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어릴 적 제 별명은 ‘호기심 대마왕’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토론하고 질문하는 것을 좋아해 항상 “왜요?”라는 물음표를 달고 다녔죠. 이러한 열정의 화살표는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로 향했습니다. 학보사에 지원하게 된 것도 돌아보면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비롯됐죠. 남들처럼 거창하게 ‘기자의 꿈을 이루고 싶다, 기성 언론사에 취업하고 싶다.’ 이러한 것들은 전혀 없었습니다.

  학생기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부분이 변했습니다. 수습기자를 거치고 시작한 저의 첫 부서는 대학보도부였습니다. 시나 소설 등 감성적인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수많은 학내 사안에 관한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면서 항상 중립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어느 순간 기사를 쓰지 않아도 제 모든 글에는 감정이 배제됐죠. 그 변화를 처음 마주할 때 색깔을 잃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사소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평소 천천히 걷고 주변을 보면서 사색을 즐겼던 저는 온종일 휴대폰을 쥐고 있어야 했습니다. ‘취재 전화’일까, ‘답변 메일’일까. 마음을 조아리며 수업 시간에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죠. 바쁘고 지친 일상에 큰 다짐을 했습니다. “그만둬야겠다.”

  그런데 왜 저는 아직도 이곳에 있는 걸까요? 동기분들은 제가 가장 먼저 사직서를 던지며 신문사를 박차고 나갈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가고 싶다는 제 말은 주술처럼 4차 학기째 반복됐고 걱정했던 사람들도 믿지 않겠다는 눈빛을 보내곤 했습니다.

  사실 신문사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있었습니다. 단순히 글을 정확하고 빠르게 작성하거나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이 아니었죠. 첫째는 여러 자아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아무리 노력해도 취재가 되지 않을 땐 화가 났다가, 정성스러운 서면 답변을 받고 히죽거리는 저를 마주할 수 있었죠. 또 하루는 밤새우면서 기사를 쓰느라 초췌했다가, 떠오르는 해를 보며 열정에 취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감정이 제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다양한 감정과 경험들은 제 마음가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취재 불응으로 기사가 엎어져도, 지면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도 멈춰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해결책, 보완책을 강구하는 저를 만날 수 있다는 게 두 번째 이점이었습니다.

  그러한 경험들이 쌓이면서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온 학보사에서의 약 2년은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꿈 조각을 선물했습니다. 문득 미래에 기자가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죠. 이처럼 사적인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이 글로 이러한 삶도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이상한 도전을 하고도 새로운 경험을 얻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죠.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지며 수첩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삶을 살고 계시나요?

이정서 사회부장

<br>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