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촘히 붙은 건물들이 쪽방촌 골목을 채웠다. 일부 건물에는 공공주택 개발을 반대하는 의미의 빨간 깃발이 꽂혀있다.
촘촘히 붙은 건물들이 쪽방촌 골목을 채웠다. 일부 건물에는 공공주택 개발을 반대하는 의미의 빨간 깃발이 꽂혀있다.

계속되는 사각지대들 
사회적 인식부터 개선해야

신청해도 도움받기 어려워 
현실 반영 못하는 수급 조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이는 가구의 소득이 일정 기준선에 미달하는 사람에게 생계, 주거 등 기초 생활 유지를 위한 지원이다. 그 외에도 여러 복지 정책과 서비스가 있었지만 공적 보호 제도의 사각지대는 발견되고 있었다. 

  닿지 않는 손길 
  8월 21일 경기도 수원시 다세대주택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60대 여성 A씨는 암 진단을 받아 치료 중이었고 두 딸 역시 각각 난치병 등을 앓고 있었다. 병원비 때문에 월세가 밀리는 등 채무 또한 상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생계유지가 곤란한 상황임에도 이들은 지자체로부터 기초생활수급제도 등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상담한 적 없었다. 당시 세 모녀는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지인 집으로 거주지가 등록된 상태였다. 이후 2020년 수원시의 현 주거지로 이사했으나 전입신고는 하지 않았다.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탓에 정부의 사각지대 발굴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국 복지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신청주의를 따른다. 당사자가 복지 제도를 알지 못하면 혜택을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이용교 교수(광주대 사회복지학부)는 현행 복지 제도상 신청주의 한계를 지적했다. “한국 복지 제도는 신청해야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신청할 때 본인이 혜택 대상자인지를 알지 못하거나 신용 불량자라는 이유 등으로 알아도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죠.” 

  홍선미 교수(한신대 사회복지학과)는 기초생활수급자 탈락 이후의 지원 방식에 관해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할 경우 정부로부터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탈락이 되면 지속해서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죠. 위기 상황일 경우 긴급복지 지원 등을 받을 수는 있어요.” 

  기초생활수급자 신청 이후에도 서류 조건이 맞지 않아 탈락하거나 긴급복지 요건에 미달하는 경우도 있다. 2014년 서울특별시(서울시) 송파구의 한 단독주택 반지하에서 세 모녀는 70만원이 든 봉투와 유서만을 남기고 함께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주인 아주머니께.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세 모녀는 생전 관할 주민센터로 찾아가 기초생활보장급여 신청 상담을 했지만 거절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근로 능력이 있어 추정 소득이 수급 기준을 넘는다는 이유였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복지 시스템이 위기 가구에 닿지 못하는 현실을 언급했다. “정부에서 위기 가구를 발굴하는 시스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의 경우 신청하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는 아니었어요. 발굴해도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복지 제도가 없는 문제가 훨씬 큽니다. 재산이 적어야 하는 등 선정기준이 까다로워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례도 있죠.” 

  혜택의 동전 뒤집기
  생계급여를 지원받으려면 가구 소득 인정액이 급여 선정기준 이하인 사람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재산 소득환산액은 기본생활을 위해 필요한 재산(기본재산액)을 공제하고 남은 재산가액에 일정 비율을 곱해 산정한다. 그러나 신청주의의 높은 문턱과 수급 선정기준은 복지 사각지대를 낳는 비극을 심화하기도 했다.

  4월 서울시 종로구에서 발생한 ‘창신동 모자 사건’은 수급 선정기준의 이면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실제 수익이 없어도 소유물에 따라 수급 여부가 결정되거나 수급자 선정 이후에도 약간의 소득 변동으로 수급비가 삭감되거나 탈락되는 경우가 있었다.

  당시 80대 어머니와 50대 아들은 낡은 목조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한달 소득이 약 60만원에 그쳤음에도 생계급여 지원을 받지 못했다. 살던 집(공시가격 1억 7000만원)의 소득환산액 약 250만원과 매달 받은 기초연금 등을 합친 소득 인정액이 371만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2인 가구 생계급여 조건인 월 소득인정액 약 97만 8000원을 훌쩍 넘은 금액이었다.

