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평론가 이권우는 책 읽기를 각주의 책 읽기와 이크의 책 읽기 두 가지로 나눴다. 각주의 책 읽기가 자신의 세계관을 공고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면, 이크의 책 읽기는 자신이 미처 모르거나 다르게 알고 있던 것에 생각의 전환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각주’는 논문에서 서지를 밝히거나 개념을 설명할 때 쓰는 그 ‘각주’이고, ’이크‘는 놀랐을 때 내는 감탄사 그 ’이크‘이다.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것을 가까이하고 낯선 것을 멀리하게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낯선 것을 탐구하고 익숙한 것을 경계하며 살려 노력한다. 낯선 것에 대한 탐구는 일상의 영역에서 학문의 영역까지 다양하게 모색되고 실천될 수 있다. 물론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내가 제일 크게 의지하는 방법은 책 읽기이다. 새로운 생각과 사유를 촉발하는데 그만큼 좋은 매체는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읽은 책 중에는 레베카 솔닛의 책들이 큰 놀람과 자극을 주었다. 그녀의 책을 통해서 내가 미처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던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특히 ‘젠더와 권력’이라는 심각한 주제를 유머와 통찰을 통해 흥미롭고 재치있게 탐구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후속작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책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제는 제법 알려진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의 합성어인 신조어 맨스플레인(mansplain)은 그녀가 2008년 미국의 인터넷 매체 ‘톰디스패치’에 기고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가 발표된 후에 만들어진 단어이다. 이 단어는 “남성이 여성을 기본적으로 뭔가 모르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말을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태도”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널리 쓰이는 ‘꼰대’나 ‘설명충’이라는 단어와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일방적으로 가르치려는 태도에 대한 거부와 경멸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이 단어가 “모든 남자에게 그런 타고난 결함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잘 쓰지 않는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그녀는 “실제로는 남자들 중에서도 일부가 가르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려 들고 들어야 할 말을 듣지 않으려는 것뿐이다”라고 사려 깊게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레베카 솔닛을 읽으며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그녀는 젠더와 권력의 문제를 다뤘지만, 사실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드는 문제는 젠더 관계를 포함해 다양한 상황과 맥락에서 발생할 수 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혹시 나는 가르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려 들거나 들어야 할 말을 듣지 않으려 하지 않았는지 아주 오랫동안 반성하게 되었다.

  2000년 첫 강의를 시작하면서, ‘가르치는 자의 오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배우는 자의 겸손을 잊지(또는 잃지) 않겠다’라고 다짐한 적이 있다. 20년 전의 그 다짐을 좀 더 철저하게 실천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한다. 잘 가르치기 위해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배우며 살겠다.
 

류찬열 교수

다빈치교양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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