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신문을 읽고강의 환경 개선을 위한 지혜 모을 때이경수 교수(국어국문학과)중대신문 1757호는 졸업 특집호로 기획되었다. 먼저 어려운 시기에 사회로 첫 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에게 축하와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 중앙대에서 보낸 시간이 여러분에게 앞으로 맞닥뜨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졸업 특집호의 구성은 적절
날씨가 추워졌다. 과제에 치이고 시험에 치여야하는 때가 돌아왔다. 미리미리 공부하고 과제도 하면 좋으련만 그게 영 쉽지는 않다. 이번 중대신문은 꼭 제출 날짜에 맞춰 급박하게 낸 과제 같다는 느낌이 든다. 선거 관련 기사가 지난주 중대신문의 메인 기사였다면, 이번 중대신문의 메인은 예상된 것처럼 선거 결과에 관한 기사다. 그저 중립에서 그쳤던 선거 기사들에
조현의 단편소설 「종이 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 마지막 장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우리가 런던 뒷골목에서 사흘을 굶은 어린이를 보고서 검게 굳은 빵을 갈라 그 아이와 반 조각씩 나누어 먹는 것과 단지 측은한 마음만 가지고 바라보는 것은 천국과 연옥처럼 거리가 먼 일이다’ 마음은 같았으리라 생각한다. 시작은 불같았으리라 믿는다. 당초 내세운 3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란 유권자가 거의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다. 최근 서울시장 선거에서 보듯 우리 사회 젊은 유권자들은 이 같은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자각하는 중이다. 중앙대학교 구성원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중대신문이 1~5면과 사설을 선거 관련 내용으로 채운 것 역시 이런 사회 분위기, 그리고 이와 무관하지 않은 학내 분위기
중대신문의 54대 총학생회 선거보도가 중립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선거 보도는 매우 성공적이다. 사설을 통해서 투표까지 독려하는 세심함을 보였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하지만 대학 언론의 역할이 보도에서 끝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물론 일주일 단위로 신문을 찍어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선거 관련 기사가 지나치게 기계적이라는 생각을 지
성인이 된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며 공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제 나이가 되었으니 술도 마시고 연애도 하겠지만 어쨌든 대학생은 공부에 집중해야 하니 금전적 독립은 불가능하다, 고 말하는 것은 유치한 책임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 학교를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사회생활을 간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아르바이트는 추천할 만한 경험이다
대학신문이 고루하면 안 된다. 중앙일간지 못지않게 비주얼한 신문이 되어야 한다. 왜? 통통 튀는 상상력을 지닌 대학생들이, 그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야만 할 대학생들이 읽는 신문이기 때문이다. 우선, 신문 한 부에 쓰는 수십 장의 사진을 좀 더 신경 써서 배치할 것을 청한다. 8-9면 문화면 특집 ‘종교가 답이다’의 사진을 보자. 왼편의 사진은 신문 한 면
월요일마다 중대신문을 읽는 일이 기다려진다. 단순히 학교 소식을 전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면서도 날카롭게 보려는 흔적들이 많아서다. 문화면에 카페를 소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럼에도 청춘다방 프로젝트에 관한 기사가 반가운 이유는 중대신문이 ‘대학생’의 초점에서 넓어지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대학생들이 다른 누군가와 소통하기
“하루에 6~7시간만 신문을 읽으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메가트렌드』의 저자 나이스비트의 말. “세계가 돌아가는 소식과 새로운 지식이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의 보고”가 곧 신문이라는 앨빈 토플러의 말. 신문을 면밀하게 읽다보면 사회의 전체적 흐름을 파악하고, 나아가서 사회의 시스템 전체가 향하는 방향에 대한 감지가 선명하게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번 중대신문은 관심을 끄는 기사들이 많이 실려서 아주 재밌게 읽었다. 특히 2면과 3면 두 지면을 할애해 크게 다룬 중앙인 커뮤니티에 대한 ‘대학기획’을 관심 있게 보았다. 중앙인 커뮤니티는 학내 유일한 온라인 소통 공간이지만 광장의 역할로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건전한 토론이 이루어진다기보다는 감정싸움이나 인신공격에 가까운 과격한 말이 오가는