  정성철 사무국장은 해당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창신동 모자 사건의 경우 재산 때문에 수급 자격에서 탈락했잖아요. 현재 급여를 받으려면 재산 기준이 서울 기준 5400만원 이하가 돼야 합니다. 집값은 계속 올랐지만 사실 제도에서 인정하는 기본재산액이 계속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수준으로 낮게 유지되는 문제가 있어요.” 홍선미 교수는 보장 제도의 좁은 대상 범위와 기준에 관해 말했다. “제도의 수급자 범위가 굉장히 좁습니다. 기본적으로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으면서 근로 능력도 없어야 해요. 그렇게 수급 기준을 결정하면 벗어나는 사람들에 대해선 문제가 발생하죠. 예를 들어 매달 생활비가 없어도 집이 있다면 수급 자격에서 탈락되는 경우는 특히 자세히 살펴보는 게 필요합니다.”

  불충분한 지원금 문제는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이용교 교수는 충분하지 않은 급여 지원 현황을 언급했다. “국민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원액이 부족한 편이죠. 작년보다 지원액이 늘었지만 생활 양식의 변화까지를 정부가 지원하진 못합니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마이너스인 경우와 비슷해요.” 정성철 사무국장은 수급자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도 시사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돼도 보장 수준이 너무 낮습니다. 부족한 급여를 채워줄 수 있는 관련 복지 서비스가 충분하지도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보완할 필요가 있어요.”

  빈틈을 메워야
  복지 사각지대 문제의 원인은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홍선미 교수는 복지 대상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설명했다. “본인이 도움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도 도움을 청하는 데까지 심리적 장애물이 있습니다. 근로를 통해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으로 도움받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기도 해요.”

  청년들 또한 수급자를 향한 불편한 사회적 인식이 존재하는 현실에 공감했다. 한송희 학생(단국대 상담학과)은 문제 원인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보는 상황을 언급했다. “지원받는 것을 두고 개인이 무능력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처한 상황보단 개인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인식이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망설이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류현우 학생(영남대 체육학부)은 매체에서 그려지는 특징도 부정적 시선을 만든다고 말했다. “미디어 자료에서 기초생활수급자를 소위 ‘왕따’ 등 상대적 약자로 묘사하는 모습이 그들을 움츠러들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부정적으로 만든다고 봐요.” 

쪽방촌 골목은 여러 집들이 미로처럼 얽혀있다. 어두운 골목을 지나 집 근처로 가서야 불빛이 드리운다.
쪽방촌 골목은 여러 집들이 미로처럼 얽혀있다. 어두운 골목을 지나 집 근처로 가서야 불빛이 드리운다.

  모두를 위한 복지로 
  전문가들은 사각지대 해소에 관해 다양한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이용교 교수는 신청 구조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복지지원 분야나 서비스의 수를 확대하는 것보단 통합해서 조금 더 쉽게 신청하고 지속적으로 지원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홍선미 교수는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웃이나 친구가 존재하지 않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일상적인 관계가 없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구조적으로 복지 사각지대가 많이 생기는 게 문제겠죠. 편하게 상담받으면서 심리적 스트레스나 문제를 나눌 서비스를 활성화하는 게 필요합니다.”

  청년들은 복지 정책의 논의에 목소리를 더했다. 한송희 학생은 표면적인 복지 선정기준을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차가 몇 대 있는지, 집이 몇 채 있는지 등 선정기준이 너무 표면적이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지 등을 따지지 않은 채 보유한 것이 있으니 도움받지 못한다고 평가하는 게 복지 사각지대를 만든다고 봐요.”

  류현우 학생은 주기적인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처한 환경이 모두 다르기에 모두가 만족하는 기준 마련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세한 차이로 지원받지 못하거나 부당한 자격으로 받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아야 합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제도 기준에 대해 주기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권륜 학생(사회학과 2)은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제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재고가 먼저 논의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존에 사회에 빚을 진다는 인식과 그로 인한 부정적인 낙인을 해소해야 합니다.”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는 사실상 특정 연령대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일부 청년들은 제도적 문제로 인해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례도 있었다. 사각지대를 해결하기에 많은 정책적 변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공적 보호 체제의 허점은 여전히 존재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논의를 통해 촘촘한 제도를 수립하고 사회적 인식 변화를 이끄는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모두를 위한 복지를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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