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________기울던 고려의 국운을 살리려했던 마지막 몸부림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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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2천년, 새로운 밀레니움을 준비하는 현 시점에서 중대신문에서는
민중의 역사에 초점을 맞춰 과거 1천년을 고려, 조선, 근대, 현대로 구분해 그
당시 민중의 삶에 커다란 획을 그을 만했던 사건 중심으로 민중의 삶과 당시
시대적 상황을 기술한다. '다시 그려보는 민중천년사'를 통해 역사발전의 원
동 력은 언제나 민중이어야 함을 확인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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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전(詩傳)을 보면 "주(周)나라는 비록 옛 나라이지만, 그 명(命)은 새롭나
니"라는 구절이 있다. 나라를 세운 지 1천여 년이나 된 주나라이지만 천명(天
命)을 받아 민본정치를 구현하고 있으므로, 마치 이제 갓 출발하는 사회 초년
병처럼 활기차고 새로워 보인다는 뜻이리라.

백성을 위한 끊임없는 개혁정치, 이것이 주나라를 1천여년 이상 지탱할 수 있
게 한 원동력이었다. 우리의 과거사에도 민본정치라는 말은 자주 등장한다. 나
라에 변고가 생길 때마다 국왕과 신하들은 너나 할 것없이 "나라의 근본은 백
성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나라에 진정 백성들을 위한 개혁이 얼마나 있었던가. 개혁을 시도
하다가도, 반발에 부딪히면 용두사미(龍頭蛇尾) 격으로 꼬리를 내려 버리기 일
쑤였고, 혹 개혁을 할라치면 그것은 목숨을 담보해야 했다.

1374년 9월. 22세의 한창 나이에 왕위에 올라 개혁을 부르짖으며 원의 사슬
을 풀고 흔들리는 나라를 일으켜 보려 했던 공민왕. 그가 권문세족에게 시해되
었다. 그 14년 뒤 고려는 위화도 회군으로 유명무실화 되었고, 4년 뒤 마침내
이성계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말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공민왕을 시해했던 권문
세족이 대부분 제거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자주 집정자의 권력 획득 과정에서,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이 얼마나
타락하고 참혹하게 되는가, 그리고그 대가로 크나큰 도덕적 상처를 입어 파멸
했던 모습을 보아 왔다.인간사는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거
시적인 안목으로 흐름을 읽으라는 주문을 받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과연
고려말의 권문세족들은 공민왕의 시해 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까.

당시 나라의 재정은 파산지경이었지만 권문세족들은 권력을 이용해 창고를 가
득 채웠고, 산과 강을 경계로 할 만큼 광대한 농장(農莊)은 세금과 부역을 면
제받았다. 이에 반해 백성들은 30년에 걸친 원나라와의 싸움으로 농토를 잃은
데다, 권문세족들이 누리는 특권의 부담까지 떠맡아 무거운 세금과 부역을 감
당하였으며, 원나라에 대한 공물의 책임까지 져야 했다.

그래서 일반 백성들은 논밭을 소유한 사람조차 끼니를 해결하기가 힘들 정도
였다. 이들 중에는 아예 토지를 권문세족에게 바치고 그들의 예속민으로 전락
하는 사람도 있었다. 왜냐하면 힘든 부역에서 벗어나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그 방법 뿐이었으니까.

어느 사회이든 기득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변화를 구하는 예는 매우 드물
다. 그들은 사회 체제 변화가 가져다 줄 불이익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소위 승부수라는 것을 던져야 할 때도 있지 않을까.
문어는 먹이를 구하지 못하거나 위기에 빠졌을 때 자기의 다리를 먹으면서 그
위기를 벗어난다고 한다.

공민왕의 개혁 정치를 도왔던 신돈이 권문세족들이 마구 빼앗은 토지와 노예
로 삼은 백성들을 원상복구시키자, 나라 안의 백성들은 성인이 출현하였다고
하며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이것은 권문세족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이 얼마
나 컸으며, 그들이 얼마나 개혁을 갈망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그들이 공민왕의 개혁에 참여하였다면 당장은 그들이 누렸던 기득권의 일부
아니 대부분을 포기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들은 더 큰 것
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불만에 가득찼던, 그래서 그들에게 멀어졌던 민심을
말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과거에 누렸던 영화를 온존히 유지할 수 있었으리
라.

하지만 그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만에 귀를 기울지 않고,그릇된 행동과 실
정에 대한 분노를 깨닫지 못하였으며, 변혁을 고집스럽게 거부하고 어리석다고
할 만큼 완고하게 부패한 기존의 제도를 유지하려 했다. 또한 사리사욕에 집착
한 나머지 공민왕의 시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니, 그
아둔함에 경의를 표한다. 결국 그 대가는 민심의 이반이었고, 침묵하던 백성은
후일 이성계의 군사로 돌변해 그들의 심장에 칼을 꽂았다.

민심을 져버린 권문세족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개혁을 받아들
여 민심을 되돌리는 일이었다. 그랬다면 "나라는 비록 옛 나라이지만, 그 명
은 새롭나니"라는 구절이 살아 돌아 왔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조선이라는
국명은 우리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선택
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려 그들 자신을 압사시켰으니. 그런데도 인간들은 역
사의 교훈을 억지로 잊으려 하니!

상대영<문과대 사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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