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제도 현황과 개선과제』(2020,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피의자 4948명에 대한 검찰처분은 2561명(약 51.8%)으로 불기소 처분이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반면 국민들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의견은 꾸준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디지털 성범죄의 근본적 원인을 찾고 관련 법률의 한계를 짚었다.

  여전히 빈틈 많은 규제들

  디지털 성범죄는 현행법률상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서 처벌하고 있다. 범죄 유형은 나날이 다양해지지만 기존 법률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제도 현황과 개선과제』에 따르면 ‘통신매체 이용음란죄’와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의 법정형을 강화하고 ‘불법 촬영물 소지죄’를 신설했으나 사기, 공갈 등 다양한 범죄행위를 포괄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사건 발생 및 후속 조치에 따른 연이은 법적 변화가 법 적용 및 집행에 혼란을 주기도 한다. ‘n번방’ 사건이 그 예다. n번방 방지법에 해당하는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통신매체를 사용해 음란물이 유포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에 따라 네이버와 카카오 등 부가통신사업자와 웹하드 사업자는 이용자가 전송한 동영상 등이 정부가 음란물로 지정한 데이터베이스와 같거나 비슷한 촬영물인지 판별하는 ‘불법 촬영물 필터링’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온라인에선 검열과 실효성에 관한 논란이 일었다. 정보통신망법은 검열 우려로 사적 대화에서 전송되는 음란물을 선별할 수 없다. 이상진 교수(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정책 전환에 관해 조언했다. “국내 기업에게만 의무를 강요하는 것은 단기적인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지 못해요. 현재의 불법사이트 차단 위주 정책에서 나아가 범죄자를 추적해 검거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텔레그램과 같이 국내에 지사가 없고 본사 서버를 옮겨 다니는 플랫폼은 직접적 규제 대상이 되기 어렵고 국내 기업과 달리 협조도 힘들어 수사에 차질이 생긴다는 한계도 있다. 이상진 교수는 텔레그램 수사에 많은 애로 사항이 있다고 전했다. “텔레그램은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정부로부터 협조 요청을 거절하고 있어 범죄 데이터를 원활하게 조사하기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사관이 대화방에 직접 참여해 수집해야 하죠.”

  최근 메타버스 내 아바타를 대상으로 한 괴롭힘 등 비접촉 성범죄가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메타버스 등 가상공간 내 스토킹과 성적 가해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도 지난 6월 발의됐다. 해당 법은 가상현실의 아바타를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를 경우 최대 1년의 징역을 부과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는 헌법상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도록 법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단순히 성행위를 유추할 수 있게끔 묘사하는 것을 제한하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요. 또한 가상공간 속 성행위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명확하게 규정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젠 변화가 필요할 때

  늘어가는 디지털 성범죄와 달리 처벌은 가볍다는 비판도 있다. 김영미 변호사는 한국의 전반적인 양형 기준에 관해 설명했다. “한국은 다른 범죄 역시 형량 자체가 전반적으로 낮습니다. 그렇기에 강간 등 흉악성이 높은 강력범죄의 처벌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지금의 처벌 수위를 비교해봤을 땐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국민 정서와 타 선진국을 고려하면 객관적으로 낮은 것은 맞죠.” 이어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이 다소 미약한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아동 성착취물을 ‘다크웹’을 통해 유포한 ‘웰컴투 비디오’ 사건의 손정우가 퍼뜨린 영상은 전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임에도 1심에서 징역 2년인 낮은 처벌을 받았어요. 한국은 성착취물의 경우 일반 성범죄보다는 약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수사 방식과 과정에서의 한계 또한 존재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성착취물에 대한 수요를 차단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경찰 수사의 일차적 목표는 범인을 잡는 것입니다. 수요자를 억제하는 것이 경찰의 목표는 아니에요. 하지만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성착취물 소지와 시청도 5년 이상의 중형으로 처벌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진 교수는 수사를 위해 다양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은 익명으로 활동할 수 있는 보안 기술이 보급돼 있습니다. 보안 기술을 극복하고 범죄자를 찾기 위해서 해킹과 같은 추가적인 수단이 필요하지만, 현행법은 이를 허용하고 있지 않아 사이버 범죄자를 추적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요.”

  사회는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행동함으로써 바꿀 수 있는 만큼 법제의 변화와 더불어 사회적 인식과 교육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승혜 탁틴내일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상담원은 교육을 실천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전했다. “한 번의 예방 교육을 통해 개인의 인식을 개선시키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교육을 듣고 실천하려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숨기지 않는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의 성교육은 많은 부모가 아이를 무조건 보호해 현실과 동떨어진 면이 있습니다.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성교육을 진행해야 해요.” 이상진 교수는 성착취물의 완전한 삭제가 어려운 디지털 공간의 특성을 교육해야 한다고 밝혔다. “디지털 성범죄는 디지털 공간에서 활동한 일탈이 현실에 알려지는 게 두려워 피해자가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피해가 영원히 남을 수 있음을 사람들에게 교육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률이 제·개정되지만, 여전히 선제적인 대응이 부족한 상황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발전하는 범죄 수단을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빠르게 발맞춰 보완하고 수사기관은 수요자 차단과 수사 기법의 다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의식도 변화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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