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이라는 판타지로 인생이라는 현실을 읊조릴 수 있을까. 움직이는 성을 타고 세상을 떠도는 마법사와 그를 사랑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에 눈을 열고, 그들의 서사 속 흐르는 선율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리 방만한 가설로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의 역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함께 인생이라는 회전목마 앞에서 생의 의미를 돌아봤다. 

  두 거장의 세상이 만날 때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세상과 눈을 감으면 비로소 또렷하게 보이는 세상. 각각의 세계를 그려내는 두 거장이 만났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현대 클래식 음악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의 세상은 1983년 운명적인 교류를 시작했다. 당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제작하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영화의 음악 감독을 찾고 있었다. 그를 사로잡은 유일한 선율은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었다. 당시 무명에 가깝던 히사이시 조였으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시작으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됐다. 히사이시 조는 영화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었고 그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이웃집 토토로>·<붉은 돼지>·<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까지 선율로 다시 한번 기억되는 영화의 세상은 세계인의 마음을 파고들 만큼 충분히 아름다웠다. 

  정병욱 대중음악평론가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만나 뛰어난 조화를 이뤄낸 것은 작품 내에서 두 예술가 모두 중요시하는 ‘뚜렷함’이 공통 분모로 자리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작품마다 명확한 세계관과 주인공의 성장 스토리텔링과 감정선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이는 뚜렷한 멜로디 흐름과 캐릭터 및 장면에 따른 적절한 변주를 추구하는 히사이시 조의 스타일과도 잘 맞아떨어지는데요. 또한 히사이시 조의 작·편곡은 전통과 현대의 어법 모두를 차용해 민속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에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고유한 분위기를 탁월하게 전달합니다.” 임동국 서울페스타필하모닉오케스트라 지휘자는 히사이시 조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공유하고 있는 감정의 일치점에 주목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상처와 치유의 메시지를 영화에 녹여냅니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밝은 음악에서조차도 ‘멜랑꼴리’의 정서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인간 본연의 감정을 자극하는데요. 이처럼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법은 우리의 마음 어딘가 잠재된 우울을 그리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과 만나 시너지를 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랑이라는 무한한 연쇄 

  두 거장이 부린 마법은 거대한 성을 움직였다. 애니메이션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하고자 했던 사랑과 평화의 가치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할머니가 되는 저주를 받은 소녀 ‘소피’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청소부로 들어가며 시작된다. 소피는 자신을 폭삭 늙게 만든 저주를 풀기 위한 목적으로 하울을 찾은 것이었으나 점차 둘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성 밖에서의 전쟁이 절정에 이르자 겁쟁이였던 하울은 소피를 위해 전쟁터에 뛰어든다. 소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울을 구하려 노력한다. 한편 캘시퍼의 마력과 자신의 심장을 거래하는 계약을 맺었던 하울은 그로 인해 마법을 얻었지만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순 없는 몸이었다. 소피는 하울의 과거로 들어가 거래 장면을 목격함으로써 하울에게 걸린 저주를 알아낸다. 현실로 돌아간 소피는 전쟁의 부상으로 죽어가는 하울에게 캘시퍼를 넣어줌으로써 그를 살려낸다. 이윽고 전쟁은 마무리되고 사랑을 확인하며 소피와 하울에 걸린 모든 저주는 사라진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는 소피와 하울의 서사가 내포한 사랑의 미학을 설명했다. “소피와 하울의 사랑은 니체의 ‘이중 긍정’ 개념을 도입해 그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는데요. 사랑의 측면에서 이중 긍정은 세속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그저 ‘상대를 사랑하는 것’ 자체를 사랑한다는 말로 치환이 가능하죠. 어릴 적 하울을 만나러 과거로 향하는 소피와 순수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하울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의 사랑을 선택함으로써 그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자신을 그 무한한 연쇄 속에 집어넣는 것이죠.”  

  이어 정지우 문화평론가는 작품의 결말이 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찾아야 하는 생의 본질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하울과 소피는 돌고 도는 시간에 갇혀 있습니다. 하울이 소피를 찾고, 소피가 하울을 찾는 과정의 무한한 순환이 서사에 녹아 들어있는데요. 전쟁 이후 자신의 불안정한 내면과 세상에 맞서는 법을 배운 하울이 사랑하는 소피를 책임지며 자유를 얻고 소피 역시 그런 하울과 함께 새로운 삶을 꾸려갑니다. 영화는 인생이란 회전목마 속에서 그들이 진정한 삶을 마주하고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죠.” 

사진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사진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인생이라는 회전목마 속에서 

  우리는 삶이라는 무한한 회전목마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한 생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의 삶을 찾아나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오기 마련이다. 그 순간을 마주하기 전 당신의 과정은 어떠한 모습인가. 미야자키 하야오는 생의 본질을 소피와 하울의 이야기를 빌려 그려냈고 히사이시 조는 이를 선율로 형상화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제곡 <인생의 회전목마>는 영화의 음악을 철저히 하나의 주제음악으로 가져가고 싶다는 과감한 도전 아래 탄생한 음악이다. 영화에 삽입된 음악 33곡 중 무려 18곡이 해당 곡의 변주로 이뤄져 있다. 그만큼 <인생의 회전목마>라는 음악에는 한 가락의 선율마다 소피와 하울이 겪는 이야기가 섬세하게 녹아 들어있다.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슬픔의 정서는 늙어버린 모습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소피와 황야를 떠돌며 일평생 외로운 삶을 살았던 하울의 감정과도 유사하다. 임동국 지휘자는 <인생의 회전목마>에는 소피와 하울의 생에 자리한 비애가 음악적으로 형상화돼 있다고 밝혔다. “선율은 상행했다가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내려옵니다. 힘껏 올라가 보려 하나 그 힘은 크지 않죠. 곡은 춤추는 왈츠 리듬과 그에 대조되는 구슬픈 선율이 단조로 이어집니다. 이는 마치 상승하려는 의지가 좌절되고 슬픔이 맺혀있는 ‘한’의 정서를 연상하게 하죠” 

  그러나 상처와 고독의 종말에는 치유가 자리하듯 <인생의 회전목마>의 감정선 역시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 변화한다. 단조의 구슬픈 선율은 사랑과 평화로 물든 결말에 이르러선 장조의 으뜸화음으로 마무리된다. 정병욱 대중음악평론가는 삶을 향한 영화의 메시지가 선율에 녹아든 방식을 전했다. “결말에 흐르는 <인생의 회전목마>는 경쾌한 왈츠 리듬을 강조합니다. 동시에 작품 곳곳에서 여러 번 변주되던 테마곡을 오케스트라로 편성해 웅장한 사운드로 집대성하는데요. 이는 어두운 고난을 품은 회전목마 같은 생애 속에서도 밝은 희망과 평화가 우릴 기다리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죠.” 

  그리 달갑지 않은 말이지만 인생은 우리의 이상만큼이나 달콤하진 않다. 때론 우리의 생은 고독과 회한의 무한한 연쇄 속에서 흘러가는 것처럼 버거울지도 모른다. 저주에 휩싸였던 소피와 하울의 삶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이란 회전목마에서도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결국 인생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임을 느낄 수 있다. 굴레에 갇혀 있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소피와 하울의 선율에 마음을 적셔보라. 그리고 말머리를 돌려 또 다른 목마와 마주한 채 사랑의 회전에 몸을 맡기는 삶을 떠올려보라. 그곳이라면 영영 빠져나오지 못한다 한들 두려울 것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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