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외면 받는 사회는 슬프다

2019-05-27     중대신문

조선에 황진이라는 여인이 살았다. 생몰년대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교유했던 사람들의 행적과 관련 기록을 살펴볼 때, 중종 재위 시절의 사람으로 짐작되니 대략 500년 전의 일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5년 전 즈음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부터이다. 용모도 수려하고 노래도 곧잘 부르고, 글씨와 그림에까지 능했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까지 그를 가까이 하게 된 이유는 십 여 편에 이르는 시(詩) 때문이었다.

  황진이는 소설,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서 끊임없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과 교감하는 16세기의 여인이다. 16세기를 21세기처럼 살다 간 짧지만 강렬한 그녀의 삶과 문학을 접하면서 고전시가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의 시조는 오늘날까지도 절창으로 손꼽히며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오늘은 시조에 비해서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한시(漢詩) 한 수를 소개할까 한다.

 

<詠半月> 반달을 읊다 

誰斷崑山玉 누군가 곤륜산의 옥을 끊어다가

裁成織女梳 직녀의 빗을 만들었네요.

牽牛離別後 (아마도) 견우와 이별한 후에

愁擲碧空虛 슬픔에 겨워 푸른 하늘  빈 곳에 던져두었나 봐요.

 

  우리는 다양한 욕망을 갖고 살아가며, 어쩌면 삶이란 이러한 욕망을 채워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기생으로 살다 간 황진이가 가장 절실하게 원했지만, 끝내 갖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별 없는 오롯한 사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에는 외로움을 노래한 것이 많고, 이 작품 또한 반달을 읊조리며 외로운 심사를 형상화하고 있다. 

  중세의 여인에게 빗(梳)은 자신을 꾸미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물건 중 하나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빗을 던져버린다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을 예쁘게 단장하는 것이 의미를 상실했음을 뜻한다. 그렇게 던져진 빗은 반달이 되었다.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아마도 배가 고팠었는지), 내가 반달을 통해서 떠올린 이미지는 먹음직스런 만두였더랬다. 그러다 한 번 두 번 다시 읽어보니 이내 반달과 빗의 은유가 자아내는 감동이 밀려 왔고, 촉촉이 눈물도 조금 맺혔었던 것 같다. 그 후로는 반달을 볼 때마다 황진이의 언어로 형상화된 직녀의 빗이 떠오른다.

  서점에 가면, 최근 열기가 조금 사그라들기는 했지만, 자기계발서가 여전히 눈에 잘 띄는 곳에 비치되어 있다. 그리고 시집은 저 한 귀퉁이에 놓여 있기가 일쑤다. 요즘처럼 시(詩)가 외면 받는 세상은 슬프다. 자기계발서도 좋지만, 시대와 언어를 초월해서 시심(詩心)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낭만적인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러분은 저 하늘의 반달을 보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저마다의 반달 하나쯤 가슴 속 깊은 곳에 넣어두고 가끔씩 꺼내어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김성문 교수

국어국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