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그리고 이따른 IMF관리체제라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권의 1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김대중 정권은 민주화 투사라는 그 역사적 상징성과 더불어 경제위기의 공포속에서 국민을 구해낼 수호신처럼 등장했다.

경제위기라는 전국민적 공포는 이것이 왜, 어디서 발생되었는가, 어떻게 돌파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차분하고 논리적인 고민을 불가능하게 했다. 단지 경제위기 돌파를 위한 전국민적 희생만이 최선인양 여겨질 뿐이다. 이미 우리는 초국가적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IMF의 요구사항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면서, 동시에 국내외적으로 요구되는 한국사회 자본주의 체질개편의 일단락을 경험해왔다.

부실기업과 은행의 퇴출,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업구조조정, 5대그룹의 빅딜이 그것이고, 외국자본에 대한 전면적인 개방과 공기업의 민영화를 바로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재벌개혁, 심지어 재벌해체라고까지 표상되는 현재의 구조조정 정책은 독점재벌 지배체제의 합리화. 근대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과 재벌개혁 프로그램은 소수 독점재벌에게 자본을 더욱 집중시키고, 구조조정에 소요되는 비용은 국민 전체로부터 끌어내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조조정의 혜택은 독점재벌들만이 독식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조정의 맥락은 위기의 부담과 비용을 노동자 민중에게 철저히 전가시키며, 이로 인해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사회적 공공성의 소멸을 유도하는 신자유주의적 방향인 것이고, 시장만능주의적 정책의 일환인 것이다. 이는 현재의 위기가 남한사회만의 고립적이고 지엽적인 위기가 아닌 전세계적인 자본의 위기이며, 구조적 위기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남한사회 독점자본 뿐만이 아닌, 전세계적 초국적 자본의 이해에 복무하는 양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즉 기업과 금융기관의 인수합병과 공기업의 민영화 등을 통해 독점화 과정이 폭발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공기업 민영화와 외자유치를 통해 대외 종속적 경제가 심화되고 있으며,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직접적인 융합은 더욱 촉진된다. 이는 5대 재벌만의 세계화와 세계화된 자본의 광폭함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IMF의 요구안과 김대중정권의 구조조정 정책은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심화시켜낼 뿐이다. 초기 IMF 이행안의 긴축재정과 고금리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기업들이 파산했고, 실물경제가 극도로 위축되어 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 어떠한 사회적 안전망도 없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으며, 중산층이라 자부하던 계층의 몰락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바로 다수의 노동자와 민중 생활의 악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행되는 실업대책과 고용대책은 실업을 발생시키는 원인에 대한 처방과 예방이 아닌, 확대하는 방향일 뿐이고, 사후적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후적 성격조차도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정권은 노동자민중 생존권의 절대절명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적 개혁을 '사회적 합의'라는 명목으로 추진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합의가 아닌 총자본과 독점자본에 대한 일방적 양보이자, 노동자 민중의 일방적 비용전담, 일방적 희생을 은폐하는 기재일 뿐이다. 이미 우리는 정리해고 합의안이 의미와 현실을 아무런 사회적 보장없이 지금도 정리해고되어가는 현실에서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김대중정권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을 합리화하고 노동자 민중의 저항을 고립시켜내기 위해 시민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과거 '민족회의' 소속의 많은 단체들을 포섭해 설립시킨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의 창설과 이른바 '제2건국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창설, 한겨레신문을 앞세워 추진했던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등이 중요한 사례일 것이다. 또한 김대중정권이 김대중정권의 독점자본을 위한 '재벌개혁'에 동참하고, 이를 촉진하고 있는 수많은 시민사회 재벌개혁 운동이 그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항한 노동자 민중의 최소한의 생존권을 지켜내고자 하는 투쟁에 혼란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이러한 반민중적인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경제정책 뿐아닌 정치적 민주화에 있어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민주화 투사, 인권의 수호자라는 명성이 부끄럽게도 김대중정권 하에서도 국가보안법의 횡포는 여전하며, 현대자동차. 만도기계 투쟁에서 봉진 공권력 남용의 모습 역시 고거 정권과 달라진 점이 없다. 오히려 경제위기 돌파라는 명목으로 공권력. 정치권력은 강화되고 있을 뿐이다. 김대중정권이 시행하는 정치개혁은 '민주개혁'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인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용절감 등을 위한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적 정치개혁'의 연장선에 있을 뿐이다.

김대중정권의 개혁, 김대중정권의 년은 '천민적 요소를 지닌 한국자본주의'를 국제경쟁력을 지닌 '신자유주의적으로 근대화된' 이른바 '선진국형 자본주의'로 만들기 위한 한해였다. 그러한 전환을 위해 5대재벌로의 자본의 더 한층의 집중과 외국자본의 한국경제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의 강화를 허용하고 있고, 노동자. 민중의 생존의 위기가 악화되고 삶이 파탄하는 것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길 강요해왔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한국경제가 과연, 김대중정권이 선전하고 있는 것과 같이, 새로운 번영의 길로 들어서고 이를 통해 다시 실업의 해소와 노동자. 민중의 삶의 향상과 같은 사회적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속에서 노동자 민중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개혁'을 빙자해, 경제위기를 빌미로 진행되는 구조조정. 그로 인한 희생을 불가항력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초국적자본의 이동을 규제하기 위한 적극적인 국내외적 연대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스크린쿼터제를 통해 드러나는 한미투자협정의 문제, 다국적투자규범의 문제들이 이제 99년과 21세기 한국사회 민중들의 구체적 삶의 피폐화로 드러날 것이다. 이러한 반민중적 제도와 정책들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 민중 스스로의 투쟁으로서만 파괴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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