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는 이창동장관 시절 ‘21세기 문화의 비전’을 담은 <창의한국>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창의성이 모든 국가의 화두임을 천명한 바 있다.창의성이란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이며, 한 국가가 보유한 가장 위대한 자원이자 지식기반사회가 요청하는 성정엔진이란다. 이런 배경으로 참여정부는 그동안 크게 고려되지 않았던 향유자를 문화정책의 주요 대상으로 사고하게 되고, 시민의 문화향유력과 창의성을 제고하기 위해 ‘문화예술교육’을 활성화하기 시작한다.

문화교육과 문화예술교육, 종이 한 장 차이

문화교육은 매우 다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포괄하는 범위도 매우 방대하다. 우선 문화교육은 문화의 세기, 지식기반사회로 대표되는 21세기 급변하는 사회의 새로운 교육이념이다. 또한 이 교육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과정의 편성 및 운영 원리이며, 동시에 문화콘텐츠를 다루는 교과목 내용,교과영역,프로그램 등을 지칭하기도 한다.

반면 문화예술교육은 문화교육의 세 번째 개념과 가장 유사하며 문광부가 이 분야에 대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사용하는 정책명으로 문화교육에 비해 상대적으로 명확한 개념과 범주를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갈수록 치열해지는 입시경쟁체제, 이를 위한 왜곡된 주지교과로의 편중(실제 주5일 수업확대로 인해 수업시수의 조정이 불가피해지자 예체능과목 및 특별활동 등이 정리해고 일 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결국 주지교과목에 대한 편중현상은 더욱 심해지게 된다.)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문화예술교육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문화예술교육은 문화교육적 지향을 가져야 하고 문화교육으로의 전환을 고민할 때 비로소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에 대한 이해와 큰 틀에서의 방향전환을 염두에 두고 문화예술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세가지 정도로 제시하고자 한다.

교과과정 배제한 문화교육은 무의미

현재 문화예술교육은 크게 학교문화예술교육과 사회문화예술교육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에 따르면 학교문화예술교육은 “영유아보육법 제2조의 규정에 따른 보육시설, 유아교육법 제2조의 규정에 따른 유치원과 초중등교육법 제2조의 규정에 따른 학교에서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행하여지는 문화예술교육”이다.

여기서 ‘교육과정의 일환’이라는 부분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은 교육의 목표, 내용, 교수학습방법, 평가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서 교육을 하는데 있어서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따라서 문화예술교육이, 특히 학교문화예술교육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육과정과의 유기적인 연계가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에서 학교문화예술교육을 정의하면서 ‘교육과정의 일환’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그러한 고민의 발로이리라.

그러나 지금의 학교문화예술교육은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보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현재 학교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실현경로를 거칠게 정리하자면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하나는 교과목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이고 하나는 비교과영역에서 행해지는 문화예술교육이다. 전자는 음미체 등 예체능 교과가 대표적이고 후자는 특별활동, 재량활동, 방과후 활동 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체계에서 교과목으로서의 음악․미술․체육은 이미 문화예술교육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이다. 물론 최근들어 해당 교과목 교사모임을 중심으로 대안적 방식이 고민되고 있지만 ‘제도적 한계’로 인해 원활한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현재 문광부의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주로 활용되는 경로는 후자 방식이다. 이는 문화예술교육이 교육과정으로서 기능한다기 보다는 7차 교육과정 중 접근 가능한 경로를 활용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럴 경우 교육과정이 바뀌게 되면 문화예술교육의 존립근거 자체가가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앞서 문화교육의 개념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문화교육적 관점을 바탕으로 교육과정 자체를 새롭게 편성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실제 교육과정으로 기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분법적 틀에 가두지 마라

문화예술교육은 문화 또는 예술과 별도로 구분되지 않아야 한다. 문화예술교육은 그것 자체가 문화이자 예술이어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문화예술교육 정책 추진과정을 보면 예술과는 구분되는 별도의 영역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보인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 제정 과정에서 있었던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논란은 이러한 잘못된 생각이 현실로 드러낸 대표적 경우이다.

예술은 예술로서 존재하고 그것이 교육과 유기적으로 연계되기 위한 방안이 모색되어야지 예술이 교육을 위한 수단으로 먼저 고민되어지는 순간 예술은 이미 예술이 아닐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된다. 물론 교육을 하게 될 경우 그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들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한 사람이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의 대안적 관계를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실제 문화예술교육 정책을 도입하면서 주요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던 프랑스의 문화예술교육 방식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지역사회와 직접 소통하는 통로 돼야

문화예술교육은 단순히 문화라는 것(하나의 대상)을 배우는 개념이 아니다. 문화예술교육은 나와 지역(여기서의 지역은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성, 생태 등 비물질적 요소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사이에 무엇인가를 소통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도 지역사회와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정책, 기관, 시설, 단체, 인력 등 지역사회의 모든 인프라를 문화적 관점에서 재구조화 하는 과정 자체가 문화예술교육과 직접 이어져야 한다.

특히 지역사회와의 연계는 앞서 주장한 예술과의 대안적 연계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부분이다. 이상에서 문화예술교육의 미래와 방향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했다. 지면의 한계로 각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의 교육으로는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는 사실이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표현된 암울한 미래를 원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답은 문화교육에 있다.

김종필 (문화연대 문화교육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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