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나는 중대신문 수습기자에 지원하려 했었다. 지원서 작성까지 마쳤을 때, 면접 일정을 맞출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야심 찼던 도전은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가끔 주변에서 중대신문에 대한 얘기가 들려오면 홀로 간직하고 있는 작은 추억을 회상해보는 것이 전부였다.
 
  갓 입학한 새내기 시절에는 대학교에서 신문을 발행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신문지는 짜장면 먹을 때만 썼던 내가 그런 걸 알 리 없었다. 그러니 ‘차별을 회고하며’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글쓴이는 지하철을 기다리다 옆을 지나가는 시각장애인을 보고 나서야 자신이 점자블록을 밟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글이 전하고자 했던 내용은 학내 행사 속기의 필요성이었지만, 엉뚱하게도 나는 이후 길을 가다 종종 바닥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혹여 내가 누군가의 눈이 되어주는 길을 막고 있진 않은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올록볼록한 황토빛 블록의 감촉이 발바닥 아래로 느껴질 땐 여러 생각에 잠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입학한 지 일 년 하고도 반이 훌쩍 지나버렸지만, 땅을 보며 걷는 버릇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글을 읽을 때 글 뒤에 있을 사람과 그 사람이 밟았을 길을 떠올리곤 한다. 최근 수면 위로 올라온 동물권부터 많은 이들이 공감할 장시간 통학의 고충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신문의 지면을 채웠다. 다수가 당장 눈에 보이는 커다란 이익을 좇을 때, 사라져가는 작은 목소리를 담기 위해 여기저기 발로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존재만으로도 하루치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한 개의 글, 나아가 한 문장이 가지는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많은 것이 빠르게 생겨나고 빠르게 사라져가는 세상 속에서 중대신문만큼은 우리 곁에 오래 남아있을 가치를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다.

장연우 학생 
영어영문학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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