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의 꽃말은 개강,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고 했던가. 움트는 개나리 꽃망울처럼 개강이 왔고, 연이어 봄이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위수여식으로 붐비던 캠퍼스가 어느새 새 학기를 맞이한 학생들로 북적인다. 새내기 새로배움터, 개강총회 등 반가운 만남의 시간을 추억하거나 기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캠퍼스의 인파를 뚫고 나날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분주한 학생들을 보며 새삼스레 마음이 들뜨는 요즘이다.  

  개강을 앞두고 명랑한 첫 만남을 준비했다. 강의를 통해 만난 인연이니 나와 마주한 학생들의 마음이 반가우면 얼마나 반가우랴 싶기도 하지만 첫 만남은 매번 설레기 마련이니까. 더 반갑게, 덜 침착하게, 조금은 거창하게 학생들을 맞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어서, 반가운 마음만큼 그들을 충분히 반겨주지 못한 듯하다. 학생들을 만나면 하려고 했던 말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강의실 안팎에서 새롭게 누군가와 마주하게 될 학생들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설렘만큼 느껴질 긴장감. 요즘 말로 ‘뚝딱거린’ 나에 대한 자괴감. 그 순간에 좀 다르게 말하거나 행동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소소한 후회. 이 이야기는 할걸, 혹은 하지 말 걸 하는 아쉬움. 충분치 못했던 순간은 두고두고 잔상을 남긴다. 그러나 떠올려 보면 아쉬운 첫 만남은 얼마나 무수한가.  

  우리의 처음은 종종 어색하고 때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어리숙하다. 그리고 부정확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확한 걸음을 걷는 이가 있을까? 능숙함의 이면에 감춰진 숱한 좌절과 실패의 시간을 사람들은 종종 잊는다. 지나친 망각은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하거나 불안하게 한다. 이미 오른 나의 길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든다. 그 의심이 나를 갉아먹고 다치게 할 때까지 말이다. 

  그러나 봄기운이 완연한 지금은 가벼운 산책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절. 가볍게 한 걸음만 내딛고 나면 더 많은 걸음을, 더 오래 걸을 수 있게 된다. 나에게도 그 사실을 몰라서 방황했던 시기가 있었다. 첫걸음이 정확하지 않았다고 자신을 자책하며 흘려보낸 시간이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말씀해 주시는 대학 시절 은사들이 계셔서 좀 더 오래 걸어 보고 싶고 버텨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좀 흔들려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의 자리에 선 우리 학생들에게도 괜찮다는 그 말을 전하고 싶었다. 비틀거릴지언정 스스로 걸어가는 여러분의 걸음걸음 모두 괜찮다고, 꽃보다 아름다운 여러분의 시간을 마음껏 누리시라고. 거창한 시작이 아니어도 좋다. 그 거창함에 짓눌리면 금세 지칠 수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한 걸음만 떼고 나면 우리는 더 오래,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다. 첫 만남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해도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조금은 더 다정할 수 있기를.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당신의 봄이 따뜻하기를. 

황선희 교수
인문콘텐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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