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아이를 달랠 때면 진땀이 나곤 한다. 울음의 이유를 알아내야 하지만 대화로는 해결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아이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거짓울음도 서슴지 않아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분류를 해보자면 이 정도일까. 말을 하지 못해 우는 아이와 말을 할 수 있지만 울음을 선택한 아이.  

  후자는 입을 닫은 채 정부와 힘겨루기 중인 의사들을 두고 한 말이다. 2월 6일 보건복지부가 2025년부터 2000명 규모의 의대 입학정원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의사 단체는 ‘울음을 선택’했다. 2월 26일 기준 8939명에 달하는 전공의들이 파업에 나섰을 뿐 아니라 전국 의과대학 학생과 의학전문대학원생들 또한 집단휴학을 강행하고 있다.  

  사실 의료계의 이 같은 파업은 그 역사가 아득하다. 2000년 국민의 정부가 의약분업 정책을 추진할 당시 의료계는 병원 휴업을 불사했고,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지방 공공의대 설립과 함께 의대 입학정원 확대를 시도하자 의사들은 대한의사협회를 주축으로 다시 한번 파업을 주도했다.  

  정부를 설득하거나 중재안을 제시하려는 시도보다는 일단 버티기만 하면 의료계의 권한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의사들의 생각은 늘 파업으로 이어졌고, 국민은 더 이상 의사 단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재 의사들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원인이자 국민이 정부의 의대 증원 결정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당시 의대 증원을 둘러싼 여론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정부는 의료 행위를 하다 환자에게 상해가 발생해도 환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안' 초안을 제시하고 필수 의료 분야 전공의들의 보험료까지 보장하겠다며 의사들을 달래고 있지만 갈등이 좁혀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유례없는 특혜임에도 이조차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은 의사협회의 힘자랑이 국민이 아닌 자신의 집단만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혹자는 이익집단인 대한의사협회가 의료계를 보호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어서, 이에 대해 비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 또한 ‘파업’하지 않냐고 말이다. 애석하게도 이 섬세하지 못한 발언은 우는 아이들의 종류를 분류하는 데 실패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의사와 노동자, 각 집단의 파업이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영향이 다르다는 것도 지적할 수 있겠으나, 이 점을 차치하더라도 짚어야 할 문제가 분명 존재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아 울 수밖에 없는 아이’는 ‘울음을 선택해 버린 아이’와 울음의 인식론적 지위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만 울기를 바란다. 답답하면 울기보다 대화하라. 인질로 쥐고 있는 국민의 생명부터 내려놓고 말이다. 사실 이미 많은 것을 쥐고 있지 않은가.

 

 

 

 



박주형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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