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 정부통계만으로도 실업이 1백50만을 넘었고,
환난의 주범인 동남아 시장은 갈수록 불안해진다. 중국의 위안화는 평가절하
를 준비하고 있고, 일본의 금융권은 초비상 상태에 들어갔다. 최악의 경우
인도네시아가 모라토리움 위기에 처하고, 중국의 위안화가 평가절하하고, 일
본이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외채상환을 독촉한다면…. 급한 불은 껐지
만 위기는 상존한다.IMF는 이제야 시작되고 있다. 이미 많은 해외 뉴스그룹
과 금융가들이 경고하는 것처럼, 본격적인 구조조정기에 들어가는 9월이 되
면 심각한 금융파동과 기업의 도산, 실업사태, 인플레이션에 국민경제 자체
는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들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IMF 지원금으로 모은
2백억 달러를 가지고 마치 금융위기가 해소된 것처럼 허세를 부리고 있다.

시작도 하지 않은 IMF를 벌써 끝내려 하는 것이다.그러나 불행히도 IMF는 성
공한 예가 한나라도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경제적 결과를 안겨다 준다. 성공사
례로 들고 있는 멕시코 경제 역시 올 상반기 갚아야 할 외채만 5백억 달러이
고, 투자등급은 우리보다도 낮은 B2 상태다. 당장의 금융위기만 생각한다면
IMF는 `크리스마스 선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대가로 IMF가 가져다 줄
경제적 결과를 생각한다면, IMF는 `트로이의 목마'에 가깝다. 문제의 IMF체
제의 극복이란 금융위기가 아니라 IMF의 경제적 결과 자체를 극복하는데 있
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IMF의 본질과 전략적 행동에 대한 분
석적 사고로부터 IMF의 경제적 활동이 낳을 구조적 결과를 예측하고 이에 대
비하는 전환적 사고일 것이다.IMF의 일차적인 활동목표는 부채상환에 있다.
재정운용과 상환일정의 재조정을 통해서 원금상환을 연기해주는 대신, 이자
지불을 강제한다. 다른 한편 채무불이행(모라토리움)을 선언할 수밖에 없는
국가부도의 위기로부터 IMF는 차관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체납
된 이자를 상환하는데 사용하는 것일 뿐, 새로운 투자를 유발하는 것과는 거
리가 멀다.차관제공에 앞서 IMF는 `차관조건'에 우선협상을 유도한다. 실질
적인 차관이 제공되지 전에 우선 상당한 정도의 개혁조치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때 해당국은 IMF 개혁프로그램에 대한 이행의지를 보여야 하며, 이른바
`합의의향서'라는 거시경제 지표에 대한 개혁정책과 부채관리 기조를 담을
각서를 IMF에 제출해야만 한다. 이에 IMF는 정책기조와 기술자문을 총괄하는
`IMF 새도우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이를 준거로 차관의 제공과 동시에 실질
적인 대리정부(parallel government)로서 개별국가에 대한 경제적 신탁통치
를 수행하게 된다.IMF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것은 개혁조치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이다. 일반적인 차관과는 달리 IMF차관은 분할로 제공되며, 매분기마다
엄격한 감독 하에 프로그램 이행상황은 평가한 다음 국가신인도에 따라 차관
지급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개혁정책의 수행이 지연될 경우 차관제공은 중단
되며 해당 국가는 쌍무간 혹은 다자간 채권단으로 구성된 이른바 `원조조정
그룹'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말 그대로의 `부도' 사태를 맞게 되는 것이다.

결국에 있어 IMF 프로그램의 핵심은 상환가능한 유동성 자본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IMF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환율의 현실적 조정
과 긴축재정과 차관의 제공을 통해, 재정적자폭이 축소되고 통화의 태환상은
확장되지만, 그러나 그것이 금융자본으로 전환되기 이전의 지불준비상태에
놓여져야 하기 때문에 그것은 실물경제의 안정화와 투자의 촉진으로 이어지
기보다는 오히려 시장구조 자체를 압박하는 효과를 낳게 된다.신규투자가 이
루어지기는커녕 부도기업이 속출하고 투자된 자본이 급속히 이탈하면서 광범
위한 실업이 발생된다. 그 결과 저축률이 급격히 하락되게 되고, 자본시장이
침식되면서 국민경제 시스템 자체는 서서히 붕괴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 그렇기에 IMF 구제금융을 최초로 받아들였던 영국이 3년만에 IMF를 전면
거부했던 것이나, 멕시코 경제가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경제가 붕괴하고 있는 것은 정치적인 실수가 아니라 바로 IM
F 프로그램 결과였던 것이다.IMF의 경제적 결과는 대부분 국가파산으로 이어
지고 있다. 그러나 IMF는 세계금융자본의 주도하에 원활한 부채상환을 목표
로 할 뿐 개별국가의 국민경제 파괴를 책임지지는 않는다. IMF는 선진국 내
에서 폐기론이 제기될 만큼 위험한 프로그램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IMF를 문
제의 해결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IMF는 위기의 시작인 것이다.

