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길었던 여정

부지 용도 돌고 돌아 원상복구 
“문화·한강수변공원 조성할 것” 
 
공공임대주택 필요성은 분명해 
“주거문제는 다른 접근 필요”

흑석빗물펌프장 이전부지 사용 용도에 관한 16년간의 긴 논의가 마침내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 8일 102관(약학대학 및 R&D센터) UC클럽(유니버시티 클럽)에서 개최된 ‘동행, 매력도시 서울’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은 흑석빗물펌프장 이전부지에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려던 직전 계획을 바꿔 문화공원·한강수변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16년 논의의 종착지는 문화공원 
  1967년 건립된 흑석빗물펌프장은 2001년 6월 안전진단 및 성능개선 타당성 조사에서 D등급으로 지정된 바 있다. D등급은 주요 부재의 노후화 정도가 심각해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며 건물 붕괴가 우려되는 경우다. 이에 흑석빗물펌프장은 긴급 보강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사용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2008년 9월 11일, 흑석2구역이 재정비 촉진 지구로 변경 지정되며 흑석빗물펌프장 이전 계획이 세워졌다. 이와 함께 기존 흑석빗물펌프장 부지에는 문화공원을 새로이 설립하겠다는 구상도 덧붙었다. 이어 2019년 ‘흑석1재정비 촉진구역 촉진계획 변경결정(안)’에 흑석빗물펌프장 이전부지가 흑석1구역에서 제외되며 해당 부지는 존치관리구역으로 전환됐다.  

  2020년 2월 27일 도시공간개선단은 「2020년 주요업무보고」에서 흑석나루 혁신거점 조성 사업을 발표하며 흑석빗물펌프장 이전부지에 공공임대주택을 설립하는 계획을 선보였다. 그러나 흑석빗물펌프장 이전부지에 공공임대주택이 건설된다는 소식에 지역 주민은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진식 흑석2구역 주민대표회의 위원장은 “공공임대주택 건설 반대 집회를 수년간 진행했다”며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탄원서와 요청문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대립이 장기화되던 와중 8일 동작내일포럼이 개최한 강연에서 흑석빗물펌프장 이전부지의 용도가 다시 한번 언급됐다. 오세훈 시장은 흑석동의 오랜 숙원사업에 관해 ‘공원을 조성하겠다’고 힘을 실었다. 배웅규 교수(도시시스템공학전공)는 “흑석빗물펌프장을 한강 인근 지하로 이전할 계획”이라며 “지상에는 한강수변공원이, 기존 흑석빗물펌프장 부지에는 문화공원이 조성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원 건립의 소망 끝끝내 이뤄져 
  공공임대주택 건립 계획이 무산된 배경에는 주택 공급이 이미 충분하다는 시각이 존재했다. 흑석동은 현재 흑석뉴타운 재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흑석동 재개발구역에 예정된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은 6월 기준 흑석동 전체 세대 수 대비 약 27%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10조 및 「동법 시행령」 제1조의2에 따른 기준(20%)을 크게 웃돈다. 변종득 동작구의원(국민의힘)은 ‘제328회서울특별시동작구의회 본회의’에서 “공공임대주택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흑석동은 이미 충분한 공급량을 가지고 있다”며 공공임대주택 건립에 반대를 표했다. 

  주택 건립 반대와 더불어 흑석빗물펌프장 이전부지가 주민의 생활 편의성을 위해 유휴공간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돼 왔다. 서원석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과)는 “흑석동은 저층고밀 지역으로 유휴공간이 적다”며 “거의 유일하게 공원으로 활용 가능한 공간인 흑석빗물펌프장 이전부지에 고밀개발이 진행된다면 환경 접근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흑석 주민들은 공원 조성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A씨(60)는 “역 인근에 내리면 병원이 있어 평소 삭막한 느낌을 받았다”며 “역 입구에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 좋을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진식 위원장은 “흑석역 일대처럼 역세권에 한강이 매우 인접한 경우는 드물다”며 “공원 조성을 통해 흑석동이 수상 교통망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새롭게 조성될 공원이 일반 대중교통과 수상 교통 간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동작구는 주택건립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불만과 공원 조성에 대한 기대감 모두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아라 동작구청 핵심사업총괄팀 주무관은 “공공임대주택 건립에 반대하는 주민 의견을 반영하여 서울시에 공공임대주택 건립 사업 철회를 수차례 요청했다”며 “서울시는 해당 민원 사항을 접수해 사업계획 변경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공임대주택은 없어도 되나 
  그러나 공익의 측면에서 해당 논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서원석 교수는 논의가 지체된 이유에 관해 “주민은 문화공원 조성을 기대하는 반면 공공은 부족한 주택공급을 위한 복합개발계획을 우선시함으로 인해 논의가 지속됐다”고 전했다. 이어 “공공임대주택은 비싼 토지가격과 가용토지 부족으로 공급이 적다”며 “흑석동은 교통 편의성이 높고 대학이 있어 상대적으로 수요가 높은 지역”이라고 덧붙였다. 

  주민들 또한 청년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전성호씨(59)는 “공공임대주택 건립은 주거 문제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동철씨(55)도 “청년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의 취지에 충분히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나경원 국민의힘 동작을당원협의회 위원장은 “현재 청년들에게 공공임대주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흑석빗물펌프장 이전부지가 아닌 다른 부지에 공공임대주택 건립을 검토하는 방향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청년 주거 환경 개선 및 주거 부담 완화를 위해 여러 측면의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해결책의 논의 방향에 관해 서원석 교수는 “취약계층을 위해 가용토지를 전용하는 것이 주민 생활 편의성보다 중요한지 검토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지역 주민 모두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합의와 양보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배웅규 교수는 “공공과 사익이 상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적절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지자체와 주민 간의 원활한 타협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