어느 날 우연히 청맥서점 앞을 급히 지나가다 느낌이 이상해서 되돌아가보니 한때 중앙인들로 북적이던 1986년에 문을 연 청맥서점이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휑하니 비어있고 빈 서가들만이 이리저리 놓여 있었다.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2011년 10월 31일부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청맥서점”이라고 게
신문은 읽히기 위한 매체다. 독자에게 정보와 재미를 전달하고 비판 기능을 수행했을 때 그 사명을 다한다. 그런 점에서 학내 상점들에 대한 기사는 대안 제시까지 나가지는 못했어도 학내 언론으로서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을 짚어주는 기사였다. 동시에 동문들에게는 카우버거와 같은 정겨운 이름을 떠올 리게 하는 즐거움까지 안겨준 학내 언론의 본령에 충실한 기
개교기념 특집호 중대신문에서는 8면 ‘청춘’과 12면의 을 다룬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이번 학기에 새로 선보인 문화면의 기획은 성공적이라고 판단된다. 학생들이 직접 멘토를 찾아가 조언을 듣는 ‘청춘’은 오늘의 청춘들에게 절실한 기획이 아닐까 싶다. 훌륭한 멘토들과의 만남이 학생들의 시야를 넓혀 주고, 이 사회가 조장하는 지나친 불안을 떨쳐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흄은 사회가 제대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기심을 부인할 것이 아니라 이기심을 이용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목적을 달성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들과 달리 칼 마르크스는 악한이라 가정하고 고안된 헌법 아래 살아가는 시대는 “일반적 부패와 보편적 매수의 시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악법이 악인을 만든다는 것이다. ‘악법
신문의 쓰임새 중에는 어떤 사실에 대한 공정한 보도도 있겠지만 주요 독자(학생, 교수, 교직원, 동문, 이들의 가족)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조선조 때에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대궐 밖 문루에 있는 신문고를 치면 왕실에서 직접 억울한 사연을 접수, 처리하였다. 중대신문이 그런 역할을 좀 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지난달 28일, 대학본부는 안성캠 교육환경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총학생회장이 단식투쟁을 시작하며 본·분교 통합과 신캠퍼스 관련 대책을 요구하자 답을 내놓은 것이다. 형식적인 답은 아니었다. 신입생 모집 중단학과 학생의 수업권을 보장하겠다거나 본·분교 통합 준비위원회(통합위)에 학생 대표 참여를 약속하는 등 안성캠 학생들의 불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
전체 중앙대 여학생 중 63%가 한 번 이상 생리공결제를 사용한다. 도입 첫 학기인 2006년도 사용률이 39%인 점을 감안해볼 때, 짧은 시간에 제도가 정착됐음을 알 수 있다. 더이상 극심한 생리통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학생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학교에 와야만 하는 문제가 사라진 것이다. 허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여성의 건강과 모성의 보호를 위해 생리공
바야흐로 가을이다. 학교 탐방을 온 학생들을 보니 이즈음, 논술 시험을 보러 학교에 왔던 기억이 난다. 논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굳이 논술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겠지만 선택과 집중이 아닐까. 지면을 꽉꽉 채운 알찬 기사들 덕분에 신문은 볼거리가 가득했다. 그러나 신문을 덮고 보니 막상 떠오르는 기사는 없었다. 욕심이 과해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해
어디서 시작해서 어떻게 써야할지 난감하기는 이 코너를 맡은 이후 처음인 듯하다. 문제의식은 있되 이를 제대로 살릴 능력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문제의식도 없는 것인지 판단을 내리기조차 모호하다. 우선 지난 호 주요 쟁점이었던 캠퍼스 통합과 관련된 기사를 먼저 보자. 총 4개의 관련 기사를 다루고 있지만 물리적 통합이 결과한 문제점과 분리 평가라는 모순된 상
1746호 중대신문의 면 구성은 편집진과 각 부서 기자들의 고심하고 노력한 흔적이 잘 배어 있다. 1면의 우리 대학이 입시전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기사는 매우 기분좋은 것이다. 기획취재들도 취지에 부합하는 성과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2~3면의 체육시설 사용에 관한 실태보도와 학생들의 민원 취재는 실상을 충실하게 전했고, 8~9면의 문화란의 홍세화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