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김석 교수(건국대 철학과), 유지나 교수(동국대 영화영상학과)를 대상으로 개별적으로 진행한 영화 <매트릭스>(1999) 후기 구조주의 비평 자문 및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기자가 작성한 비평문입니다. 

“진짜가 뭔데? 정의를 어떻게 내려? 촉각이나 후각, 미각 시각을 뜻하는 거라면 ‘진짜’란 두뇌가 해석하는 전자신호에 불과해. …(중략)… 이젠 매트릭스라는 신경 상호작용 시뮬레이션의 일부로만 존재하지. 자넨 꿈나라에서 살았었네. ”

현실에 슈퍼히어로는 없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사람들을 척척 구해내는 이들의 모습은 그저 상상 속에 그려진 허상이다. 하지만 영화 <매트릭스>는 가상 세계라는 장치 아래 꽤 그럴듯한 슈퍼히어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인류의 구원자로 지목된 네오는 과연 진정한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빨간 약을 집어삼키고 그의 여정을 함께해보도록 하자.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매트릭스>는 ‘매트릭스’라는 가상 세계에 갇혀 사는 인간의 해방을 소재로 한다. 가상으로 프로그래밍된 삶을 현실이라 믿는 사람들은 기계의 노예로 묘사된다. 이때 주인공 ‘네오’는 매트릭스를 파괴하고 인류를 해방하는 주축이 된다. 영화는 네오가 인류의 구원자, ‘그(the one)’의 면모를 갖추고 각성하는 과정을 그렸다. 

  네오는 전반적으로 탈영토화를 추구하는 ‘탈주적 주체’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성적 존재’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네오는 대외적으로 ‘토마스 앤더슨’이라는 평범한 프로그래머다. 하지만 밤이면 해커로 활동하는 등 영화 초반부터 그는 탈주적 주체의 모습을 보인다. 이렇듯 기존 사회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네오는 요원에게 잡혔을 때도 정부를 도우라는 그의 제안에 저항한다. '모피어스'와의 대화에서 세상이 어딘가 잘못됐음을 네오가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먹으면 진실을 알게 되는 빨간 약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파란 약 중 빨간 약을 택함으로 이어진다. 이상함이 느껴지는 기존 사회, 매트릭스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탈주적 움직임이 시작된 순간이다. 

  모피어스와 가상 세계에서 훈련하는 장면을 기점으로 네오는 생성적인 존재로서의 모습도 드러내기 시작한다. 10시간에 걸쳐 전투 기술을 주입받았음에도 스파링 프로그램에서 제 능력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하는 네오에게 모피어스는 생각 대신 인식을 하라는 말을 건넨다. 이어 점프 프로그램에서 고층 건물 사이 먼 거리를 뛰려는 네오에게 두려움, 의심, 불신까지 모두 버리고 마음을 자유롭게 하라는 조언을 준다. 이러한 말을 통해 네오는 전투 훈련에서 모피어스를 제압하는 데에 성공할 정도로 단기간에 큰 성장을 이룬다. 여기서 ‘차이의 반복’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전투를 반복해서 수행하지만 그 반복 중 동일한 반복은 존재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훈련으로 전투마다 그는 크게 성장하는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한편 네오는 인류의 구원자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데 이는 예언자 ‘오라클’을 만나면서 종결된다. 오라클은 네오에게 ‘그’가 아니며 모피어스와 네오 둘 중 한 명은 죽게 된다고 예언한다. ‘사이퍼’의 배신으로 모피어스에 죽음의 위기가 닥쳐오면서 오라클의 예언은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자신이 죽으면 모피어스를 살릴 수 있다는 확신 아래 네오는 그를 구해내고자 했고 모피어스와 네오 모두 살아 돌아온다. 이는 네오 자신이 ‘그’가 아니라는 확신으로 이에 대한 의심과 불신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모두 버렸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투 등 이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네오 스스로 더 큰 차이를 생성해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영화 후반 모피어스를 구출해내기 직전, 네오는 날아오는 총알을 피할 정도로 성장해 서서히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 인류를 구원할 ‘그’가 돼간다. 하지만 네오는 여전히 자신은 ‘그’가 아니라고 믿고 모피어스에게 자신이 오라클로부터 들은 바를 전하고자 한다. 이어지는 모피어스의 대사는 그에게 중요한 사건으로 작용해 자신이 ‘그’임을 인지하고 각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  

  “너도 나처럼 곧 알게 될 거야 갈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의 차이를.” 

