문적 역량만이 교수 임용의 절대기준이 되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 대학사회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 아닐까.

                                                                                                조철현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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