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일어나는 여러 사회적 사건은 이를 둘러싼 쟁점을 논의함으로써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습니다. 사회와 경제, 범죄 등 다양한 현안의 이슈에서 법과 제도의 한계를 분석하고자 합니다. 디지털 성범죄는 오랫동안 피해자에게 잊을 수 없는 심각한 상처와 피해를 야기하는데요.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는 어떠한 쟁점들이 숨겨져 있을까요? 사건을 분석하고 법의 사각지대를 피해양상과 제도 등 다양한 관점으로 논의해봤습니다. 이정서 기자 seo@cauon.net

일러스트 @hammer_good_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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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울 수 없는 상처의 연속
이름 모를 공간에서 오는 두려움 

익명성으로 죄책감 흐려져
친밀한 관계에도 피해 발생해

디지털 성범죄는 카메라 등을 이용해 상대방의 동의 없이 신체를 촬영해 유포·협박하거나 저장 및 전시하는 행위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자행하는 성적 괴롭힘을 의미한다. 일반 성범죄와 달리 퍼져나가는 속도와 영향력이 매우 크고 양상 또한 다양하다.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분석하고 지워지지 않는 공간 속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피해를 생산하는 구조
  2020년 3월 16일 ‘박사방’ 운영자인 조주빈이 경찰에 체포된 데 이어 2020년 5월 9일 ‘n번방’을 처음 개설한 문형욱(닉네임 갓갓)이 긴급 체포됐다. n번방 사건은 2018년 하반기부터 수십여 명의 여성을 협박·유인해 성착취 영상물을 찍게 하고 이를 텔레그램으로 판매·공유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다. 2020년 공식적으로 알려진 피해 여성은 74여 명이고 이 중 16여 명이 미성년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약 2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추가 피해자가 나타나고 있다. 

  1번부터 8번까지 각각 다른 이름이 붙여진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서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성착취 영상을 올리는 것은 물론 이들의 신상정보까지 모두 공개해 자신들에게 복종하도록 고통을 줬다. 해당 사건에서의 문제점은 빠른 인터넷 전파 속도와 파급력으로 피해자들에게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n번방 사건은 기존 디지털 성범죄와 달리 온라인 공간에서의 범죄가 현실화됐다는 특징이 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온·오프라인이 결합해 범죄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그간 디지털 성범죄는 주로 온라인 공간을 매개로 나타났어요. 하지만 n번방 사건의 경우 온라인 공간을 매개로 하되 실제 현실에서의 성범죄와 결합해 범죄를 행했다는 점에서 기존 범죄와 차별성이 있죠.” 

  대규모의 체계를 갖춰 범죄가 일어난 것 또한 기존과 달랐다. 기존 디지털 성범죄는 소규모로 발생했지만 n번방 사건 이후 조직적으로 불법 영상물이 유포 및 판매되는 등의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안지성 법무법인 법승 변호사는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정의가 확립됐다고 전했다. “디지털 성범죄라는 말 자체가 n번방 사건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엔 불법 촬영물을 주변인과 보는 등의 단발적이고 소규모 범죄를 행했다면 n번방 사건은 상당히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이뤄졌죠. 음란물에 대한 범죄 단체가 구성되고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어요.” 곽효승 곽효승법률사무소 변호사는 n번방 사건 피해의 심각성에 관해 설명했다. “피해자의 인격과 존엄을 완전히 파괴한 극악한 범행이었습니다. n번방 사건은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범행이 이뤄졌어요. 범행은 내용이나 수법이 저열하며 인간의 극악함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늘어나는 피해, 범죄 연령은 낮아져
  수많은 피해자를 낳은 n번방 사건의 가해자들은 주로 20대 청년이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청년 가해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심리를 언급했다. “비경제적이면서 가학적인 범죄자 혹은 범죄에 참여하는 집단을 ‘링’ 집단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에는 특별한 감정이 없어요. 경제적이거나 성적이지 않음에도 성적 가학성을 표현하고 그루밍을 즐기는 거죠.”  

  n번방 사건을 포함한 디지털 성범죄는 온라인 공간을 매개로 이뤄진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익명성은 가해자들이 저지른 범죄의 심각성을 흐리기도 했다. 이승혜 탁틴내일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상담원은 죄책감을 느끼기 어려운 구조를 전했다. “온라인 공간의 익명성에 가려져 범죄를 행하는 건 가해자들이 죄의식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범죄 도구가 간접적일수록 범죄를 행하는 자신이 느끼는 죄책감이 덜하죠.” 

  사실 디지털 성범죄는 n번방 사건만이 아니다. 과거 2000년대 초부터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각종 불법 음란물이 유포됐고 수사망을 피해 오랜 기간 운영해온 불법 음란 사이트 ‘소라넷’ 사건 등이 전 국민적 공분을 샀다. 

