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정 보호원칙 보완 필요
학대자에 지배받는 심리
코로나19로 사각지대 커져
양육자에 대한 교육 중요

정서적으로 불안한 성장
심리적 악순환 반복돼
가족주의 인식에 대한 제고
사회적 연대 필요하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따르면 아동학대를 경험한 만 0세~18세 아동 2명 중 1명이 한 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학대는 아동의 생활을 통제할 수 있는 부모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에 피해 아동이 도움을 요청하기 힘들다. 가장 가까워야 할 부모가 가장 두려운 존재로 변하며 남긴 상처는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학대의 재생산

  2020년 10월 일어난 ‘양천구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정인이 사건)이 일어났다. 가해자는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 복부를 강하게 내리쳐 살해했다. 사인은 췌장 절단 및 장간막 파열로 인한 복부 손상이었다. 이는 가해자와 비슷한 체격의 여성이 소파에서 뛰어내려 아이의 복부를 타격해야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충격을 자아냈다.

  2013년 10월에도 유사한 범죄가 있었다. 8세 아동이 욕조에서 익사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당시 쓰러진 아이를 본 구조대원들은 시신의 상태를 보고 경찰을 불렀다. 수사 결과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계모에게 폭행당한 아이는 갈비뼈 24개 중 16개가 부러진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가해자는 아이의 몸에 든 멍을 빼기 위해 따뜻한 물에 아이를 담그는 치밀함을 보였으며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호흡곤란과 피하 출혈로 숨졌다.

  정인이 사건을 포함한 많은 아동학대 사건들은 아동학대 의심 신고 후속 조치가 미흡했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 아동학대 통계 현황’에 따르면 전체 사례 중 약 14.5%만이 피해 아동을 가정으로부터 분리 보호했으며 재학대 비율 역시 전체 대비 약 14.7%를 차지했다. 이는 실질적으로 피해 아동과 가해자 간 분리 보호와 더불어 가정 복귀 후 아동보호도 미흡한 것을 보여준다. 허용 법무법인 인 변호사는 한국 아동보호의 현실을 시사했다. “「아동복지법」에서는 가능한 피해 아동을 원가정에서 보호하는 것을 원칙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보호 시설 부족 등 피해 아동에게 더 이상 학대 피해가 없도록 하는 장치가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죠.”

  전문가들은 아동학대가 반복되는 구조를 진단했다. 정재훈 교수(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는 가부장적 가족 구조를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부계 혈통주의에 따른 가부장적 가족 구조에서 아이를 부모의 사유물로 여기는 인식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원가정 복귀를 통해 아동학대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죠.” 신기원 심리학 박사는 아동학대를 가족만의 문제로 생각하는 인식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고해도 실질적으로 아동을 학대 행위자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면 사실상 해결할 방도가 없습니다. ‘가족의 일은 가족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다시 검토해야 해요.”

  이웃 공동체의 부족한 연대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정재훈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아동학대 의심 신고자에 대한 보호가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누군가 아동학대를 신고했을 때 가해자가 신고자를 스토커 수준으로 괴롭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이웃이 신고자와 함께 연대하려 하지 않아요. 정책적으로도 신고자를 보호하고 이웃 공동체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숨어있지만 치명적인

  아동은 부모에게 많은 부분을 의탁하고 있기에 아동학대가 가져오는 피해는 더욱 두드러진다. 신기원 박사는 아동이 학대하는 부모에게 지배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설명했다. “아동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로 여겨집니다. 학대 아동은 언제 학대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 굴욕감, 분노 속에서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면 생존이 위협받기 때문에 복종할 수밖에 없죠.”

  김경란 교수(광주여대 유아교육과)는 아동학대 피해가 성인기에 미치는 효과에 관해 언급했다. “일반적으로 자아는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형성됩니다. 아동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은 양육자이기 때문에 학대 가정의 경우 자아존중감이 낮은 등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신기원 박사도 비슷한 의견을 덧붙였다. “평생 타인과 맺는 관계의 원형은 어린 시절의 보호자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됩니다. 양육자를 대하며 만들어진 행동 양식이 다른 관계에서도 계속 반복되는 것이죠. 유년 시절 애착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건강한 관계를 맺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동학대는 특성상 학대 피해가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김경란 교수는 고립된 위기 가정에서 범죄가 발생해 대책 마련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공식 통계보다 약 4배 많은 아이들이 실제 학대 피해를 받고 있다고 예측합니다. 가정이라는 공간은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피해 아동은 자신의 이야기를 외부에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피해를 밝히기 어렵죠.” 신기원 박사는 코로나19가 암수 범죄 발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셧다운, 온라인 수업 등으로 아동과 사회의 접촉이 줄어들었습니다.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아동학대를 눈치챌 기회는 감소하는 반면 학대가 피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은 분명하죠.”

  신체적 학대뿐만 아니라 정서적 학대, 성적 학대, 유기 및 방임 등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부부싸움을 아동에게 노출하거나 아동이 보는 앞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것도 정서적 학대의 사례다. 또한 10살 남짓한 아동이 귀가 후 농사일 또는 전자부품 조립 등의 일을 돕도록 하는 것도 신체적 학대로 인정된다. 신기원 박사는 발견이 어려운 정서적 학대에 관해 지적했다. “아동도 성인과 같이 괴로움을 경험하고 타인이 무슨 정서를 경험하는지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언어 발달이 전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서를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주변에서 인지하기도 힘듭니다.” 김경란 교수는 부모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서적 학대가 일어난다는 점을 짚었다. “평소 ‘다른 사람은 다 하는데 너는 왜 못하니’와 같은 말을 부모님에게 들어봤을 거예요. 이러한 말도 정서적 학대가 될 수 있지만 대개 부모가 학대라고 인식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갈 길 먼 인식

  정인이 사건을 포함한 많은 아동학대 가해자는 훈육을 위해 아이를 때렸다고 진술한다. 김경란 교수는 훈육을 핑계로 아동학대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민법」 제915조에서 ‘부모는 아동을 징계할 수 있다’는 징계권이 삭제됐습니다. 그러나 훈육을 핑계로 폭행, 스트레스 해소, 분노의 표출 등으로 아이들을 협박하는 경우가 많죠. 부모의 인권 의식이 부족해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신기원 박사는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보다 소유물로 보는 경향이 드러난다고 언급했다. “‘내 자식 내가 가르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와 같은 잘못된 사고방식에서 어긋난 태도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만족이나 편의를 위해 아동을 학대하고 책임을 피하려 훈육을 내세우는 것이죠.” 허용 변호사는 학대를 정당화하려는 행위를 주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상당수 가해자뿐만 아니라 수사기관과 아동학대전담 공무원도 목적이 정당하면 아동학대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오인하곤 합니다. 하지만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학대 행위는 학대일 뿐입니다.”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양육자는 아동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양육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김경란 교수는 아동의 인격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 힘으로 아이를 움직이려고 하거나 아이를 방치하며 학대가 발생하곤 합니다. 아동도 자신의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주체임을 알고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신기원 박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아동학대 관련 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아동이 괴로워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무심코 방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중 매체나 학교 교육을 통해서 아동을 포함해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방법을 구성원들에게 가르쳐야 해요. 학대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자리 잡으려면 반복적인 논의와 숙고, 학습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동학대 사건들은 사회적 인식과 장치들이 미흡한 상황에서 반복되고 있다. 이웃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아동학대를 그저 가족 안에서의 불화로 치부하며 개입을 꺼린다면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아동학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커서도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주변 사회구성원 모두 아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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