  이 말을 계기로 네오는 자신이 ‘그’라는 확신을 갖고 가상 세계의 시스템 아래 완전한 자유를 얻는 과정에 들어선다. 이때부터 그는 탈주적 인간으로서 작동한다. 지하철역에서 스미스 요원과의 전투 장면이 그 증거다. 네오는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었지만 맞서 싸움을 선택해 시스템에 저항한다. 이전까지 있었던 요원과의 전투는 모피어스의 구출이라는 개인적 욕망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전투는 그 욕망이 실현된 이후의 전투이기에 명백한 시스템에 대한 저항으로 분석할 수 있다. 완전한 각성 이후 진짜 세계를 보여주겠다는 그의 메시지를 통해 그가 완전히 기계에 의해 영토화된 사회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탈주의 주체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모순투성이 구원자
  
네오는 과연 인류의 구원자인가. 아니다. 만약 인류 구원의 기준을 세상의 전복, 즉 ‘탈영토화’로 본다면 부정의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네오는 완벽한 탈주적 주체로 보기에 어려움이 있다. 탈주적 주체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차이의 반복이 이뤄져야 한다. 즉 생성적인 존재로서 기능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네오의 생성은 유한하다. 죽음으로부터 살아 돌아오면서 ‘시스템에 영향받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결말 이후 네오가 생성적 존재로 기능할만한 여지 또한 없어 보인다.  

  <매트릭스>는 진짜란 없다고 이야기함과 동시에 진짜를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갖고 있다. 이는 꽤 모순적이다. 극 초반 모피어스를 통해 영화는 진짜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어찌 보면 동일성보다 매 순간의 변화를 중시하는 들뢰즈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담론은 매트릭스 세계 안에서만 이뤄질 뿐이다. 네오가 매트릭스의 존재를 깨닫고 그 밖으로 나오면서 해당 영화는 진짜 세상을 긍정하고 가짜를 탈피해야 할 것으로 규정짓고 부정하기 시작한다. 이는 플라톤으로부터 이어져 온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탈영토화의 시도 역시 결론적으로는 기성 사회로의 편입으로 해석될 수 있다. 탈영토화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이를 부정해버림과 같다. 해당 영화는 ‘기계 지배’라는 영토에서 벗어남이 아닌, 가짜에서 벗어나 진짜 삶을 되찾겠다는 주제 의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네오와 모피어스가 목표로 하는 사회는 이미 존재하는 사회, ‘시온’이다. 진짜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벗어날 이유는 없기에 탈영토화 또한 무의미해진다. 이는 불안정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 영토화를 거쳐 구조상 부작용으로 다시 탈영토화가 이뤄지는 탈영토화 순환의 고리에 맞지 않는다. 

  인류 구원은 없다. 현실에서는 그렇다. 탈영토화된 사회는 곧 재영토화되고 다시 탈주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사회로 변모하기에 세상에 완전한 인류 구원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또 구원이란 누군가에겐 절박한 바람임과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겐 부질없는 변화이기에 만인이 공유할 수 없는 개념이기도 하다. 모순덩어리 슈퍼히어로를 노래한 매트릭스는 이런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사이퍼는 말한다.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느니 전부 잊고 매트릭스 안에서 행복하겠다고 말이다. 어쩌면 만인을 구원하기란 불가능하기에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사진출처 다음 영화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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