  최근에도 ‘제2의 n번방’ 사건이라 불리는 ‘엘’ 사건 등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해당 사건들이 과거 n번방 사건과 유사한 범죄 수법을 띤다고 설명했다. 다수 피해자의 성착취 영상을 찍어 유포한 엘 사건은 n번방과 박사방 등 과거 사건과 유사하면서도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방식 및 텔레그램을 운영하는 방법 등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안지성 변호사는 피해 대상이 확대되는 가운데 유사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고 시사했다. “최근 디지털 성범죄 사건 대부분은 유포 및 촬영 방식 등이 비슷합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등을 통해 피해자들을 물색하는 방법도 유사해요. 특별히 다른 건 최근엔 성인 대상으로도 범죄가 발생하며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해서 추가 영상을 받아내거나 금전을 요구하기도 하죠.” 

  피해 대상이 확대되는 것뿐만 아니라 범죄 유형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의 개념·유형·실태 및 개선방안』(2020, 성균관대학교 법학연구소)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는 온라인 또는 온·오프라인을 연계한 범죄로 나뉜다. 온라인에서의 디지털 성범죄는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물 이용 협박과 성폭력 ▲딥페이크 등 사진합성 ▲성적 괴롭힘 ▲디지털 그루밍 등으로 구분된다. 온·오프라인을 연계한 범죄의 경우, 디지털 성범죄 특성상 이미지를 이용한 유포·협박 행위에 초점을 맞췄다. 세부적으론 성적 강요나 금전 요구, 괴롭힘 등으로 분류해 유포·협박으로 달성하는 범죄행위를 인식하고 있다. 

  안지성 변호사는 디지털 성범죄가 다양한 형태로 일어난다고 전했다. “청년들 사이에서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가 특히 많이 일어납니다. 성관계를 하면서 몰래 영상을 찍거나 헤어진 전 연인에게 당시 찍었던 영상으로 협박하기도 하죠. 음란물에 지인 얼굴을 합성해 유포하는 사건 등 다양합니다.” 이승혜 상담원은 기술 발전과 사회문화적 구조가 범죄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디지털 기기와 기술 발전이 계속되고 있어요. 폭력을 만드는 사회문화구조들이 결합하면서 텔레그램 성착취 등의 범죄로 발전하고 있죠.” 

  아물지 않은 상처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는 만연해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 2018년부터 2021년 사이 접수된 디지털 성범죄 피해 발생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는 2020년 대비 3370건 늘었지만 여전히 드러나지 않는 범죄 피해도 있다. 

  게임과 채팅앱, SNS 등 온라인 공간이 가진 익명성을 이용해 성적 괴롭힘의 대상으로 만들거나 불법 촬영물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하며 지속해서 스토킹하는 사례 등이 존재했다. 자신의 얼굴에 나체의 몸이 합성된 사진으로 익명의 다수에게 성적 괴롭힘을 당하거나 과거 채팅 앱에서 만난 사람이 가족에게 성관계 사진을 보내겠다고 협박한 사례도 있었다. 

  디지털 성범죄는 불특정 다수나 제삼자에 의한 범죄 피해뿐만 아니라 친구와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도 이러한 범죄가 나타났다. 서울디지털성범죄 안심지원센터는 애인, 채팅 상대, 지인, 배우자 순으로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범죄가 약 70%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영상을 불법 촬영해 유포 사례와 대학생 때 만난 후 3년 뒤 연락해 사진을 유포·협박하며 스토킹한 사례, 쇼핑몰 아르바이트 불법 촬영 사진을 유포한 사례 등 다양한 피해가 나타났다. 

  이승혜 상담원은 내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피해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의도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 범죄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피해자가 이를 쉽게 인식하기 힘든 구조죠. 

  n번방 사건 등 온라인 공간을 매개로 이뤄지는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불법 이미지 및 영상물 등이 무한대로 유포·합성·소비된다.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 특성에 따라 피해자들은 지속적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상진 교수(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는 온라인상의 범죄 피해가 피해자에게 오랜 기간 고통을 준다고 말했다. “인터넷상에 데이터가 기록되면 불특정 다수가 열람하고 재생산됩니다. 한번 유포되면 순식간에 퍼지기에 삭제가 거의 불가능하고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죠.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망각하기 쉬운 현실 공간의 범죄 피해와 달리 피해자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줘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은 온라인상에서 삭제한 영상이 재유포되는 등 피해가 재확산돼 정신적으로 2차 피해를 겪기도 했다. 곽효승 변호사는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피해자가 겪는 심리적 고통에 관해 전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각종 메신저를 통해 가해자 및 범행과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로지 피해자의 진술에만 의존해 수사와 재판을 진행하기도 하죠. 이런 경우엔 피해자가 잊고 싶은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진술해야만 하는 부담과 고통을 겪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던 n번방 사건이 알려진 지 약 2년이 지났다. 그러나 포털 사이트에 해당 검색어를 입력하면 여전히 ‘n번째 n번방’ 사건이 나타나고 있다. 온·오프라인 상에서 벌어지는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상 알 수 없는 공간에 떠도는 불법 영상 등으로 피해자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품고 살아가야 한다. 나날이 늘어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복합적으로 그들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곧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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