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線)을 넘어 선(善)을 향해

통일은 과연 한국에 이득일까, 손해일까. 이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통일비용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통일비용은 통일 이후 남북한이 통합된 국가로서 정상 운영되기 위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의미한다. 독일 연방건설교통부의 분석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1991년부터 2003년간 1조 2800억 유로에 달하는 통일비용을 지출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느 정도 규모의 통일비용을 지출해야 할까.  

  통일편익에 시선을 맞추면
  한국의 실정에 맞게 통일비용을 추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국내외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통일비용은 최소 수십조 원에서 최대 수천조 원까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결과의 편차가 큰 이유는 연구마다 한반도 통일의 시기·방법·비용을 산정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춘흥 교수(한양대 평화연구소)는 “통일이 언제, 어떠한 방식을 통해 이뤄질지는 예측할 수 없다”며 “그 과정에서 상당한 유·무형적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비용은 그 범위를 어디까지로 정의할 것이냐에 따라 이견이 존재한다. 혹자는 통일 추진에 필요한 직접비용만을 따지고, 누군가는 통일 이후 남북한 지역의 경제 격차 해소에 사용되는 비용 전체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비용에 치중된 논의는 사회적으로 통일에 대한 부담을 가중해 통일 회의론이 대두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이에 통일에 대한 균형 잡힌 인식을 함양하고자 통일편익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통일편익은 통일을 이룸으로써 남북한이 얻게 되는 경제적·비경제적인 모든 형태의 이익을 일컫는다.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가 2009년 발표한 보고서 「통일한국: 북한 리스크에 대한 재평가」에 따르면 남북이 통일될 시 30~40년 내에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프랑스와 독일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전망이 정확히 현실화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남북통일이 상당한 규모의 편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점은 짐작 가능하다. 임을출 교수(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2014년 당시 통일준비위원회는 2050년 통일된 남북한의 1인당 GDP는 7만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한 바가 있다”며 “이는 전 세계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2위에 달하는 수치”라고 주장했다. 

  계산기 내의 통일편익에는 
  통일의 첫 번째 편익으로는 국방 부담 완화가 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국방비는 55조 원가량으로 전체 GDP의 약 2.64%, 전체 국가 예산의 13% 정도를 차지한다. 독일의 경우 통일 전 전체 GDP의 2.5%가량 지출하던 국방비를 통일 후 1.5% 수준으로 낮췄다. 이러한 추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한다면 22조 원가량의 국방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황진태 교수(동국대 북한학과)는 “한국의 국방비 지출 순위는 전 세계 10위에 해당한다”며 “이것의 절반이라도 다른 사회 영역에 투입된다면 국민이 경험할 삶의 수준은 바뀔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금융시장에서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다. 현재 한국 증시는 상장기업의 가치가 실제보다 낮게 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겪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지정학적 요인이 크다. 이는 해외 기업으로 하여금 한국에 투자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최은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자금을 조달하는 데 있어 더 높은 이자를 보장해야 하는 등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통일이 이뤄진다면 군사적 충돌 위험성이 해소됨에 따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 증가에 따른 편익도 제시된다. 현재 한국은 심각한 저출생·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주요 성장 동력인 인적 자원이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따라서 2600만 명에 달하는 북한 인구의 편입은 인적 자원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내수시장 확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임을출 교수는 “7500만 명에 달하는 내수시장이 조성된다면 한국의 경제 위상이 제고되는 한편 정치·사회·문화적 측면에서의 국력 또한 신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토 확장의 편익도 중요한 요소다. 통일된 한반도는 중국 및 러시아를 위시한 대륙으로의 육로 진출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물류 유통 비용을 절감해 한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제고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황진태 교수는 “그동안 섬과 같았던 한국의 상황에서 육로 개척의 효과는 여러 부문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영토 확장을 통해 북한에 매장된 풍부한 지하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임을출 교수는 “북한의 유망 광물자원을 한국 내수로 조달한다면 연간 약 154억 달러 수준의 수입 대체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언급했다.  

  크기보다는 가치로 
  최근 북한은 현저한 출산율 감소를 겪으며 인구 구조의 고령화를 맞닥뜨렸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고령화에 대비할 복지 체계가 전무한 상태다. 또한 평양에 집중된 경제발전으로 인해 지역 불균형이 심화했다. 남북한 모두가 직면한 인구 감소와 지역 불균형이라는 위기를 헤쳐갈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통일편익을 경제적으로만 계량화하는 기존의 도식에도 변화가 요구된다. 황진태 교수는 “북한의 저렴한 임금을 강점으로 꼽는 기존의 경제 중심적인 사고에는 한계가 존재한다”며 “한국의 청년 세대가 공정의 가치를 옹호하듯 북한 청년 세대의 가치관 또한 변화하는 실정”이라고 언급했다. 북한 사회 변화에 따라 새로운 사회 통합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계산기’를 벗어난 통일편익에 대한 논의가 대두되는 시점이다. 통일은 한반도에 만연한 전쟁의 위험과 분단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을 해소한다. 이 과정에서 수반되는 의무 병역 완화는 청년 세대가 의무 병역으로 인해 부담하는 기회비용을 보다 생산적인 영역에 투입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평화의 항구적 정착이 제공하는 무형의 편익은 실로 지대하다. 모춘흥 교수는 “체제 간 갈등으로 인한 고통은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라며 “이산가족이나 탈북민 같이 분단으로 인해 발생한 이산의 아픔을 해소할 방안은 통일 뿐이다”고 밝혔다. 


  생태적 측면에서도 한반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남북비무장지대(DMZ)의 경우 전후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생태 요소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에 DMZ를 통해 다크투어리즘(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곳을 돌며 교훈을 얻는 여행)과 같은 관광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또한 남북이 DMZ와 같은 생태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한다면 전 세계가 직면한 환경 문제에 협력해 대응할 수 있다. 최은주 위원은 “DMZ를 잘 보존한다면 관광자원의 역할에 더불어 남북 간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지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평화는 장차 한반도에서 살아갈 미래 세대에게 안전을 제공한다. 그 과정에서 높아질 삶의 질은 돈으로 구매할 수 없다. 이처럼 숫자로 계량할 수 없는 통일의 사회적 가치는 다양하다. 따라서 그 가치를 연구하고 논의할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통일의 경제적 이익을 정확하게 추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산기 상에 표시할 수 없는 가치를 향한 관심이 뒷받침돼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계산기 바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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