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약 6번의 발행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남은 발행호수가 줄어들수록 제 이름 끝에 ‘기자’란 호칭이 붙을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걸 체감하는 요즘입니다. 저는 남은 임기를 끝으로 중대신문에서 활동한 2년, 그리고 기자란 꿈을 가지고 있던 지난 8년여 시간의 마침표를 찍으려 하는데요. 어쩌면 기자로서 작성하는 마지막 칼럼이 될 이 공간에 서툴렀던 시간들의 고백을 남기려 합니다. 

  되돌아보면 시작은 오기였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참사 현장을 찾은 수많은 취재진의 무리한 인터뷰 요청, 그리고 오보까지. 당시 언론은 대중에게 뭇매를 맞았죠. 중학교 1학년이었던 저는 모든 언론이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출발한 꿈이라서 유독 그랬을까요? 중대신문에서 기사를 작성하는 매 순간 윤리적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사회부에서 일을 시작했는데요. 매주 약 15매 분량의 기사를 작성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기사의 객관성이었습니다. 사회부는 방학 중에 미리 발행할 아이템을 선정해 전반적인 기사 내용을 구성합니다. 그러다 보면 기사가 말하고자 하는 시사점이 부장과 부서원의 견해에 따라 성립되기도 하죠. 이 부분이 항상 무서웠습니다. 자칫 제가 가진 견해가 사실인 양 전문가의 말을 빌려 기사화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죠. 인터뷰이로부터 “원하는 답변이 분명한 질문이지 않냐”는 반문이 있을 때 더욱 그러했습니다. 

  차장을 맡았던 여론부에서는 또 다른 고민이 이어졌는데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한 특색을 발견해 기사를 작성하는 부서다 보니 취재원과의 거리 조절이 어려웠죠. 직접 취재원들의 활동 반경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고 취재하다 보면 기자가 상대에게 갖는 친근함과 상대가 기자에게 보이는 호의가 기사에 여실히 드러나곤 했죠. 문제는 상대에 따라 기사에 들이는 열정도 차이가 있었다는 겁니다. 또 그게 저 스스로도 느껴져 죄책감이 들었죠.  

  이번 학기 남은 기간을 보내게 될 대학보도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주 월요일 취재 보고를 받고 기사화할 아이템을 선정하는 과정부터 취재하고 기사를 정제하는 작업까지 제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입니다. ‘정확한 사실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 생각의 기저에는 어떤 이해당사자도 논란을 제기하지 못할 사실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자리합니다. 다시 말해 언론인으로서 목소리를 내야 할 비판 지점이 분명함에도 학생기자로서의 한계에 부딪히느라 보수적인 글쓰기가 돼 버린 셈이죠. 누구보다 소외된 사람의 작은 목소리를 키우는 기자가 되겠다고 자신했던 첫 칼럼과 거리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오랜 시간 기자를 꿈꿨고 그 기간동안 누구보다 치열하게 기자의 덕목을 고민했던 저라서 더욱 그러합니다. 기자 생활은 남은 6번의 발행으로 마무리되지만 이런 고민이 제게 자양분이 됐길 바라며 이만 펜을 놓습니다.

오진실 대학보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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