IMF 프로그램은 크게 `거시경제 안정화 조치'와 `구조조정'의 두 단계로 진행
된다.

1단계 조치인 `거시경제 안정화' 조치는 재정적자와 국제수지 개선을 주요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IMF는 우선 화폐의 평가절하를 주도한다. 이어 중앙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권 전반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함으로써 긴축재정과
금리인상을 통한 통화의 축소를 유도한다.이러한 단기적 프로그램은 일시적
으로는 수출을 주도하게 되지만, 곧 원자재의 가격의 폭등과 자본재 시장을
압박하면서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게 된다. 그 결과 기업이 도산하고
실질임금이 하락하게 되지만, IMF는 인플레이션의 주원인인 평가절하와는 무
관하게 `수요축소를 기반'으로 거시경제 지표를 안정화시키고자 한다.

사회복지계획은 축소되고, 임금의 물가연동제는 폐지된다. 그 결과 가격은 자
국화폐가 아닌 달러를 기준으로 안정화되고 내수시장은 완전한 결빙기를 맞게
된다. 1/4분기 중 무역수지 흑자란 바로 수요기반의 축소를 바탕으로 한 것
이지, 경제안정화에 따른 것은 결과는 아니다.IMF의 2단계 조처인 `구조조정
' 계획은 세계경제체제에 대한 편입을 목표로 시장개방과 기업구조조정, 국
영기업의 민영화 조치를 단행하게 된다. 외국자본의 활동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 및 보호조치는 철폐되고, 기업의 매수와 합병, 재벌의 해체, 공기업의
매각과 국유토지의 매각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 결과 국내기업의 경쟁력 상
실, 내수시장의 부실화, 노동시장의 붕괴가 현실화되면서 완충력이 없이 실
시되는 구조조정은 내재적 발전능력을 스스로 제고하고, 비교우위 원칙에 입
각하여 세계경제체제로 편입되도록 만든다. 자본재 시장은 국제분업체계에
의해 조정되며 노동력 예비국가로서 선진국의 부수시장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 결과 외채상환 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깝게 떨어지며 2차 3차로 이어지는
금융위기를 몰고 오게 된다. 그리고 그 최종적인 결과는 곧 국민경제의 파괴
, 즉 모라토리움으로 나타나게 된다.IMF의 모토는 `고통은 짧게, 이익은 길
게'이다. 그들은 개별국가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정으로부터 세
계경제체제에 자연스럽게 재편시킴으로써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도모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별국가의 상황이나 특성에 관계없이 진행되어 온 IMF 프로
그램은 스스로도 인정할 정도로 `빈곤의 세계화'를 초래하고 있을 뿐이다.

IMF의 경제적 결과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심각한 사태를 몰고 올 것이다
. IMF의 역사적 경험으로 보나 현재의 진행논리로 보나, IMF 프로그램을 통
해서 우리경제가 정상을 되찾으리라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결단코 우리에
게 IMF는 위기의 해소가 아니라 위기의 출발이 될 것이다. 당연한 결론 같지
만,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국민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은 기술개발을 통한 국가
경쟁력의 강화뿐이다. 그 동안 우리 기업들은 기술개발보다는 땅투기와 부실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한 몸 부풀리기에 급급해 왔다. 세계 경제체제의 무한
경쟁 속에서 기업들은 지금부터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온 국민과 기업
들은 이제 막 고통의 터널 입구에 서있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도 중요하지
만, 무엇보다도 IMF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IMF 프로그램의 경제적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IMF를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왕석 <정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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